[최창호 변호사의 법조단상] 제척·기피·회피

피앤피뉴스 / 2024-09-23 10:21:10
제척·기피·회피

 

 

 

▲ 최창호 변호사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법관이 특정 사건과 특수한 관계가 있는 경우 그 사건의 처리에서 그 법관을 배제하는 제도가 제척·기피·회피이다. 제척이란 법률에 정하여진 사유가 있을 때 법관이 당연히 그 사건에서 배제되는 제도이고, 기피란 제척사유가 없음에도 재판의 공정을 기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때에 당사자의 신청에 의한 결정에 의하여 법관을 그 사건에서 배제시키는 제도이며, 회피란 법관 스스로가 제척 또는 기피사유가 있다고 인정하여 직무집행을 피하는 제도이다.

법원이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기 위하여는 재판의 적정과 공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헌법에서는 법관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강조하고 있고(헌법 제27조 제1항, 제101조 제3항 및 제103조), 나아가 법관의 윤리강령에서도 재판의 공정성을 강조하고 있다(법관윤리강령 제3조, 제4조 제2항).

소송당사자는 유사한 사건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이나 결정을 한 법관이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다는 이유로 기피신청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법원에서는 “민사소송법 제43조 제1항의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때’란 당사자가 불공정한 재판이 될지도 모른다고 추측할 만한 주관적인 사정이 있는 때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통상인의 판단으로서 법관과 사건과의 관계로 보아 불공정한 재판을 할 것이라는 의혹을 갖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인정될 만한 객관적인 사정이 있는 때를 말하는 것이다(대법원 2007. 11. 15.자 2007마1243 결정 참조). 그런데 신청인이 제출한 소명자료나 들고 있는 사정만으로는 민사소송법 제43조 제1항에서 정한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때’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소명할 자료가 없다.”라는 기재를 하면서 기피신청을 기각하는 결정을 하곤 한다.

한편 판례 중에는 “법관이 심리 중 피고인으로 하여금 유죄를 예단하는 취지로 미리 법률판단을 한 때에는 경우에 따라서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경우에도 해당될 수 있다(대법원 1974. 10. 16.자 74모68 결정).”라는 설시를 하면서, 법관이 이미 예단하는 취지의 법률판단을 미리 한 경우에 기피사유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한 사례도 있다.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우리 사회의 일반적 평균인의 입장에서 동일한 재판부의 판사들이 동일한 논리로 예단을 가지고 해당 사건에 관하여 불리한 판결을 할 것이 합리적으로 예상되고, 명백하게 보인다고 주장을 한다. 그러나 법원에서는 재판부 기피신청이 이유없다고 하면서 기각하는 경우가 많다.

헌법재판소는 “기피재판은 일반적인 재판절차보다 신속성이 더욱 강하게 요구된다. 만약 기피신청을 당한 법관의 소속이 아닌 법원에서 기피재판을 담당하도록 한다면, 소송기록 등의 송부 절차에 시일이 걸려 상대방 당사자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저해할 수도 있다. 이 사건 법률조항(민사소송법 제45조 제2항)은 기피를 신청하는 당사자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함과 동시에 상대방 당사자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도 조화롭게 보장하기 위하여 기피재판을 당해 법관 소속 법원의 합의부에서 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어떠한 경우에도 기피신청을 받은 법관 자신은 기피재판에 관여하지 못하고, 기피신청을 받은 법관의 소속 법원이 기피신청을 받은 법관을 제외하면 합의부를 구성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바로 위 상급법원이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기피신청에 대한 기각결정에 대하여는 즉시항고를 할 수 있도록 하여 상급심에 의한 시정의 기회가 부여되는 등 민사소송법에는 기피신청을 한 자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담보할 만한 법적 절차와 충분한 구제수단이 마련되어 있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지 아니한다.”라고 판시(헌법재판소 2020. 6. 25. 선고 2017헌바516)하고 있다.

민사소송법이 정하고 있는 기피이유로서 ‘법관에게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때’란, 우리 사회의 평균적인 일반인의 관점에서 볼 때, 법관과 사건과의 관계, 즉 법관과 당사자 사이의 특수한 사적 관계 또는 법관과 해당 사건 사이의 특별한 이해관계 등으로 인하여 그 법관이 불공정한 재판을 할 수 있다는 의심을 할 만한 객관적인 사정이 있고, 그러한 의심이 단순한 주관적 우려나 추측을 넘어 합리적인 것이라고 인정될 만한 때를 말한다. 그러므로 평균적 일반인인 당사자의 관점에서 위와 같은 의심을 가질 만한 객관적인 사정이 있는 때에는 실제로 그 법관에게 편파성이 존재하지 아니하거나 헌법과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있는 경우에도 기피가 인정될 수 있다(대법원 2019. 1. 4. 자 2018스563 결정 참조).

그런데 민사소송법은 기피이유를 제척이유처럼 일일이 열거하지 않고 위와 같이 매우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고 기피이유에 대한 입증도 소명만으로 충분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자칫 당사자가 기피신청권을 법관에 대한 주관적인 불만이나 소송지휘에 대한 불복수단으로 남용하거나 소송지연의 도구로 악용할 우려가 있다.

이에 민사소송법은 기피를 신청하는 당사자에게 기피이유를 밝혀 신청하도록 하고(제44조 제1항), 기피신청을 한 날로부터 3일 이내에 기피하는 이유와 소명방법을 서면으로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제44조 제2항).

또한 민사소송법은 이 사건 의견조항을 통해 기피신청을 받은 법관이 기피신청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기피재판에서 의견을 진술할 수 있도록 하여, 기피신청을 받은 법관 개인에게도 소명의 기회를 부여하는 동시에 기피이유에 대해 소명할 책임도 부여하고 있다.

이와 같이 민사소송법은 기피재판을 담당하는 법원으로 하여금 기피신청인과 기피신청을 받은 법관의 의견을 모두 고려할 수 있게 함으로써 기피신청인의 일방적인 주장에 의해 기피 제도가 남용되지 않도록 하고, 기피이유에 관한 쟁점을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함으로써 기피재판을 신속하게 진행하도록 정하고 있다.

한편 이 사건 의견조항에 따라 기피신청을 받은 법관이 의견서를 제출하거나 의견을 진술할 경우, 기피재판을 담당하는 법원이 사실상 이 의견에 기속되어 법원 스스로 온정주의적인 재판을 하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기피신청을 받은 법관의 의견서나 진술은 하나의 판단 자료에 불과할 뿐이고 특별한 법적 효과가 부여되어 있지 않다. 또한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기피재판을 담당하는 법원은 평균적 일반인인 당사자의 관점에서 법관이 불공정한 재판을 할 수 있다는 의심을 가질 만한 객관적인 사정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에 기피신청을 받은 법관이 제출한 의견서나 진술한 의견에 사실상 기속된다고 볼 수도 없다. 대법원도 법관기피신청사건에서 민사소송법 제45조 제2항의 규정에 따라 기피신청을 당한 법관의 의견서에 대하여 판단하지 않고, 제46조 제2항 단서 규정에 따른 법관의 의견진술절차를 거치지 않더라도 심리미진의 위법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판시하였다(대법원 1992. 12. 30.자 92마783 결정 참조).

최창호 변호사
서울대 사법학과 학·석사 출신으로 1989년 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군법무관을 거쳐 1995년에 검사로 임용되어, 공안, 기획, 특수, 강력, 의료, 식품, 환경, 외국인범죄, 산업안전, 명예훼손, 지적재산, 감찰, 송무, 공판 등의 업무를 담당한 바 있고,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헌법재판을 경험한 후 법무부 국가송무과장으로 대한민국 정부 관련 국가송무를 총괄하면서 주요 헌법재판, 행정재판 및 국가소송 사건을 통할하고, 정부법무공단의 발족에 기여했다. 미국과의 SOFA 협상에 참여한 바 있으며, 항고, 재기수사명령 등 고검 사건과 중요경제범죄 등 다수의 사건을 처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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