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호 변호사의 법조단상] 법률가의 용어 사용과 자세

피앤피뉴스 / 2024-03-07 10:06:38
법률가의 용어 사용과 자세

최창호 변호사


드라마를 보면 “수사기관에 가서 취조를 당하였다.”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취조라는 용어 속에 수사기관에 의한 수사의 대상이 되었다고 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조사를 받았다’거나 ‘수사를 당하였다’ 또는 ‘수사를 받았다’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맞다. 우리나라 형소법에는 취조라는 용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일본법에 등장할 뿐이다. 2024년은 형사소송법이 제정된 지 70년이 되는 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일본식 용어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사례라 할 것이다.

일반인도 그러하거늘 무릇 법률가라고 하는 사람이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에는 그 실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오류는 고소를 취하한다는 표현이다. 형소법에 등장하는 고소는 ‘취소’하는 것이지 취하하는 것이 아니다. 민사소송법에 소의 ‘취하’라는 용어가 등장할 뿐이다. 이렇게 용어를 잘못 사용하는 경우를 지적하여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을 구별하지 못하는 무식의 소치라고 한다면, 해당 법률가는 상당히 기분 나쁠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잘못된 용어의 사용이다.

변호사가 의견서를 작성함에 있어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에는 그 의견서가 과연 법률가의 문장인지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전에는 비법률가인 사무장이 대신 작성한 문서를 검토하지 못하고 그대로 제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실력이 부족한 어쏘의 의견서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제출하였다거나 또는 변호사 자체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주게 된다. 결과적으로 실력이 부족한 변호인이 제출한 의견서가 좋은 성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또한 변호인은 품격있는 언어를 사용하여 문서를 작성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상대방의 의견서 내용이 ‘새빨간 거짓말입니다.’와 같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방의 주장 내용은 실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또한 소송 상대방으로 활동하는 변호인은 각자의 직분에 따른 업무를 하는 것이므로, 상대방 변호사를 개인적인 이유로 비난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언어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삼가는 것이 좋다. 내심의 상처에는 공소시효가 없기 때문이다.

동일한 이유로 상소를 포기함이 상당하다고 보이는 경우에 상소를 제기하는 검찰측을 원색적으로 비난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논리적이지 않은 공소제기나 상소로 인하여 변호인은 수익을 얻는다는 긍정적인 면을 보는 것이 좋겠다. 검찰도 내부적인 양형기준 등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상소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검찰에서도 어쩔 수 없이 기소하는 경우라든가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는 정책적 고려하에 기소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법원 판례에 어긋나지만 변화된 세상의 흐름에 따라 판례 변경을 위하여 기소하는 경우도 있다.

이전에 민사소송의 피고 대리인으로 소송을 진행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원고의 대리인이 피고 또는 피고의 대리인이던 필자가 주장하지도 않은 허위의 사실을 법정에서 언급하고 의견서에 기재하여 제출한 것을 알게 되었다. 완전히 허위의 사실이라서 허탈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다. 변론이 끝나고 말로 지적하고자 하였으나, 금방 나가버려서 말할 기회조차 없었다. 소송의 결과는 원고의 청구가 기각되었음은 물론이다. 상대방이 법정에서 주장하지도 않은 허위의 내용을 뻔뻔하게 주장하는 상대방 변호인의 행태에 대하여 분개하였지만, 점잖게 의견서를 제출하여 승소하였을 따름이다.

교과서에서는 구두변론주의를 강조한다는 언급이 있지만, 실제로 변호사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사실관계, 법률관계에 관한 의견서를 조리있게 작성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을 하고, 검사는 공소장과 불기소장으로 말을 하는 것이다.

현재를 살펴보면, 변호사가 크게 돈을 버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보인다. 면기난부(免飢難富)라 하여 변호사는 ‘굶는 것은 면할 수 있으나 부자가 되기는 어렵다.’ 전문직이라는 의미는 평생 노동을 투여하여 타인에게 품삯을 받는 일이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오히려 변호사는 식소사번(食少事煩)이라고 하여 먹는 것은 적고 일은 많다는 것, 즉 몸을 돌보지 않고 바쁘게 일한다는 경향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각자에게는 각자의 밥그릇이 있다. 각자에게는 그에 맞는 밥그릇이 있는 것이다. 자기 분수를 모르고 욕심내면 그 그릇이 단번에 깨지게 될 수도 있다. 노자 도덕경에는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라는 문구가 있다. 만족함을 알면 욕됨이 없고, 멈춤을 알면 위태함이 없어 가히 오래갈 수 있다는 취지이다.

최창호 변호사
서울대 사법학과 학·석사 출신으로 1989년 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군법무관을 거쳐 1995년에 검사로 임용되어, 공안, 기획, 특수, 강력, 의료, 식품, 환경, 외국인범죄, 산업안전, 명예훼손, 지적재산, 감찰, 송무, 공판 등의 업무를 담당한 바 있고,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헌법재판을 경험한 후 법무부 국가송무과장으로 대한민국 정부 관련 국가송무를 총괄하면서 주요 헌법재판, 행정재판 및 국가소송 사건을 통할하고, 정부법무공단의 발족에 기여했다. 미국과의 SOFA 협상에 참여한 바 있으며, 항고, 재기수사명령 등 고검 사건과 중요경제범죄 등 다수의 사건을 처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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