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호 변호사의 법조단상] 교비회계 관련 사립학교법 개정안과 사학 자율성 위기

피앤피뉴스 / 2026-03-06 11:27:55

“교비회계 관련 사립학교법 개정안과 사학 자율성 위기”


 


 

▲최창호 변호사

Ⅰ. 서론: 교비회계 건전성이라는 명분, 그 이면의 칼날


최근 발의된 ‘사립학교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사학계와 법조계에서 상당한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개정안의 핵심은 학교법인 이사장이나 경영자의 업무와 관련된 소송비 및 자문료를 교비회계에서 지출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시 형사처벌하겠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교비회계의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고 사학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선의를 담고 있으나,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사법부의 구체적 타당성 판단권마저 봉쇄하고 사학의 자율성을 뿌리째 흔드는 ‘입법적 폭거’의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Ⅱ. 사법부의 해석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는 입법적 폭력


현행 사립학교법 체제하에서도 교비회계의 용도는 엄격히 제한되어 있다. 대법원은 오랜 기간 판례를 통해 교비회계의 지출이 ‘당해 학교의 교육에 직접 필요한 것인지’를 기준으로 위법성 여부를 판단해 왔다. 특히 최근 판례는 학교 교육의 본래적 기능 훼손 방지를 위해 직접 필요한 소송비의 경우, 실질적 업무수행 주체와 지출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예외적으로 정당성을 인정하는 등 구체적 타당성을 확보해 왔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이러한 사법부의 세밀한 해석 여지마저 법문으로 완전히 차단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소송의 성격이 민사인지, 행정인지, 혹은 학교의 존립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대응인지 묻지 않고 오로지 ‘이사장 소관 업무’라는 이유만으로 지출을 금지하고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개별 사건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경영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행위이며, 법관의 양심에 따른 해석 권한을 박탈하는 결과적 책임주의와 다름없다.


Ⅲ. 대학의 자율성과 방어권에 대한 정면 도전


헌법 제31조 제4항은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다. 사립학교는 국·공립학교와 달리 설립자의 출연 자산과 자율적 운영을 본질로 한다. 학교가 행정청의 부당한 처분이나 제3자의 재산권 침해에 직면했을 때,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대응하는 것은 학교 운영의 적법성을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방어권 행사라고 보아야 한다.


교비 사용을 일률적으로 금지하면 재정 자립도가 낮은 중소 사립학교들은 법적 대응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 이는 헌법상 보장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경제적 이유로 차단하는 것이며, 국가가 형벌을 도구 삼아 사학 운영의 세부 영역까지 지배하려는 위헌적 발상이다. 또한, 사학 경영자가 법적 위험으로부터 자신과 학교를 보호할 권리를 제한함으로써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위축시키는 ‘직업수행의 자유’ 침해 문제도 피할 수 없다.


Ⅳ. 과잉금지원칙 위배와 실효성 있는 대안의 부재


과연 형사처벌만이 유일한 해법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 법체계에는 이미 횡령 및 배임죄를 통해 교비 유용을 처벌하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사후 회계 감사나 민사적 환수, 행정적 감독 강화 등 사학의 자율성을 덜 침해하면서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이 충분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즉각적인 ‘형사처벌’을 선택한 것은 과잉금지원칙 중 피해의 최소성과 법익의 균형성을 저버린 처사라 할 것이다.


진정한 교비 건전성은 ‘지출의 획일적 금지’가 아니라 ‘지출의 적정성 심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대학평의원회나 이사회의 승인 절차를 투명화하고, 학교 교육과 직접 관련된 분쟁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지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올바른 역할이다.


Ⅴ. 사학의 숨통을 틔워주는 합리적 재검토의 필요성


사학의 공공성은 중요하다. 그러나 공공성이라는 명분이 사학의 자주성과 자율성을 말살하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이번 개정안은 사립학교 경영자 최소한의 방어권마저 제약하거나 박탈하고, 학교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필요한 법적 대응에까지 범죄의 굴레를 씌우려 하고 있다.


입법부는 지금이라도 개정안이 초래할 현장의 혼란과 위헌적 요소들을 직시해야 한다. 학교 운영과 직접 관련된 법적 분쟁에 대해서는 폭넓은 예외를 인정하거나, 소송비용의 성격을 세분화하여 허용 범위를 명문화하는 등 합리적인 수정안을 마련해야 한다. 사학의 자율성이 무너진 토양 위에서는 결코 양질의 교육이 꽃피울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최창호 변호사
서울대 사법학과 학·석사 출신으로 1989년 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군법무관을 거쳐 1995년에 검사로 임용되어, 공안, 기획, 특수, 강력, 의료, 식품, 환경, 외국인범죄, 산업안전, 명예훼손, 지적재산, 감찰, 송무, 공판 등의 업무를 담당한 바 있고,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헌법재판을 경험한 후 법무부 국가송무과장으로 대한민국 정부 관련 국가 송무를 총괄하면서 주요 헌법재판, 행정재판 및 국가소송 사건을 통할하고, 정부법무공단의 발족에 기여했다. 미국과의 SOFA 협상에 참여한 바 있으며, 항고, 재기수사명령 등 고검 사건과 중요경제범죄 등 다수의 사건을 처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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