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춘 변호사의 법률이야기]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지 아니한 사람에 대한 준강간

이선용 / 2020-11-24 11: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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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춘 변호사(법무법인 집현)
 
[이동춘 변호사의 법률이야기]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지 아니한 사람에 대한 준강간
- 대법원 2019. 3. 28. 선고 2018도16002 전원합의체 판결 -
 
1. 이 사건의 사실관계 및 재판의 경과 
甲은 자신의 집에서 처 그리고 피해자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처가 먼저 잠이 들고 피해자가 안방으로 들어가자 피해자를 따라 방에 들어간 후 피해자가 실제로는 반항이 불가능할 정도로 술에 취하지 않았음에도 만취되어 항거불능 상태에 있다고 오인하고 누워있는 피해자를 1회 간음하였다.
 
甲은 강간죄로 기소되었다. 제1심 공판 과정에서 검사는 공소장을 변경하여 준강간혐의를 추가하였고, 법원은 강간죄를 인정하지 않고 준강간혐의만 유죄로 판단하였다. 甲은 피해자가 술에 취해있지 않았다는 사정 등을 이유로 항소하였고, 항소심 법원은 피해자가 여러 정황에 비추어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이에 검사는 다시 공소장을 변경해 준강간죄를 주위적 공소사실로, 준강간미수죄를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하였다. 항소심 법원은 준강간미수죄에 대한 부분을 유죄로 인정하였다. 이에 대해 甲은 피해자가 실제로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지 않았으므로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지 않았음을 이유로 무죄를 주장하며 상고하였다.
 
이 사안에서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지 아니한 사람을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다고 오인하고 간음하였을 경우 준강간죄의 불능미수가 성립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다.
 
2. 대법원 판결요지(상고 기각)
[1] 준강간의 고의는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다는 것과 그러한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한다는 구성요건적 결과 발생의 가능성을 인식하고 그러한 위험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를 말한다.
 
[2] [다수의견] 형법 제300조는 준강간죄의 미수범을 처벌한다. 또한 형법 제27조는 “실행의 수단 또는 대상의 착오로 인하여 결과의 발생이 불가능하더라도 위험성이 있는 때에는 처벌한다. 단,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여 불능미수범을 처벌하고 있다.

따라서 피고인이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다고 인식하고 그러한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할 의사로 피해자를 간음하였으나 피해자가 실제로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지 않은 경우에는, 실행의 수단 또는 대상의 착오로 인하여 준강간죄에서 규정하고 있는 구성요건적 결과의 발생이 처음부터 불가능하였고 실제로 그러한 결과가 발생하였다고 할 수 없다. 피고인이 준강간의 실행에 착수하였으나 범죄가 기수에 이르지 못하였으므로 준강간죄의 미수범이 성립한다. 피고인이 행위 당시에 인식한 사정을 놓고 일반인이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보았을 때 준강간의 결과가 발생할 위험성이 있었으므로 준강간죄의 불능미수가 성립한다.
 
[반대의견] 일정한 조건하에서는 결과 발생의 개연성이 존재하지만 특별히 그 행위 당시의 사정으로 인해 결과 발생이 이루어지지 못한 경우는 불능미수가 아니라 장애미수가 될 뿐이다. 강간죄나 준강간죄는 구성요건결과의 발생을 요건으로 하는 결과범이자 보호법익의 현실적 침해를 요하는 침해범이다. 그러므로 강간죄나 준강간죄에서 구성요건결과가 발생하였는지 여부는 간음이 이루어졌는지, 즉 그 보호법익인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다수의견은 준강간죄의 행위의 객체를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는 사람'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형법 제299조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사람'을 '간음 또는 추행'하는 것을 처벌하고 있다. 즉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는 것은 범행 방법으로서 구성요건의 특별한 행위양태에 해당하고, 구성요건행위의 객체는 사람이다. 구성요건행위이자 구성요건결과인 간음이 피해자가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 놓였을 때 이루어진다는 점은 강간죄나 준강간죄 모두 마찬가지이다. 다만 강간죄의 경우에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는 데 반하여, 준강간죄의 경우에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다수의견의 견해는 형벌조항의 문언의 범위를 벗어나는 해석이다.
 
3. 판례 해설 
불능미수란 범죄의사로 실행하였으나 처음부터 결과발생이 불가능하고 다만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미수범으로 처벌되는 경우로서, 위험성의 의미와 관련하여 행위 당시 행위자가 인식한 사정 및 일반인이 인식할 수 있었던 사정을 기초로 일반적 경험법칙에 따라 사후판단을 하여 구체적 위험성이 있다고 인정되면 불능미수가 성립한다는 견해(구체적 위험설)와 행위시에 행위자가 인식한 사실을 기초로 행위자가 생각한대로의 사정이 존재하였다면 일반인의 판단에서 추상적으로 결과발생의 위험성이 있다고 인정될 때 불능미수가 성립한다는 견해(추상적 위험설)가 대립하고 있다.

사안의 경우를 각 학설의 입장에서 고찰하여 보자.
추상적 위험설에 따를 경우 甲은 피해자가 실제로는 반항이 불가능할 정도로 술에 취하지 않았음에도 만취되어 항거불능 상태에 있다고 오인하였고, 甲이 오인한 사실, 즉 피해자가 만취되어 항거불능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기초로 일반인의 관점에서 판단하였을 경우 준강간의 위험성이 긍정될 것이므로 甲에게는 준강간죄의 불능미수가 성립한다고 보게 된다.

그러나 구체적 위험설에 따를 경우 甲이 인식한 상황은 피해자가 만취되어 항거불능의 상태이지만 일반인이 객관적으로 판단하였을 경우 피해자는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이고(구체적 위험설은 이 경우 일반인의 판단을 우선시킨다), 일반적 경험법칙에 따라 판단하였을 경우 술에 취하지 않은 사람에 대하여 준강간의 위험성이 부정될 것인바, 甲에게 준강간죄의 불능미수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게 된다.
추상적 위험설은 결과발생이 불가능함에도 가능하다고 행위자가 착오한 사실을 기초로 위험성 판단을 하게 되므로, 이 견해에 따를 경우 불능미수의 성립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구체적 위험설이 더 타당하다.
 
대상판결은 ‘피고인이 행위 당시에 인식한 사정을 놓고 일반인이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보았을 때 준강간의 결과가 발생할 위험성이 있었으므로 준강간죄의 불능미수가 성립한다.’고 판시하여 추상적 위험설의 입장을 취하였다. 대상판결의 반대의견은 간음이 피해자가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 놓였을 때 이루어진다는 점은 강간죄나 준강간죄 모두 마찬가지인데, 사안의 경우 피해자가 저항할 수 있는 상태였으므로 준강간의 불능미수가 아니라 장애미수가 성립한다는 취지이나, 위험성 판단에 있어서 다수의견과 같은 입장을 취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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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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