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을 읽고 있는 중에 문득 ‘나는 소설을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인가?’ 라는 의구심이 생겼다. 나중에 읽었던 책들을 다 이해했는지, 줄거리가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적당히 말을 얼버무리고 넘어갈 것 같다. 다독보단 한 권이라도 정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단 생각은 들지만 어렵고 복잡한 내용이 나오면 그냥 넘어가고 싶어진다. 어릴 적 학교에서 ‘다독왕’이라는 상을 받은 적이 있다. ‘다독왕’보단 ‘정독왕’에게 상을 줘야 하는 게 맞지만, 요즘은 워낙 책을 읽지 않으니깐 책을 읽는 것에 의의를 두는 듯하다. 독자로서 소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소설가는 어떤 생각으로 소설을 쓰는지 명쾌한 답을 듣고 싶다면 소설가 오르한 파묵의 「소설과 소설가」를 추천해주고 싶다.
문화의 변방 터키에서 고전을 통해 독학으로 소설을 써 온 노벨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 노벨문학상 작가들을 찾아보다가 그의 이력이 눈길을 끌었다. 촉망받는 화가지망생을 포기하고 독학으로 소설에 대해 연구하고 보르헤스, 칼비노, 에코의 뒤를 이어 하버드대 ‘찰스 엘리엇 노턴’강의를 맡은 후 강연록 「소설과 소설가」를 출간했다. 이 책은 35년 동안 그가 소설에 대해 아는 것들과 배운 것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총체라 할 수 있다. 소설의 역사나 이론서라고 할 수는 없지만 홀로 작가의 꿈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구한 오랜 문학 여정을 그린 ‘소설 창작의 비밀’이라고 한다.
소설 창작의 비밀 중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 책에서 언급한 실러의 논문 주제인 ‘소박한’작가, ‘성찰적인’작가인가에 대한 그의 생각이였다.
“어떤 작가는 소설을 쓸 때 자신이 사용하는 기교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머릿속에서 하는 온갖 작업과 계산도 잊고, 소설 예술이 제공한 기어, 핸드 브레이크, 버튼 들을 사용하고 있으며, 더욱이 이중에 새로 발명된 것도 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저절로 씁니다. 소설 쓰기에(그리고 독서에도) 인위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이러한 유의 독자와 작가를 ‘소박한 사람’이라고 부릅시다. 이것과는 정반대되는 감성, 그러니까 소설을 읽거나 쓸 때 텍스트의 인위성과 현실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소설을 쓸 때 사용되는 방법과 소설을 읽을 때 우리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특별하게 관심을 두는 독자와 작가를 ‘성찰적인 사람’이라고 부르지요. 소설 창작은 소박한 동시에 성찰적인 일입니다. ” --- p.20
“파묵 씨, 당신은 ‘소박한’ 소설가입니까?, 아니면 ‘성찰적인’ 소설가입니까?”
하버드대 강연 이후로 그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그의 답은 한 소설가가 ‘소박한’ 동시에 ‘성찰적인’영혼을 갖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런 명쾌한 답이 나오기까지 그가 읽고 연구했던 스탕달에서 도스토옙스키까지, 「천일야화」에서 「안나 카레리나」까지 수많은 책들과 자료들, 그의 지식의 깊이가 독학으로 이뤄졌다니 정말 놀랍다. 독자층이 한정된 나라에서 소설 창작은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만 소설을 통해서 인생을 배우고 소설가가 되어 그의 창작 경험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즐겁다.
오르한 파묵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글로 표현되어 있지만, 어떤 책들보다도 객관적인 관점에서 쓰여진 것처럼 느껴진다. 또한, 딱딱하고 어려운 이론서가 아닌 독자들과 대화하듯이 이해하기 쉽게 쓰여 있어서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소박한 독자이면서 성찰적인 독자가 되어 책 읽는 즐거움을 더욱 더 느끼게 된다면 삶이 한층 더 풍요로울 듯하다. 그날이 기대된다.
잔잔하게 일렁이는 누군가의 마음을 '미소'로 찬찬히 읽어내주는 人 ㅣ은향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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