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추천 헌법재판관에 대한 대통령의 임명권은 형식적 권한인가”
▲ 최창호 변호사 |
나아가, 독일법의 이해에 있어서는 독일 기본법에 헌법재판관의 임명에 있어서 연방대통령의 임명절차에 관한 규정이 없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즉, 독일 기본법은 의회의 선출권만 규정되어 있을 뿐 연방대통령의 임명권에 대한 규정이 없으므로 헌법상으로는 의회의 선출로 임명절차는 완결되는 것이다. 다만, 법률의 차원에서 연방대통령이 임명하는 절차를 규정하였으나, 이는 헌법적 권한이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독일법의 해석으로는 연방대통령의 심사권을 형식적 권한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일 뿐이다. 독일에서는 연방대통령의 연방 공무원에 대한 임명권 자체를 형식적 임명권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을 참조하여 대통령제인 우리 헌법에 있어서의 헌법재판관 임명권을 형식적 심사권만 가진다고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은 것이다.
형식적 심사권을 주장하는 입장에 의하면, 대통령은 국회나 대법원장에 의하여 선임된 후보자가 재판관으로 적합한지의 여부를 심사를 할 수 없고, 재판관 임명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기껏해야 헌법재판소법 제5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재판관 자격요건의 충족여부와 같은 형식적 심사를 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재판관자격요건이 충족되지 않은 경우나 국회에서의 선출절차에 하자가 있는 경우(다수결요건의 충족 여부) 등에는 재판관의 임명을 거부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하여는 이견(異見)이 없다. 그 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임명권은 단순히 형식적인 것이 아닌 실질적인 것으로 보아야 하고, 대통령은 후보자의 임명 여부에 재량을 가진다고 할 것이다.
독일은 의원내각제 국가로서 연방대통령은 행정권의 책임자가 아니고 국제법적인 대표권과 국가통합의 상징직 지위를 가진다. 이 지위에서 연방대통령은 연방공무원(연방법관 포함)과 군인에 대한 임명권, 사면권을 가진다(독일기본법 제60조 제1항). 그러나 연방대통령은 연방내각이나 행정부에 대하여는 고유의 권한을 가지는 사람이 아니고 행정을 주도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내각에서 준비한 인사안에 대해 법률적 근거의 여부만 판단하고 서명하는 형식적 권한만 가진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한도 내에서 연방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법을 보장하는 통제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나 공무원의 임명과 면직이 국가의 공익을 현저히 해한다고 판단하는 경우에 내용적으로도 제한된 범위에서 평가하는 권한도 행사할 수 있다. 한편 연방헌법재판관과 같이 의회의 의결이 관여된 때에는 이러한 내용적, 인적 심사권한이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대통령의 임명권은 형식적 심사권을 우월하는 심사권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대통령은 선출 절차에 있어서의 헌법적 문제 등을 심사하여 거부할 권한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헌법의 해석에 있어서 후보자의 임명이 국가의 공익에 있어 현저한 문제가 있는 경우나 헌법적인 문제가 있는 경우, 특히 헌법재판소의 정치적 중립성을 해할 우려가 있다든가, 국회의 선출 절차상 다수당의 일방적 선출과 같이 헌법재판관의 국민 대표성을 해하여 헌법적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는 경우 등과 같이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그 임명을 거부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오히려 대통령제를 취하고 있고, 국민의 직접 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우리 헌법에 있어 대통령의 임명권은 매우 실질적인 것으로서 미국 헌법상의 대통령의 임명권을 참고하여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다만, 미국 헌법은 상원에 동의권만 인정할 뿐 지명(nominate)과 임명(appoint)이 모두 대통령의 권한이지만, 우리 헌법은 후보자의 선택과정에서 국회의 선출이나 대법원장의 지명 절차를 두어 국회와 대법원장의 관여를 인정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우리 헌법의 임명방식은 국회, 대통령, 대법원장의 협동적 구성방식이라고 볼 수 있는데, 실질적으로 여당을 장악하고 있는 대통령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구성방식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므로 후보자의 선택과정에 국회와 대법원장이 관여하지만, 이러한 선정과정을 거친 사람에 대한 대통령의 임명권은 실질적인 것으로서 대통령은 그 임명여부에 재량을 가진다고 할 것이다.
혹자는 국회 선출 3인을 “대통령이 임명한다”라는 규정의 헌법적 의미에 관하여, 국회가 선출하면 ‘대통령은 반드시 임명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의 임명 행위는 ‘형식적이고 요식적 행위’라는 의미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명문의 규정으로 “임명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지 아니하고, “임명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대통령에게 임명에 대한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러한 주장은 ‘사법부(헌법재판소)의 구성원리’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다.
헌법이 ‘대통령 임명권’을 인정한 것은 대통령이 가진 국민적 신임을 함께 보태어서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의 민주적 정당성을 완성시키라는 의미라고 해석하여야 한다. 대통령이 가진 국민적 신임은 국회와 별도로 대통령 선거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직접 부여받은 것이다. 그 성립 자체가 국회와 무관한 것이고, 그 신임을 보탤 것인지 여부는 전적으로 대통령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보아야 한다. 국회는 자신이 가진 국민적 신임을 행사하는 것으로 그쳐야지, 별도로 성립된 대통령의 국민적 신임에 우월할 그 어떤 권한이나 정당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보아야 한다. 국회가 대통령의 임명권에 우월하는 권한을 가지는 것은 그 자체로 월권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헌법에 위반되는 것이다. 권력분립의 원칙을 위반할 소지가 있는 것이다.
최창호 변호사
서울대 사법학과 학·석사 출신으로 1989년 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군법무관을 거쳐 1995년에 검사로 임용되어, 공안, 기획, 특수, 강력, 의료, 식품, 환경, 외국인범죄, 산업안전, 명예훼손, 지적재산, 감찰, 송무, 공판 등의 업무를 담당한 바 있고,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헌법재판을 경험한 후 법무부 국가송무과장으로 대한민국 정부 관련 국가송무를 총괄하면서 주요 헌법재판, 행정재판 및 국가소송 사건을 통할하고, 정부법무공단의 발족에 기여했다. 미국과의 SOFA 협상에 참여한 바 있으며, 항고, 재기수사명령 등 고검 사건과 중요경제범죄 등 다수의 사건을 처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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