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보의 진학상담이야기] 아빠의 품을 떠나가는 실용음악과 합격생

피앤피뉴스

gosiweek@gmail.com | 2024-12-12 10:54:50

“아빠의 품을 떠나가는 실용음악과 합격생”

 

 문경보



“선생님. 절반 성공했어요.”
“절반의 성공이라 … 5대 5라는 이야기인데. 그럼 어느 쪽이 5냐?”
“에이 선생님. 썰렁해요. 51:49 정도 같은데 … 제가 어느 쪽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렇구나. 어쨌든 합격했으니 축하한다. 그래 어느 학과에 합격했니?”
“경영학과 세 곳은 다 떨어졌어요. 실용음악과는 두 곳 합격해서 어느 학교로 갈지 생각 중이에요.”
“어느 학교로 진학할지 결정하는 데 선생님 도움이 필요하니?”
“아니에요. 제가 좀 더 생각해 보고 결정하려고요. 그것보다 다른 고민이 생겨서 선생님께 왔어요.”

권희승. 내 고등학교 동창 아들. 수시 원서를 지원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상담실 청소를 자원하면서 매일 같이 나에게 다녀간 친구. 가끔 나와 같이 라면도 먹고, 수준급 기타 솜씨도 보여준 친구. 후배들이나 친구들이 상담하러 오면 조력자 역할도 열심히 했던 매우 착한 친구. 2학년 1학기 때까지 문과 전체에서 5등 안에 늘 있었던 친구. 아버지의 소원에 따라 경영학과로 진학하려고 열심히 생활했던 친구. 덕분에 생활기록부도 명문대를 가기에 충분하게 채워져 있었고, 모의고사 성적도 꽤 우수했던 학생. 모범적인, 너무나 모범적이었던 학생. 그런데, 2학년 2학기가 막 시작된 늦은 여름. 유난히도 무더위가 끈질기게 기승을 부렸던 그 여름날에 상담실로 미친 듯이 뛰어들었던 학생. 권희승.

2학기에 처음 발령을 받아 상담실에서 나와 둘이 근무하게 된 새내기 교사 영어 선생님께서 무척 놀라고 당황하셨다. 희승이가 상담실 바닥을 구르고 소리를 지르면서 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평소에 학생들에게 울고 싶으면 상담실에 와서 마음껏 소리 지르고 울어도 좋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행여 뒹굴다 다칠까 봐 상담실 안에 있는 물건들의 튀어나온 부분은 모두 두꺼운 고무로 막아놓았다. 한참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나이에 있는 고등학생들의 감정을 추스릴 공간이 학교에는 없다. 힘겨워도 감정을 그대로 안고 학교에 와서 지내야 하는 아이들을 생각해서 내가 만든 궁여지책이었다. 숨쉴 틈 하나 만들어주고 싶었다. 희승이에게 다가가려는 영어 선생님께 그냥 계셔도 된다고 이야기하고 나는 가만히 희승이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희승이는 행동을 멈췄다. 울음은 마른 울음으로 변했다. 나는 희승이를 소파에 앉게 하고 미지근한 물을 건넸다. 희승이가 물을 다 마시고 난 뒤 주먹으로 희승이의 등을 쓸어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생님께 희승이의 손을 주물러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그 와중에 희승이는 영어 선생님께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
“아저씨랑 언제 이야기할래?”
나와 희승이 사이를 잘 모르는 영어 선생님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 제가 정신을 놓았나 봅니다. 비밀로 하기로 희승이랑 약속했는데… 이 친구 아버지와 제가 친구거든요. 어릴 때부터 봐았던 친구라서 저도 모르게 그만…. 그래 권희승 선생님이랑 상담하고 싶니?”
나의 변명을 들으면서 어색하게 웃던 희승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점심시간이랑 방과 후 중 언제가 편하니?”
“방과 후에 올게요. 선생님. 죄송합니다.”
영어 선생님이 가방에서 자그마한 카스텔라와 우유를 꺼내셨다.
“아침 안 먹고 왔겠다. 이따 배고프면 이거 먹어라.”
망설이던 희승이의 손에 영어 선생님이 카스텔라와 음료를 쥐여 주었다. 희승이가 다시 살짝 눈물을 보이며 꾸뻑 인사를 하고 상담실을 나섰다. 나는 희승이가 나간 후 부리나케 교내 메신저를 날리기 시작했다. 희승이 담임 선생님께 오늘 아침 상황을 보고하고, 교장, 교감, 희승이 반 교과 담당 선생님께 당부 상황을 전달했다.
“2학년 7반 권희승, 코드 레드 발령입니다. 오늘 하루는 반걸음만 뒤에서 바라봐 주십시오.”
그리고 희승이의 아버지, 내 친구 철규에게 전화했다.
“희승이 학교 잘 도착했다. 상담실에 다녀갔다.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겠고, 학교에 있는 동안은 선생님들께서 보살펴주실 테니까 안심해라. 우냐? 권철규도 늙었네. 울지마 인마. 아침 잘 챙겨 먹어. 공사 현장에서 안전사고 주의하고, 이럴 때 네가 몸 상하면 희승이 정말 힘들어진다. 파이팅하고! 방과 후에 희승이랑 이야기 나누려고 해. 그래. 내일 저녁때 만나자.”
모든 상황을 지켜본 영어 선생님께서 상담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많이 배웠다고 하셨다. 자신의 꿈이 상담교사가 되는 것인데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고 하셨다.
“아이들의 힘든 것에 비하면 보잘것없어요. 이게 맞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선생님 세대가 더 발전시켜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커요. ”

희승이와 마주 앉았다.
“어제 아빠와 싸웠어요. 선생님께서 아시는 것처럼 아빠는 제가 경영학과로 진학하기를 원하셨어요. 저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어요. 그냥 아빠가 좋아하셔서 그 말씀을 따랐어요. 그런데 친구를 따라 록페스티벌에 가게 되었어요. 새로운 세상이었어요. 그날 이후로 실용음악과로 진학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아빠에게 이야기 하지 않고 악기도 배우고 노래 연습도 했어요. 오디션도 여러 번 봤어요. 모두 떨어졌지만 정식으로 제대로 배우면 가능성이 있겠다는 피드백도 받았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신나는 일이 저에게 생긴 것 같았어요. 그래서 아빠에게 말씀드렸는데 갑자기 화를 내셨어요. 중학교 때부터 조금씩 거리감이 생기긴 했지만, 아빠가 저에게 화를 낸 적은 없으시거든요. 저도 당황했어요. 열도 받고요. 그래서요. 그래서요. 선생님 저도 모르게, 그러니까 저도 모르게… 아빠에게 욕을 했어요. 해서는 안될 막가는 표현을 써서 욕을 했어요. 아빠가 멍하니 저를 바라보셨어요. 선생님. 저 그러면 안 되잖아요. 아시잖아요.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 저 하나만 보고 살아오셨잖아요. 공사판에서 일하시면서 제가 해달라는 것은 다 해주신 분이잖아요. 그 아빠에게 제가 친구들에게도 하지 않는 험한 말을 했어요. 저 정말 나쁜 놈이죠? 선생님. 저 어떻게 해야 해요?”
날씨는 여전히 무더웠다. 그래도 아침과 저녁에는 살짝 더위가 가시고 있는 날들이었다. 성장통을 겪고 있는, 어머니가 떠나가고 아버지마저 자신을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 한 아들이, 한 청춘이 내 앞에 앉아 있었다.
“너 아버지 구두 닦아드리니?”
“음… 중학교 때부터는 아빠 구두 닦아드린 기억이 없어요. 제가 학원에 다니느라고 그랬는지… 초등학교 때까지는 닦아드리곤 했는데 …”
“오늘 가서 아버지 구두 닦아드려.”
“그렇게 하면 아빠에게 용서를 빌 수 있어요?”
“몰라. 상담 교과서에 그렇게 쓰여 있어. 아들들이 아버지랑 화해하고 싶을 때 안마를 해드리거나 구두를 닦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적혀 있어.”
나는 웃으며 말했다. 희승이의 어깨가 무척 무거워 보여서 그 무게를 가볍게 느끼도록 하고 싶은 마음에서 싱겁게 말을 건넸다.

- 선생님 말씀을 듣고 아빠 구두를 닦았어요. 닦다가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어요. 구두가 낡아서 그렇기도 했고, 왜 아빠와 나는 이렇게 멀어졌을까? 하고 생각하니 갑자기 눈물이 났어요. 제 울음소리 때문인지 아빠가 방에서 나와서 저를 가만히 바라보셨어요. ‘아빠, 내가 실용음악과를 가든 경영학과를 가든 아빠 아들인 것은 그대로지?’하고 제가 말했어요. 아빠는 저의 어깨를 감싸면서 ‘그럼 인마 네가 딸이냐?’하고 농담하셨어요. 저도 웃었어요. 그런데 우리 아빠 참 끈질겨요. ‘그래도 우리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고 하셨어요. 그 말이 참 듣기 좋았어요. 무조건 경영학과를 가라고 음악은 안 된다고 할 때보다 양보하신다는 것을 알았거든요. 제가 험한 말을 쓴 것에 대해 사과했어요. 아빠가 그랬어요. ‘괜찮아. 그래도 괜찮아. 시간 지나서 이렇게 말해주면 괜찮아.’

다음 날 저녁 오랜만에 희승이 아버지, 철규를 만났다.
“피는 못 속인다. 씨도둑은 못 속인다더니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네. 철규야. 너 고등학교 때 밴드 했었잖아. 이름이 뭐였지 ‘야생마?’였나?”
“아니 그건 종현이네 밴드 이름이고, 우리는 ‘미친 당나귀’였지. 줄여서 ‘미당’이라고 불렀지. 그런데 너 참 별거 다 기억한다.”
“그래. 맞다. ‘미당’이었지. 하긴 음악 좋아하던 너였으니까 희승이가 음악하려는 걸 반대할 수도 있었겠다.”
“고등학교 때 미당 애들이 엄청 말썽을 많이 피웠던 거 기억나냐?”
“그래 네가 대장이었잖아. 담임이 교무실에 너네들 불러서 혼낼 때도 너만 제일 나중에 남겨서 가장 크게 혼냈잖아.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고. 그때 진짜 궁금했는데, 담임이 그때 너에게 뭐라고 했냐? 넌 얼굴이 벌겋게 되어서 나오고, 담임 욕을 막 했잖아. 사실 그 양반 선비 중의 선비여서 손찌검 한 번 하지 않는 분이었는데, 너를 제일 미워해서 사정없이 때린 거라고 동창들은 지금도 이야기하고 있잖아.”
“아니야. 그 선생님 정말 고마운 분이야. 나한테 그러더라. 괜찮다고 다 괜찮다고. 담임 선생님은 우리 집 사정을 잘 알고 계셨거든. 내가 소리 지르면서 노래 부르고 거칠게 말썽을 피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우리 집 사정을 잘 알고 계셨거든. 그래서 맨 나중까지 날 남겨놓고 잠깐 앉아 있다 가라고 하셨어. 당신은 뒷짐 진 채 창밖을 바라만 보고, 나중에 보니까 울고 계시더라고. 어른이 되어서 생각하면 참 고마웠는데, 그땐 너무 어려서 그런 담임 선생님이 너무 싫었어. 그래서 교무실 벽을 주먹으로 치기도 하고 그랬어.”
“욱하는 성질까지 부자가 똑같네. 그래서 희승이에게 욕해도 괜찮다고 그랬군.”
“맞아. 난 선생님께 나이 들어서야 사과했지. 희승이가 욕하는 소릴 듣고 나니까 그때 선생님께 정말 죄송하더라.”
두 친구의 추억담은 밤늦도록 이어졌다. 철규는 거의 고아처럼 자랐고, 고운 아내와 결혼하여 평안하게 살게 되었다. 그러나 운삼류 드라마처럼 철규의 아내는 어린 희승이만 남겨 놓고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후 철규는 재혼도 생각하지 않고 희승이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며 살아왔다.
“문 선생. 나는 음악을 좋아하는 희승이의 마음은 이해해. 뒷바라지도 할 자신이 있어. 그런데 확신이 없어. 그놈이 혼자 세상을 살아갈 때 음악만으로 가능할까?”
“권철규. 참 그때나 지금이나 지 마음대로 생각하는 건 여전하네. 너 진짜 몰라서 하는 이야기야? 희승이는 너보다 훨씬 머리도 좋고, 성적도 좋고, 성실한 아이야. 제수씨 덕분인 것 같다. 그리고 제수씨가 희승이를 돌봐주고 있다고 나는 믿어. 그리고 요즘 세상은 우리들이 살던 세상 아니잖아. 실용음악 하면서 먹고 살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어. 그리고, 그리고 말이야. 넌 나 무시하는 거 아냐? 고2 담임 선생님만큼은 아니지만 네가 희승이 진로 선생 역할을 제대로 못 할 것 같아? 나 믿어 인마. 희승이에게 네가 양보해. 자식 이기는 부모 없잖아.”
나는 큰 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직원이 와서 제지를 안 했으면 소리가 더 커졌을지도 모른다. 음식값을 내려는 철규를 밀어내면서 내가 음식값을 냈다. 이런 법이 어디 있냐는 철규에게 말했다.
“우리 아들 희승이에게 나중에 열 배로 대접받을 꺼야. 네 투자 비용을 네가 가로채면 내가 서운하지. 아들 잘 둔 줄 알아. 쨔샤.”

다음 날 철규와 통화를 했다.
- 어제 희승이와 이야기를 깊게 나눴다. 실용음악과로 가라고 하니까 2학년 1학기까지 경영학과를 가기 위해 준비한 것들이 아까워서 실용음악과 세 학교, 경영학과 세 학교 이렇게 지원해 보겠다고 이야기하더라. 아마 나를 배려해서 그런 것 같아. 처음으로 희승이에게 술 한 잔을 따라주면서 말했어. 이젠 아들이 아니라 권희승이라는 독립적인 존재로 살아도 된다고 이야기했지. 그런데 말이야. 경보야. 이놈이 그 말을 듣고 ‘예. 아버지.’라고 대답하더라. 아빠라고 하지 않고 아버지라고 하더라. 그 말을 듣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프냐. 희승이 놈이 저 멀리 떠나버린 것 같더라. 이게 네가 동창들 모아 놓고 떠들던 부모의 성장통이냐? 부모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란 그 어려운 이야기가 이거였냐?

그로부터 한 해가 흐르고 나는 지금 희승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실용음악과에 입학하게 된 것은 마음에 드는데요. 학교가 명문대학교가 아닌 게 마음에 걸려요. 아버지는 합격해서 기분이 좋다고 하세요. 그런데요 아버지를 아는 주변 분들이 뭐라고 할까요? 아버지에게 공부 잘하는 아들 둬서 부럽다고 이야기하셨던 분들이 제가 입학한 대학 이름을 알고 나면 뭐라고 할까요? 아버지에게 너무 죄송해요.”
침묵이 흘렀다. 창밖에는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보글보글 찻물 끓이는 소리가 나와 희승이 그리고 조용히 앉아 계신 영어 선생님 사이로 흐르고 있었다.
“선생님. 희승이에게 하실 말씀 없으세요?”
선생님은 내 옆에 와서 앉으시더니 희승이의 손을 잡고 이야기하셨다.
“넌 안 아프니?”
순간, 희승이의 표정이 멍해졌다.
“시선의 감옥이라는 말이 있단다. 난 네가 그 말을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 선생님이 일 년 정도 널 보아 왔는데 너의 가장 큰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 착한 아이라는 거야. 아버지에게는 착한 아들, 선생님들에게는 착한 학생. 그래서 너 자신은 외면하고 살아가는, 네 감정은 무시해 버리는 나쁜 놈이 되어버렸다는 거야. 내가 너라면 난 지금 많이 아플 것 같아. 솔직히 네가 지원했던 명문 대학들은 사실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대학이잖아. 너도 그래서 지원한 거고. 그러면 제일 먼저 네가 아쉽고 아플 것 같은데 넌 주변 사람들과 아버지 생각만 하고 있어…. 미안해. 말이 길어졌네.”
희승이와 영어 선생님이 맞잡은 손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누구의 눈물인지는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의 눈에도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타인의 눈길에 얽매이는 것에 대해 힘겨워하고 있던 내 마음과 선생님의 말씀이 만나서 그랬을 것이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희승아. 선생님과 내 마음이 같다. 이제 선생님이 정리하는 말을 할게. 지금 이 문제는 아버지의 문제가 아니라 네 문제라는 것을 먼저 알았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너는 먼저 네 마음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렴. 다른 사람 생각하느라 에너지를 쏟았던 너에게 화도 내고, 그럴 수도 있겠다고 위로도 하고, 그렇게 하는 시간을 가지렴. 그리고 네가 걸어가게 될 음악은 자유를 추구하는 길이란 것을 생각하렴. 새에게는 하늘을 날아갈 수 있는 것도 자유지만 돌아올 둥지가 있을 때 더 큰 자유를 누리게 된단다. 아마 네 아버지가 너에게 그런 둥지가 되어주실 꺼야. 둥지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듯이 아버지는 옛날이나 요즘이나 아마 앞으로도, 너를 사랑하실 것이고 주변에 자랑하면서 다닐 것이다. 너는 그런 대접을 받기에 충분한 아들이니까 말이다.”

부모를 떠난다는 것은 다시 부모에게로 돌아오는 첫걸음이다. 첫걸음은 늘 불안하고, 자주 비틀거리고 넘어지기도 한다. 첫걸음을 내딛는 아들의 앞날을 조금은 불안한 마음,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 조금은 아린 마음, 그리고 아주 큰 기대와 확신을 가지고 바라보게 될 아버지, 권철규. 나는 그 친구와 함께 우리의 아들을 바라보고 기도하는 한 단계 깊은 상담의 시간을 그날 이후 시작하게 되었다. 아마 이 상담은 종결이 되지 않을 듯하다.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상담심리교육전공 졸업
서울시교육청학부모지원센터 학부모교육 강사
자기주도학습 코칭전문가
문청소년진로연구소 소장
한국독서치료연구소 부소장
대광고등학교 진로진학 컨설턴트
서울 YWCA 청소년부 자문위원
한국 인성 교육협회 위촉교수
前 중동 중학교, 대광 중고등학교 국어교사
대광 고등학교 진로 교사, 상담실장, 생활관장
영락 고등학교 심리학 강사, EBS 출연교사
저서 「외로워서 그랬어요」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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