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낙준 변호사(백준법률사무소)
[최낙준 변호사의 사건기록] 조건부 증여
1.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최낙준 변호사입니다. 최근 부동산을 자식에게 증여하는 내용의 증여계약서를 작성한 적이 있습니다. 증여하려는 분께 부담부 증여 방식을 제안했지만, 그분은 증여에 조건을 붙이고 싶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자식에게 부동산을 증여하려는 분께 부담부 증여 방식에 대해 알려드리는 것이 좀 어색하기도 하지만, 아래 사건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이번에 소개해 드릴 사건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부동산을 증여한 후 증여목적물을 반환받기 위해 사해행위취소소송을 제기한 사건이었습니다. 부담부(해제조건부) 증여를 했지만 수증자가 부담 의무를 불이행한 이상, 수증자는 증여자에게 증여 받은 부동산을 다시 반환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2. 사실관계 및 사건경과
가. 이 사건에서 원고 A(증여자)의 주장은, A는 ‘아들 B가 가업을 유지·경영하고 B의 배우자 C와 원만한 가정생활을 유지할 것’을 조건으로 이 사건 부동산을 아들 B(수증자)에게 증여했는데, B가 C와 합의이혼 하면서 위 조건 파기에 따른 채무를 면하기 위하여 C 앞으로 증여의 형식을 갖추어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한 C(피고)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는 그 원인행위가 사해행위에 해당하므로 취소되어야 하고 그 등기는 말소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나. 그러나, 심한 가정불화를 겪었던 B와 피고 C가 협의이혼을 하는 과정에서 재산분할의 방법으로 이 사건 부동산을 피고 C에게 귀속시키기로 합의하였고, 실제로 B와 피고 C 사이의 협의이혼 신고가 마쳐지면서 B는 이 사건 부동산에서 퇴거하였고 피고가 이 사건 부동산에서 잔류하며 생활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피고 C측은, 원고 A의 주장과 같이 B가 피고 C에게 이 사건 부동산의 소유권을 귀속시킨 법률행위를 사해행위로 보고 이를 취소하기 위해서는 원고 A에게 ‘피보전권리’가 있어야 하는데, 원고 A가 B에게 이 사건 부동산을 증여할 당시 부담부 증여로 이루어졌음을 인정할 만한 증거자료가 없을 뿐만 아니라, 원고 A가 이 사건 부동산을 B에게 증여하는 과정에서 내심으로 B의 부담(해제조건)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라고 가정하더라도 이러한 내심의 의사가 표시된 바도 없고 B가 이에 동의한 사실도 없었던 이상 이를 부담부 증여로 볼 수는 없다는 내용으로 원고 A의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3. 법적 쟁점
가. 원고 A측이 제기한 사해행위취소소송은 그 청구원인이 피보전채권의 발생, 사해행위, 사해의사 등 세 가지입니다. 이 사건은 위 청구원인 중 ‘피보전채권의 발생’이라는 요건이 문제되는데, 이에 앞서 ‘피보전채권’ 자체가 있는지 여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나. 이 사건에서 ‘피보전채권’의 존재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원고 A의 주장처럼 이 사건 증여계약을 부담부(해제조건부) 증여계약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수증자 B의 부담의무 불이행 여부도 문제되지만, 이에 대해서는 사건의 단순화를 위해 생략하기로 합니다.)
우선, ‘해제조건’이라는 의미부터 살펴보면, 장래에 어떤 사실이 일어나는지 여부에 따라 법률행위의 효력이 발생하거나 소멸하는 법률행위의 부관을 조건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조건에는 정지조건과 해제조건이 있는데, 정지조건은 조건성취로 법률행위의 효력이 발생하는 경우를 의미하고, 해제조건은 조건성취로 법률행위의 효력이 소멸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원고 A는 이 사건 증여계약은 수증자 B의 ‘가업 경영·유지와 배우자와의 원만한 가정생활 유지’라는 부담이 결부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는데, 이에 따르면 수증자 B가 위 부담을 위반하면 부담의무 불이행(해제조건의 성취)으로 인해 이 사건 증여의 효력은 상실한다고 것입니다.
한편 이 사건에서 원고 A측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관련자들의 진술서 등을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계약서에 조건에 대한 내용이 없다면 원고 A의 주장은 부당하다고 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같은 취지에서 대법원은 “해당 법률행위의 부관인 조건은 법률행위를 구성하는 의사표시의 일체적인 내용을 이루는 것이므로, 의사표시의 일반원칙에 따라 조건을 붙이고자 하는 의사 즉 조건의사와 그 표시가 필요하며, 조건의사가 있더라도 그것이 외부에 표시되지 않으면 법률행위의 동기에 불과할 뿐이고 그것만으로는 법률행위의 부관으로서의 조건이 되지는 아니한다고 보아야 한다.”라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15. 10. 29. 선고 2015다219504 판결).
다. 원고 A는 부담부 증여가 이루어진 후 수증자 B의 부담의무 불이행을 이유로 증여목적물 반환청구권을 행사하는 것인데, 이러한 특정채권은 채무자의 무자력, 즉 책임재산의 보전과는 무관한 것이므로 그 실현을 목적으로 한 채권취소권은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같은 취지에서 대법원은 ‘피보전채권의 발생’요건과 관련하여 “채권자취소권은 채무자가 채권자를 해함을 알면서 자기의 일반재산을 감소시키는 행위를 한 경우에 그 행위를 취소하여 채무자의 재산을 원상회복시킴으로써 모든 채권자를 위하여 채무자의 책임재산을 보전하는 권리이므로, 특정물 채권을 보전하기 위하여 행사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또한 사해행위로 인하여 사해행위 이후에 권리를 취득한 채권자를 해친다고 할 수 없으므로 취소채권자의 채권은 사해행위가 있기 이전에 발생하고 있어야 함은 채권자취소권의 성질상 당연한 요건이다.”라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1995. 2. 10. 선고 94다2534 판결).
라. 소결
이 사건 제1심은, 이 사건 증여계약 당시 작성된 증여계약서에는 원고 A가 주장하는 이 사건 해제조건에 관한 내용이 전혀 기재되어 있지 않고, 이 사건 증여계약에 해제조건이 부가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만한 객관적인 자료를 찾을 수 없으므로 이 사건 증여계약이 해제조건부 증여라고 볼 수 없고, 이에 따라 원고 A가 수증자인 아들에 대하여 반환채권을 가진다는 취지의 원고의 피보전채권 주장은 이유없다고 하면서 원고 A의 청구를 기각하였고, 위 판결은 그대로 확정되었습니다.
4. 마무리하며
이 사건 원고 A의 청구는 애당초 정확한 법적 근거와 사실관계를 전제로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A는 아들에게 증여한 부동산 소유권이 아들의 전처(前妻)에게 이전되는 것이 너무 억울한 마음에서 이 사건 소송을 제기했을 것입니다. 증여 이후 가족관계에 어떠한 변화가 생길지, 내 경제상황은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 어려워진 세상에서 가족 사이의 증여계약은 훨씬 어려운 문제가 되어버렸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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