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춘 변호사의 법률이야기] 사기죄에서 처분의사의 의미

이선용 / 2020-10-26 10: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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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춘 변호사(법무법인 집현)
 
[이동춘 변호사의 법률이야기] 사기죄에서 처분의사의 의미
- 대법원 2017. 2. 16. 선고 2016도13362 전원합의체 판결 -
 
1. 이 사건의 사실관계 및 재판의 경과
 
甲은 토지거래허가에 필요한 서류라고 속여서 토지 소유자로 하여금 근저당권설정계약서 등에 서명·날인하게 하고, 이를 이용하여 위 토지에 관하여 甲을 채무자로 하여 대부업자에게 근저당권을 설정하여 주고, 대부업자로부터 금전을 차용하였다.
 
甲은 사기죄로 기소되었다. 제1심은 피해자인 토지 소유자가 甲에게 근저당권을 설정하여 줄 의사가 없었음을 이유로 피해자의 처분행위가 없다고 보아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하였다(수원지방법원 2016. 2. 16. 선고 2014고합693 판결). 검사는 피해자의 처분의사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는 이유로 항소하였으나, 항소심은 항소를 기각하였고(서울고등법원 2016. 8. 17. 선고 2016노744 판결), 이에 검사가 상고하였다.
 
이 사안에서는 사기죄 성립을 위해 요구되는 피기망자의 처분의사를 인정함에 있어서 처분행위로 초래되는 재산상 손해에 대한 인식까지 필요하다고 볼 것인지, 재산변동을 일으키는 행위나 그 상항에 대한 인식이 있으면 충분하고 처분행위의 결과인 재산상 손해에 대한 인식까지는 필요하지 않다고 볼 것인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다.
 
2. 대법원 판결요지(파기환송)
 
[다수의견]
처분의사는 착오에 빠진 피기망자가 어떤 행위를 한다는 인식이 있으면 충분하고, 그 행위가 가져오는 결과에 대한 인식까지 필요하다고 볼 것은 아니다. 따라서 피기망자가 기망당한 결과 자신의 작위 또는 부작위가 갖는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여 그러한 행위가 초래하는 결과를 인식하지 못하였더라도 그와 같은 착오 상태에서 재산상 손해를 초래하는 행위를 하기에 이르렀다면 피기망자의 처분행위와 그에 상응하는 처분의사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서명사취 사안에서 피기망자가 행위자의 기망행위로 인하여 착오에 빠진 결과 내심의 의사와 다른 효과를 발생시키는 내용의 처분문서에 서명 또는 날인함으로써 처분문서의 내용에 따른 재산상 손해가 초래되었다면 그와 같은 처분문서에 서명 또는 날인을 한 피기망자의 행위는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에 해당한다. 아울러 비록 피기망자가 처분결과, 즉 문서의 구체적 내용과 법적 효과를 미처 인식하지 못하였더라도, 어떤 문서에 스스로 서명 또는 날인함으로써 처분문서에 서명 또는 날인하는 행위에 관한 인식이 있었던 이상 피기망자의 처분의사 역시 인정된다.
이와 달리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가 인정되려면 피기망자에게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판시한 대법원 1987. 10. 26. 선고 87도1042 판결, 대법원 1999. 7. 9. 선고 99도1326 판결, 대법원 2011. 4. 14. 선고 2011도769 판결 등은 이 판결과 배치되는 범위에서 이를 변경하기로 한다.
 
[반대의견]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처분결과에 대한 피기망자의 주관적인 인식이 필요하고, 서명사취 사안의 경우 피기망자에게는 자신이 서명 또는 날인하는 처분문서의 내용과 법적 효과에 대하여 아무런 인식이 없으므로 처분의사와 그에 기한 처분행위를 부정함이 옳다.
사기죄의 처분의사 판단에서 피기망자에게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필요 없는 것으로 해석하는 다수의견에 의하면 사기죄 성립 여부가 불분명해지고, 그 결과 처벌 범위 역시 확대될 우려가 있다. 행위자의 기망적 행위가 개입한 다수의 범행에서 피기망자의 인식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사기 범행과 사기 아닌 범행을 명확히 구분해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피기망자로 하여금 자신의 행위로 인한 결과를 미처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위법한 기망행위를 통해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행위자를 형사처벌하고자 한다면, 다수의견과 같이 사기죄에 관한 확립된 법리의 근간을 함부로 변경할 것이 아니라 별도의 입법을 하는 것이 올바른 해결책이다.
 
3. 판례 해설
 
판례는 사기죄의 성립요건으로서 피기망자의 처분의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상판결은 종래 판례에 따라 처분의사 필요설의 입장을 취하면서도 처분의사의 내용에 대하여는 착오에 빠진 피기망자가 어떤 행위를 한다는 인식이 있으면 충분하고 그 행위가 가져오는 결과에 대한 인식까지 필요하다고 볼 것은 아니라고 하여, 피기망자에게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본 기존 판례의 입장을 변경하였다. 위 사안과 같이 피해자를 속여 문서에 서명날인을 받는 이른바 서명사취의 경우 기존 판례의 입장에 따른다면 피기망자의 진의는 근저당권설정의사가 아니라 토지거래허가였으므로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없다고 보아 甲에게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았을 터이고, 대상판결의 원심 또한 기존 판례와 같은 입장을 취하였다.
 
대상판결은 일반인의 법감정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숱한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사례를 생각해 보라). 그러나 대상판결에 의하면 피기망자에게 행위에 대한 인식만 있다면 처분의사가 긍정되므로 처분의사는 외피만 두른 채 아무런 내용도 없는 공허한 개념이 되어 처분의사 불요설과 사실상 차이가 없는 결과가 된다. 대상판결의 반대의견이 더욱 설득력을 갖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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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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