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판적 사고로 국가정책을 평가하는 방법
2019년 7월 현재 한국 정부는 일본과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 대법원이 일본 전범 기업들에게 일제 시대 강제 징용자에 대해 보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이후 양국의 입장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중이다. 멀게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식민지 지배에 대한 국가 차원의 보상이 완료됐다는 주장에서부터 법률적으로 ‘보상과 배상은 다르다’는 항변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언론과 정치권도 정부의 대일본 정책에 대해 찬반 의견을 표명하면서 국론이 분열되고 있다. 모두 ‘국가이익 보호’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정치적 이해득실을 계산하느라 분주한 삶을 보내고 있다. 양국의 소시민들도 상대국 제품의‘불매운동’을 벌이면서 전선이 확대되고 있어 자칫 동북아의 정치적 지형이 흔들리 소지도 배제하기 어렵다.
중국과 ‘일전불사(一戰不辭)’의 무역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서도 한미일 정치 및 군사동맹이 훼손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가정보기관은 일반인의 시각을 뛰어넘어 국가정책을 평가해야 하는데 이에 필요한 것이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이다. 국가정보기관이 비판적 사고로 국가정책을 평가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 비판적 읽기와 평가를 통해 비판적 쓰기의 논리 개발
비판적 사고는 ‘합리적, 적극적, 독단적이지 않은 사고’를 말한다. 이성은 경험으로부터 독립한 순수한 사고이며, 이론 이성과 실천 이성이 있다. 전자는 ‘가정을 설정해 추론하고 개별적 사실들을 개념화해 판단 및 추론하는 것’이고, 후자는 ‘인간의 실천적 행위와 관련해 본능이나 충동, 감각적 욕구에 좌우되지 않고 자신의 의지와 행동을 합리적으로 결정하는 능력’이다. 비판적 사고는 비판적 읽기(critical reading), 비판적 평가(critical evaluation), 비판적 쓰기(critical writing) 등의 과정(process)으로 구성되며 세부 내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비판적 읽기는 ‘주어진 텍스트(text)로부터 비판적 사고의 요소를 파악하는 과정’이다. 비판적 사고의 9가지 요소는 현안 문제(question at issue), 결론(conclusion), 가정(assumption), 목적(purpose)과 목표(goal), 개념(concept), 정보(information), 관점(point of view), 함축(implication), 맥락(context)과 배경(background) 등이다.
텍스트를 읽는 과정에서 위에서 제시한 9가지 요소를 파악해야 한다. 대부분 독자들은 자신이 읽고자 하고 내용이 있는지 혹은 잘 알고 있는 주제에 관련된 것인지에 관심을 갖고 있다. 최고 정책결정권자인 정보소비자도 정보기관이 생산하는 정보보고서의 독자이므로 유사한 성향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보기관의 정보분석관은 수집된 첩보나 1차 분석된 자료를 비판적 사고의 9가지 요소를 염두에 두고 텍스트를 읽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둘째, 비판적 평가는 ‘주어진 텍스트를 비판적 사고의 기준에 입각해 비평’하는 것을 말한다. 비판적 사고의 9가지 기준은 분명함(clarity), 정확성(accuracy), 명료성(precision), 적절성(relevance), 중요성(significance), 논리성(logicalness), 폭넓음(breadth), 충분함(sufficiency), 깊이(depth) 등이다. 분명함은 ‘애매하다’는 표현의 반대말이고, 명료성은 ‘모호하다’라는 말과 대비된다. 분명함, 정확성, 명료성 등은 텍스트의 내용이 일반상식에 부합하고 근거에 철저하게 기반했는지 여부를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모두 유사한 의미를 갖고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되겠지만 정보기관의 정보분석관은 미묘한 차이로부터 영감을 얻게 된다.

셋째, 비판적 쓰기는 ‘현안 문제에 대해 주어진 텍스트와는 다른 대안적 견해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과정’이다. 비판적 글쓰기가 논술의 과정에 해당되며 수험생들이 관심을 갖는 영역이다. 비판적 글쓰기에 대한 물음은 명확성, 타당성, 신뢰성 등이 있으며 글쓴이가 스스로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명확성은 ‘핵심 개념의 정의가 명확한가?’, 타당성은 ‘제시된 근거로부터 주장이 제대로 도출됐는가?’, 신뢰성은 ‘주장의 근거는 의심스럽지 않은가?’, 사고의 폭과 깊이는 ‘주장을 입증하기 위한 근거나 설명이 충분히 지적인가?’등이 해당된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 정답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정답은 글쓴이를 설득하는 차원을 넘어 정보소비자인 최고 정책결정권자로부터 합리적 의심을 받지 않을 수준의 정교함을 갖춰야 한다.
◈ 여론을 뛰어넘을 수 있는 비판적 사고로 정책결정권자 보좌해야
토론보다는 주입식 교육에 익숙하고, 주변인과 다른 의견을 표명하기보다는 집단사고(Group Think)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비판적 사고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민족의 5000년 역사에서 자신이 옳다고 판단하는 주장을 펼쳤다가 귀양을 가거나 생명을 잃은 정치지도자가 많은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일반인도 비판적인 사고를 하기보다는 동료와 비슷한 유형의 사고를 하면 최소한 피해는 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을 즐겨 사용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새로운 시각을 키울 수 있는 비판적 사고에 익숙한 서양인과는 차이가 많은 편이다. 비판적 사고는 중세 이후 서양이 문명의 발상지인 동양을 뛰어넘어 세상을 지배할 힘과 논리를 개발할 수 있는 핵심동인(key driver)로 작용했다. 국가정보기관이 비판적 사고로 국가정책을 평가하는 방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가의 주요한 정책의 생애주기(life cycle) 과정에서 1%의 오류 가능성을 차단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국가정보기관은 국가정책결정의 진단, 정책의 수립 및 조정, 정책의 선택, 정책의 집행 등에 필요한 정보를 생산하기 때문에 정책의 오류 여부에 집중해야 한다. 미국의 ‘이라크전쟁 실패’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정책에서 사소한 오류라도 발생하면 국가안보와 국가이익이 극도로 위험해진다.
국가정책의 문제점을 발견하는 능력은 직위의 고하나 직무의 연관성과는 관련성이 낮다. 사고의 깊이와 넓이는 풍부한 경험, 폭넓은 지식과 무관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필요충분조건에 해당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특히 보수적인 한국인의 특성, 더 보수적이고 현상유지적 성향을 갖고 있는 국가정보기관 직원의 태도를 감안하면 비판적 사고능력을 배양하는 것은 쉽지 않다.
둘째, 국가행정 서비스를 전 국민 모두에게 공평하게 배분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국가정책을 평가해야 한다. 최고 정책결정권자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토대로 반대파와 치열한 논쟁과 가열찬 투쟁을 펼쳐 권력을 쟁취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호적인 지지를 보내는 정치세력에게 우선적으로 혜택을 제공하고 배려한다.
하지만 5년 단임제로 합법적으로 권력 연장이 불가능한 한국의 대통령은 반대자에게 관대할 필요가 있다. 설혹 국가정책에 반대한다고 해도 모두 국가가 보호해야 하는 동일한 국민이라는 생각을 잃지 않아야 한다. 정보기관은 최고 정책결정권자를 보좌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정보보고서의 정치적 편향성을 제거해 모든 국민이 일치단결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겠다는 자세를 잃지 않아야 한다.
셋째, 정보기관은 모두가 옳다고 믿는 사고를 타파하는 과정에서 최적의 정책대안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 견고하게 확립해야 한다. 유능한 정치지도자는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매한 다수 백성의 심리를 조작해 ‘거짓’도 ‘진실’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역사를 통해 증명된다. 독재나 공포정치가 일상화되면 여론조작은 더 쉬워진다.
거짓을 잠시 동안 진실로 둔갑시킬 수 있겠지만 ‘거짓이 진실’이 될 수는 없다. 조직이나 국가 모두 집단 최면에 걸리면 망할 수밖에 없다. 현대사회에서 지식이 넘쳐나고 학력 수준이 높아지면서 국민 모두가 합리적 사고능력과 판단 기준을 갖고 있다고 착각하는데 현실은 오히려 반대다. 정보기관은 악마의 대변자(devil’s advocator)처럼 내부에서 반대를 위한 토론자를 양성하고 기존의 관념과 상식을 뒤엎어야 최적의 정책대안을 찾아 최고 정책결정권자를 보좌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정보기관은 비판적 사고를 통해 정책의 질(quality)을 높이는 것이 국가의 총합적 이익을 증대시킬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국가정보기관 직원은 부평초처럼 떠돌아다니는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비판적 사고를 통해 최적의 정책을 최고 정책결정권자에게 제공할 수 있을 때 존재가치가 극대화된다. 국가정보기관에서 소위 말하는 ‘예스맨’은 국가와 조직을 빨리 망하게 만드는 충실한 조력자로 최우선 경계대상이다. 비판적 사고는 불평불만을 떠벌리는 사람을 양산하기보다는 현자로 불릴 수 있는 국사(國師)를 양성하는 도구(tool)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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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문의 : 민진규 교수(stm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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