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호 변호사의 법조단상] 민주적 기본질서

피앤피뉴스 / 2025-11-21 16:13:41
“민주적 기본질서”

 

 


▲최창호 변호사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기 이전에는 법대에 입학하는 경우 일반적으로 교양과정을 마친 후 2학년이 되어서야 법학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학부 2학년 1학기가 되어 헌법 총론을 배울 때 헌법에 규정된 ‘민주적 기본질서’를 공부하게 된다.

우리 헌법 제8조 제4항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편, 헌법 제111조 제1항 제3호는 정당의 해산심판을 헌법재판소가 관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당해산제도는 방어적 민주주의(abwehrbereite, wehrhafte Demokratie) 혹은 전투적 민주주의(streitbare Demokratie)의 산물로 알려져 있다. 헌법 제8조 제4항의 규정은 정당을 해산시키는 경우에 일반 결사보다 휠씬 강화된 절차적 보장을 헌법이 직접 규정함으로써 정당 특권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헌법 제8조 제4항에서 언급하고 있는 민주적 기본 질서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하여 견해가 나뉘고 있다. 민주적 기본 질서는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라는 견해(권영성), 이보다 넓은 개념으로 자유민주적 기 본질서뿐만 아니라 사회 민주적 기본 질서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이해하는 견해(김철수), 헌법이 지향하는 기본적인 질서가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사회복지국가원리를 도입하고 있으므로 민주적 기본 질서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는 상호 별개의 충돌하는 개념이 아니라 상효융합적인 개념으로 이해하여야 한다는 견해(성낙인), 대한민국 헌법이 정하고 있는 헌법 질서를 의미한다는 견해(정종섭), 민주적 기본 질서는 정치 질서이므로 사회경제질서와는 무관하다는 견해(전광석) 등이 있다. 이러한 견해는 복지정책을 거부하는 정당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되는가 하는 쟁점에 대한 입장에서 그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우리 헌법 제8조 제4항이 의미하는 민주적 기본 질서는, 개인의 자율적 이성을 신뢰하고 모든 정치적 견해들이 각각 상대적 진리성과 합리성을 지닌다고 전제하는 다원적 세계관에 입각한 것으로서, 모든 폭력적ㆍ자의적 지배를 배제하고, 다수를 존중하면서도 소수를 배려하는 민주적 의사결정과 자유ㆍ평등을 기본권리로 하여 구성되고 운영되는 정치적 질서를 말하며, 구체적으로는 국민주권의 원리,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제도, 복수정당제도 등이 현행 헌법상 주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라고 판시하고 있다(헌재 2014. 12. 19. 2013헌다1).

이러한 헌법 제8조 제4항의 민주적 기본질서 개념은 정당해산결정의 가능성과 긴밀히 결부되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민주적 기본 질서의 외연이 확장될수록 정당해산결정의 가능성은 확대되고, 이와 동시에 정당 활동의 자유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민주 사회에서 정당의 자유가 지니는 중대한 함의나 정당해산심판제도의 남용 가능성 등을 깊이 고려한다면, 헌법 제8조 제4항의 민주적 기본 질서는 최대한 엄격하고 협소한 의미로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위헌정당해산제도가 야당탄압의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제도가 오히려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제도로 역기능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적 기본 질서는 입헌적 민주주의 체제를 실현하는데 불가결한 요소들로 한정하여야 한다(이황희).

정당해산심판제도는 정부의 일방적인 행정처분에 의해 야당이 등록 취소되었던(이른바 ‘진보당사건’에 관한 대법원 1959. 2. 27. 선고 4291형상559 판결 및 이 판결에 대한 재심판결인 대법원 2011. 1. 20. 선고 2008재도11 판결 참조) 우리 현대사에 대한 반성의 산물로서 제3차 헌법 개정을 통해 헌법에 도입되었다.

독일 기본법은 제21조 제2항은 “정당의 목적이나 당원의 활동이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침해 또는 제거하려는 것이거나, 독일연방공화국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에는 그 정당은 위헌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 제8조 제4항의 ‘민주적기본질서’는 독일 기본법 제21조 제2항의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 질서’와 동일한 의미로 보인다.

형사절차에서는 형사판결에 못지않게 그 이전의 절차 진행만으로도 형사절차의 대상이 된 피의자 또는 피고인에게 상당한 처벌의 의미를 가지는 경우가 있다. 민주적 기본 질서라는 용어는 정당해산절차의 내용적 요건 중에서 핵심에 해당한다고 할 것인바, 정당해산절차가 남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는 민주적 기본 질서에 관한 명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최창호 변호사
서울대 사법학과 학·석사 출신으로 1989년 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군법무관을 거쳐 1995년에 검사로 임용되어, 공안, 기획, 특수, 강력, 의료, 식품, 환경, 외국인범죄, 산업안전, 명예훼손, 지적재산, 감찰, 송무, 공판 등의 업무를 담당한 바 있고,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헌법재판을 경험한 후 법무부 국가송무과장으로 대한민국 정부 관련 국가 송무를 총괄하면서 주요 헌법재판, 행정재판 및 국가소송 사건을 통할하고, 정부법무공단의 발족에 기여했다. 미국과의 SOFA 협상에 참여한 바 있으며, 항고, 재기수사명령 등 고검 사건과 중요경제범죄 등 다수의 사건을 처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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