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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오래전에 독일의 대학원이 아닌 미국 로스쿨로 유학을 갔었던 소수 학자들 중의 한 명이었다.
한국의 대학원 석사과정 및 박사과정에서 특별히 미국 연방대법원(the U.S. Supreme Court)의 사법심사(judicial review)를 연구했던 것이 미국 로스쿨 유학의 가장 큰 계기가 되었다.
미국의 최초 로스쿨은 1784년 태핑 리브 판사가 개인적으로 설립한 리치필드(Rich Field)로스쿨이었다. 그러나 이는 지금의 미국 로스쿨과는 거리가 먼 단순한 학원 수준이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의 로스쿨 모습을 갖춘 최초의 로스쿨은 1817년 하버드(Harvard)목사가 세운 하버드 로스쿨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스쿨(School)은 미국 뿐만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정식적인 학문연구 기관인 단과대학과 다르게 특정 직업을 양성하는 ‘직업훈련원’과 유사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1602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보스톤 연안 플리머스에 당도했던 102명의 청교도들의 리더는 영국의 변호사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미국 개척 초기에 변호사 양성기관의 설립이 시급했었다.
그래서 영국의 법원인 판례법, 즉 보통법(common law)체계를 이식하여 급히 서둘러 만든 것이 로스쿨이었던 것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여 판단해본다면, 로스쿨은 법철학과 성문법에 기반을 두고 사회적 정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대륙법계의 체계적인 학문연구기관인 법과대학이나 법과대학원과는 그 성격이 달랐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흔히 말하는 영미법계와 대륙법계가 어떻게 다른지 밝혀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필자가 과거 미국 로스쿨로 유학을 간 뒤 얼마 되지 않은 시간에 발생한 에피소드였다.
미국 헌법 수업시간에 필자 옆자리에 앉던 캐트리나 캘리라고 하는 백인 여학생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스코틀랜드 출신이라고 소개하면서 필자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우린 넘 비슷한 나라에서 왔네요. 우리 스코틀랜드는 영국의 식민지였고,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었죠?”라고 대뜸 말하는 것이 아닌가?
살짝 황당한 면도 있었지만, 그녀의 단정한 외모와 아주 알아듣기 쉬운 영어 액센트에 반해 난 “예스”라고 말하고 말았다. 그렇게 한국과 스코틀랜드 양국의 식민지 역사의 아픔을 공유한 뒤 찾아온 두 번째 미국 헌법 수업시간에 제이(Jay)교수님이 어떤 법(law)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도저히 이해가 안되어서 동료인 캘리에게 “캘리! 아까 교수님이 얘기했던 그 법은 어떤 법인가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대뜸 “당신은 지금 어떤 판례(case)를 말하는 건가요?”라고 질문하는 게 아닌가. 평생 대륙법계의 법학을 공부하면서 성문법 위주로 연구해온 내게는 실로 충격적인 질문이 아닐 수 없었다. 영미법계에서 살아온 그들에게 법은 곧 법원의 판결, 즉 판례였던 것이다.
만약 어떤 법적 사건이 발생하여 재판이 진행된다면, 우리 대륙법계의 법원에서는 일차적으로 그 사건에 어떤 성문법을 적용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그러나 영미법계의 법원에서는 일차적으로 그 사건에 과거의 어떤 판례를 적용할 것인지에 대해 숙고하게 되는 것이다.
하여튼 이 에피소드에서 발견할 수 있듯이 대륙법계와 영미법계는 법의 개념이라는 원론부터 그 출발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두 법계에서 그러한 법을 공부해 법조인이 되는 교육시스템이 서로 다른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즉, 미국의 로스쿨 교육제도는 해방 이후 성문법을 법원으로 삼고 있는 대륙법계의 학문적 연구체계를 수용했던 우리나라의 법학교육 시스템인 법과대학, 법과대학원과는 원론적으로 판이하게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성문법체계 하에서의 법조인 양성은 사법시험제도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일반적으로 법과대학 4년을 졸업한 후 평균 4~7년 정도 고시공부를 한 뒤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자는 2년간 전문적인 법조실무 양성기관인 ‘사법연수원’에서 연수를 받고 성적순에 따라 판사, 검사 그리고 변호사의 직업을 가지게 된다.
필자는 이런 사법시험의 출제위원 및 선정위원을 역임하면서, 그동안 쌓여온 법무부의 문제은행 관리 및 출제 노하우에 감탄한 바 있다.
오래전에 법무부의 위촉을 받고 사법시험 제1차시험 헌법 과목의 객관식 문제를 출제한 적이 있었다.
그때 느낀 감동과 감흥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는 나의 소중한 기억이 되었다. 필자를 포함한 다수의 법학 교수들과 현직 검사, 직전에 해당 과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사법연수원생 등이 2주간 보안이 철통같았던 합숙시설에 합숙을 하게 되었다.
우리 헌법 과목팀은 필자를 포함한 중견 교수 2명의 출제위원 파트, 경력 5년 이하의 법학교수 1명과 법무부 소속 검사 1명, 직전 헌법 과목 성적 우수 사법연수원생 1명으로 이루어진 검토위원 파트로 구성되었다.
우리 출제위원들은 가장 먼저 법무부 문제은행에 들어있는 헌법 객관식 문제들 중에서 출제가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문제들을 추출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출제위원들이 선정한 문제를 검토위원 파트로 넘기면 두뇌회전이 빠른 젊은 검토위원들이 그 문제가 기출문제에 포함되어 있는지의 여부와 헌법 이론적으로 이상이 없는지의 여부를 함께 검토하였다.
출제위원 파트와 검토위원 파트의 세 차례 검토회의를 거쳐서 최종 채택된 문제들은 다시 출제위원 파트에서 관련 법령, 학설, 헌재 판례, 대법원 판례들을 참조하면서 수정하는 작업을 하였다. 그렇게 수정된 문제들은 재차 검토위원 파트로 넘겨지고 검토를 받은 뒤 또 세 차례 검토회의를 한 뒤 윤독회를 통해 교정 및 교열작업을 하였다.
위와 같은 대륙법계의 법학교육시스템과 법무부 주관의 사법시험 출제 시스템은 정말 우리만의 우수한 법조인력배출 시스템이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0년 이후부터 미국 로스쿨로 해외 연수를 다녀왔던 소수 교육부 공무원들과 사법개혁을 부르짖는 소수 정치가들의 피상적인 경험에 힘입어 전국적인 사법개혁운동으로 이어졌고 결국 2007년 7월 3일 국회 본회의에서 ‘로스쿨 법’이 통과되었다.
분명히 필자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우리 법학계와 우리 사법시험제도는 제1차적 법원인 성문법령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분석을 행해왔고 제2차적 법원인 판례에 대한 연구도 수많은 세월 동안 축적된 판례들과 법학 교수들의 평석을 통해 독자적인 대한민국 법체계를 토대로 굳건히 존립하고 있었다.
그러나 단순히 미국 로스쿨이 학부에서 법학전공이 아니어도 쉽게 진학하여 변호사가 될 수 있다는 환상에 가까운 견해를 가진 소수 고위직 공무원과 정치가들에 의해 미국사회와 미국 법학계에만 적합한 미국식 로스쿨 교육제도가 도입되고 말았다.
영미법계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영국의 보통법 체계와 로스쿨 교육제도는 우리의 법문화와 법학교육 시스템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영국과 영국에 기원을 두고 있는 미국의 법문화는 완벽한 소송문화라고 할 수 있다. 살짝 과장을 한다면 영국과 미국에서는 아주 사소한 이웃간의 다툼도 거의 다 법정으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개인 주치의 보다 개인 변호사가 더 필요한 법문화이다.
그리고 그들의 로스쿨에 진학하려는 비법학전공자들은 학부시절부터 법학의 선수과목인 정치학, 경영학, 경제학, 논리학, 심리학 등을 수강하며 로스쿨 입학시험인 LSAT(Law school Admission Test)를 준비한다.
그리고 평균적으로 1년에 8천만 원 이상의 등록금도 비싸게 생각하지 않는다. 장차 미국 변호사 활동을 통해서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50개 주 중 두 번째로 가장 작은 메인주(Maine State)보다 작은 대한민국에 약 2백만 명의 변호사를 배출한 초대형 국가인 미국의 로스쿨제도는 그동안 축적된 우리 법학교육 시스템과 사법시험 체계를 무너뜨리며 특히 우리의 법학 학문 연구방식과 우리의 법문화를 파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우리의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고 싶다.
김형남 교수
캘리포니아 센트럴 대학교, 단국대, 경성대 법대 교수 | 법학박사 | 미국 워싱턴 주 변호사 | 세계헌법대회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 성균관대학교 법학연구원 연구위원 | 15년간 법무부 법조인력정책과 사법시험 제1차시험 출제위원, 제2차시험 출제위원, 제3차 면접위원 | 15년간 행정안전부 국가고시센터 출제위원, 선정위원 및 면접위원 (행정고시, 5급 승진시험, 국가직 7급·9급, 지방직 7급·9급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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