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성제의 다락] 계요등

피앤피뉴스 / 2024-01-27 10:59:46
계요등
설성제


덩굴을 보았다. 난간을 오르는 중이었다. 베란다 바로 앞에 있는 화단을 기어다니다 우리 집을 찾아오거니 여기며 무심하게 두었다. 올봄에도 여느 봄날과 마찬가지로 화단의 꽃들에 정신이 팔려 새로운 덩굴은 본 체 만 체 했다.

유난히 긴 올여름, 덩굴이 베란다 난간을 휘감았다. 난간 꼭대기, 바로 내 눈앞에 꽃망울이 가득했다. 여름 복판에 이르자 보랏빛 앙증맞은 꽃들이 환상적인 수를 놓았다. 검은 구름이 사방을 조여오거나 비바람이 칠 때면 덩굴 꽃은 어두워지려 했던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었다.

아침이면 베란다로 달려 나가 말을 걸었다. 어쩜 이리 예쁘냐는 혼잣말을 덩굴 꽃은 알아듣고 보랏빛 미소로 대답했다. 전에 없던 찌는 듯한 여름을 이름 모를 덩굴식물이 주는 잔잔한 위로와 평안으로 보내는 중이었다.

보기만 하고 이름을 모르니 갑갑한 마음이 들었다. 물어물어 알아보니 계요등(鷄尿藤)이다. 꼭두서니과의 여러해살이풀인데 줄기나 잎에서 닭 오줌 냄새가 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닭 오줌 냄새? 바짝 다가서던 발걸음이 한 발 뒤로 주춤한다. 설마하니 싶어 닭장 안을 킁킁거리듯 코를 대본다. 닭 오줌 냄새는커녕 아무런 냄새가 없다. 코를 한참 들이박고 있노라니 그저 비 지난 후의 짙은 풀냄새 정도다. 그런데 계요등이라는 요상한 이름에 눈으로만 보던 것을 속속들이 냄새 맡아보고 자꾸만 만져본다. 닭 오줌이라는 가당찮은 말이 나를 휘감아온다.

백과사전을 열어보니 잎이나 줄기를 찢어보면 닭 오줌냄새가 난다고 적혀있다. 그럴 리가. 믿어지지 않는다. 아닐 것이다. 세상에는 이름과 다르게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 예전엔 오히려 귀한 자식일수록 개똥이니 돌쇠니 라는 허드레 이름을 붙여 주변 사람들과 둥글둥글 살아가게도 하지 않았나. 잘생긴 바람에 세상 눈길을 독점해 시기질투의 대상이 되는 것보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붙여진 이름처럼 말이다. 여름땡볕에 보석 같고, 몰아치는 태풍에 흔들리지 않는 등불 같은 계요등도 아마 반어적 이름이 아닐까.

그럼에도 그냥 넘어가지지 않는다. 계요등을 한번 후벼 파보고 싶어진다. 미안한 마음으로 잎을 떼고 줄기를 꺾어 펄떡거리는 코앞에 조심스레 대어본다. 닭 오줌냄새가 아닐 것이라고 믿고 싶다. 냄새는 가차 없이 내 콧속으로 뛰어들어 머리로 가슴으로 요동쳐나간다. 그렇다, 닭 지린내가 맞다. 다시 한 번 잎과 줄기를 떼 내어 얼굴 앞으로 끌어당기는 순간이다. 영락없는 닭 오줌냄새에 그만 잎을 거머쥔 손을 놓아버린다. 그리고는 생각들이 가슴을 저민다.

그동안 얼마나 내 눈길을 끌었던지 모를 이 계요등의 이름을 차라리 몰랐더라면 좋았을 것을. 사람들에게 혹은 화단 식구들에게 어떤 불이익을 주는 것도 아닌데, 보이는 모습 그것만을 바라보지 못하고,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냄새를 캐내고 말았으니, 엎질러진 물이다. 왜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던가. 계요등을 향한 관심이, 아니 집착이 도를 넘었나. 이런 마음을 세속적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인가.

사랑에는 더더욱 ‘거기까지만’이라는 거리 조절이 필요하다. 더 알고 싶어 속을 후벼 파다 정작 낭패를 당하는 쪽은 이쪽이다. 냄새 안 나는 이가 없고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다는 말처럼 너무 많이, 깊이, 보이지 않는 것까지 억지로 알고부터 마음을 다친다. 그러다 서로 멀어지게 되고 결국 이별하는 이들이 어디 한둘인가. 덩굴 꽃은 그대로인데 내 마음의 눈이 바뀌어버렸다. 습관대로 늘 아침마다 인사를 하지만 그럴 때마다 닭 오줌냄새 생각이 계요등과 나 사이에 안개처럼 드리워져 있다.

닭 오줌냄새에 갇혀 긴긴 여름을 보내다 가을을 맞는다. 화단에 가녀린 코스모스와 늘 상사병에 걸려있는 꽃무릇이 왔다. 계요등은 꽃이 지고 씨를 가득히 맺어간다. 가을 겨울 지나 내년 봄이면 화단이 또 왁자해질 것이다. 키가 제일 큰 잣나무는 새순을 기린 목처럼 뽑아 올린 뒤 또 뾰족하게 바늘잎들을 키워갈 것이고, 꽃이라곤 없는 꽝꽝나무들도 떡하니 자리를 지키며 뼈가 굵어지고 있다. 영산홍 꽃불은 봄이 다하도록 활활거리다 풍화될 테고. 또 여름이면 진딧물 많기로 유명한 무궁화는 백의(白衣)를 입고 나라를 위해 무궁무궁 노래한다. 나라를 망치기로 작정하고 귀화한 망초 군단은 무궁화나무를 포위해오지만 잽도 안 되는 대거리를 하다 사라진다. 여차하면 날아갈 태세인 민들레 홀씨, 작살로 꽂히는 햇볕과 씨름하느라 고집스럽게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풀들. 이 모두 지금까지 보이는 모습 그대로를 좋아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계요등 덩굴이 가을바람에 난간을 부여잡고 여위기 시작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랑했던 당신, 계요등. 모르긴 몰라도 살 같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환상적 보랏빛 꽃이 금방, 다시 보고 싶어질 것 같다. 

 

 

설성제
2003년 예술세계 수필 신인상
울산문인협회 회원
한국에세이포럼 편집장
지역 도서관 문예창작 강의
저서 「거기에 있을 때」외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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