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를 발견한 문학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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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자.”
그 친구의 등을 도닥거리며 교무실 밖으로 나와서 조회대 옆 계단에 앉았다.
“네가 말 안 하면 세상은 아무도 네 마음 몰라.”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던 그 친구는, 그래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때 남학생치고는 참 예쁘게 생긴 학생 한 명이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형. 아직도 말씀 안 드렸어?”
나와 같이 앉아 있던 고등학교 2학년 친구의 별명은 ‘문학 하마’였다. 장래 희망이 작가가 되는 것이어서 입학하자마자 문학반에 들어왔다고 했다. 1학년은 자기 혼자뿐이어서 문학반이 없어질까 불안했다고 한다. 그래서 중학교 후배인, 지금 우리 앞에 서 있는, 워낙 바른 말을 잘하고 곱상하게 생겨서 ‘정의의 이름으로 너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만화 주인공 ‘세일러 문’이란 별명을 가진 친구에게 작년 가을부터 문학반이 아주 좋으니 들어오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렇지만 문학반이 해체된 지금은 세일러 문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참. 형. 왜 그렇게 말이 길어. 선생님. 정규 동아리는 없어졌지만 자율 동아리는 만들 수 있다는 말씀을 들었어요. 그래서 형이랑 제가 자율 동아리 문학반을 만들어보려고 해요. 선생님께서 지도교사를 맡아 주시면 안 될까요?”
문학 하마는 간절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음…. 자율 동아리는 위험부담이 커. 내년에 또 사라질 수도 있고…. 그러지 말고, 우리 정규 동아리 만들자.”
“될까요?”
문학 하마가 신중하게 물었다.
“내가 학교에다 건의해 볼게. 그런데 제일 중요한 것은 학년당 일곱 명씩은 지원자가 있어야 하는데, 모을 수 있겠니?”
“모아야죠. 제가 중학교 때 학생회 부회장이었는데요. 친구들에게 거짓말, 헉! 아니고요. 잘 설득할 자신은 있어요.”
세일러 문이 괜스레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어떻게 노력했는지 모르겠지만 고등학교 1학년 여덟 명, 2학년 일곱 명, 모두 열다섯 명으로 정규 동아리 문학반은 만들어졌다.
동아리 첫 시간.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오합지졸’이란 말이 머리에서 랩처럼 계속 맴돌았다. 교사를 오래 하다 보면 처음 보자마자 학생들에 대한 견적이 나올 때가 있다. 이 아이들은 손이 많이 가야 하는 학생들이고, 멀지 않아 난장판을 펼칠 가능성이 충분한 아이들로 보였다. 감정을 다독거리며 출석을 부른 뒤 한 명씩 나와서 자기소개를 해보라고 했다. 문학 하마와 세일러 문은 가장 나중에 발표하라고 했다.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칠판에 순번과 이름을 쓰고 이 순서대로 나오라고 했다.
- 철학과로 진학할 예정입니다. 여러분은 잘 모르겠지만 문학과 역사와 철학은 하나입니다. 문사철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문학반에 들어왔습니다. 철학이 뭐냐면 말입니다.
아이들은 지겹다는 듯 야유를 보내고, 이름도 말하지 않은 채 자기 소개를 끝낸 철학자는 뒷짐을 지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후배에게 철학에 관해 떠들다가 졸기 시작했다.
- 중학교 때 문예반 반장이었습니다. 문예반 선배 형이 와서 술을 사줬습니다. 그 자식 때문에 문예반 반장 일주일 해보고 짤렸습니다. 다시는 이런 거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세일러 문이 꼬셔서 왔습니다.
술은 끊었냐는 질문에 문예반 반장은 실실 웃기만 하였다.
- 대학을 문과로 갈 예정입니다. 그래서 동아리 점수 따려고 왔습니다.
‘대학 간다고 네가?’ 친구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 웹툰 작가의 재능이 제 몸에 흐르고 있습니다. 웹툰 스토리 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지원했습니다.
웹툰 작가가 자기가 만든 캐릭터라고 하면서 칠판에 그림을 그렸다. 형편없었다. 웹툰 작가가 발표할 무렵부터 아이들은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작은 고무 공을 바닥에 튀겨대는 아이도 있었다.
- 제 이름은 정하온. 노래 부르는 걸로 제 소개를 대신 할까 해요.
자기소개를 하는 아이들 가운데 처음으로 자기 이름을 말했다. 그러고는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어딘가 어색하고 불편해 보였다. 하온이가 부른 노래는 심수봉 가수가 리메이크한 ‘젊은 태양’이었다. ‘우리는 너나없는 이방인 왜 서로를 사랑하지 않나’라는 부분에서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듯 불렀고 아이들은 물건을 집어 던졌다. 사실 하온이는 입학 때부터 친구들의 눈길을 끈 아이였다. 우리 학교는 기독교 학교여서 일주일에 한 번씩 강당에서 예배를 드린다. 예배에 앞서 찬양 반이 찬양을 부르는 시간에 하온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 음악에 맞춰 활발한 몸짓을 했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워서 다른 친구들이 웃어대도 혼자 행복한 바보처럼 웃는 표정을 지으면서 몸을 움직이던 아이였다. 하온이가 노래를 마친 후부터 교실 안은 엉망진창이었다. 갑자기 화장실을 가려 해서 나에게 야단맞는 아이도 있었고, 문학 하마는 듣지 않는 친구들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혼자 문학에 대한 강의를 삼십 분하고, 철학자는 졸다가, 문학 하마의 이야기 중간중간에 맥락 없이 박수를 치고, 세일러 문은 군대 신병 훈련 조교처럼 반말로 짧게 자기소개를 마쳤다. 그때까지도 발표를 하지 않던 아이들은 억지로 우르르 나와서 ‘그냥 왔는데요.’, ‘저도요.’, ‘저도요.’, ‘얘가 다 말했는데요.’,‘저도요.’라고 말하고 킥킥대며 빠르게 자리로 들어갔다. 나는 한숨을 쉬며, 다음 시간부터 각자 쓴 글이 있으면 가져오라고 했다. 첨삭을 해주겠다고 말했지만, ‘첨삭’이란 단어를 모르는 아이가 대부분인 것 같았다. 첨삭 받고 싶지 않으면 독서를 해도 좋고 각자 공부할 것을 가지고 와서 공부해도 좋다고 했다.
두 번째 동아리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난장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문학 하마와 세일러 문의 글이 꽤 괜찮았다는 것이었다. 특히 문학 하마는 지금 등단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둘을 제외하면 교실은 ‘이상한 나라의 초현실주의자’들이 모여 있는 것 같았다. 읽을 책을 가지고 온 아이는 단 한 명, 문예반장뿐이었다. 무슨 책인지 궁금해서 봤더니 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였다. 문예반 반장에게 술을 먹인 그 형이 준 책인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했다. 담배 냄새가 역하게 났다. 문예반 반장과 내 옆으로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로트레아몽이 도라에몽 동생이냐? 담배 피우면 좋냐? 하고 실없는 농담을 진지하게 하다가 이내 킬킬 웃어댔다. 공부할 거리를 가지고 온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하온이는 구석 자리에서 기타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구경하는 아이들, 삼삼오오 떠드는 아이들, 잠을 자는 아이들. 진지하게 나에게 다가오더니 화장실에 다녀와도 괜찮냐고 노려보면서 말하는 아이. 다른 친구들을 쳐다보다가 창밖을 바라보다가 작은 소리로 욕을 내뱉는 아이…. 나는 깊고 길게 한숨을 내쉬며 교실 구석 책상에 걸터앉아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다음 시간에 동아리를 재선택할 수 있게 되는데 자칫 문제아들이 몰려드는 반이 될 것 같은 걱정도 들었다.
하온이가 무대에 서 있었다. 찬양 반 친구들과 함께 몸짓으로 찬양하고 있었다. 평소 학생들과 형제처럼 지내는 젊은 전도사님이 하온이를 무대 위로 올라오게 한 것이다. 강당 안에 있는 아이들은 무대 위에서나 무대 아래에서나 모두 즐거워하며 하온이의 몸짓을 따라 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순간, 내 마음에서 아! 하는 탄성이 나왔다. 교사에게는 학생들 밖에 있는 틀과 학생들이 잘 어울리도록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학생들 각자의 빛깔을 잘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먼저라는 사실을, 문학반에서는 잠시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 문학반 동아리 연간 일정표를 밤늦도록 수정했다.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마음과 만나고, 그것을 바탕으로 아이들의 앞날을 생각해볼 수 있는 일종의 진로상담 프로그램으로 문학반을 운영할 계획을 세웠다. 열다섯 친구들 각자의 이름으로 폴더를 만들고 개개인의 특성을 정리한 파일들로 채워나가기로 했다.
동아리 세 번째 시간. ‘문장 완성 카드놀이’를 했다. ‘누가’, ‘누구와’ ‘어디서’, ‘무엇을 했다’에 해당하는 말을 각각 종이에 쓰고 이를 뒤섞어 문장을 만드는 놀이였다. 예를 들면 ‘철학자와 문학 하마는 우주에서 수영을 했다.’와 같은 문장이 나오면 왜 그랬는지를 각자 이야기하는 놀이였다. 같은 놀이를 세 번 했다. 두 번째는 친구들 이름이 아닌 어른들이나 다른 나라 사람의 이름도 괜찮다고 했다. 세 번째는 비밀로 하기로 하고 평소에 하고 싶은 내용을 적자고 했다. 웃음이 끊이지 않던 놀이는 세 번째 어떤 내용에서는 숙연해지기까지 하였다. 놀이를 마치고 그 종이들을 큰 그릇에 넣고 태웠다.
- 여기까지 이런 사연들 안고 오느라 고생 많았다.
내 말을 듣고 심각한 표정을 짓는 그 모습들이 우습게 보이기도 했다.
동아리 네 번째 시간. ‘한국 만화 박물관’으로 견학을 갔다. 눈썰미가 좋은 웹툰 작가가 제일 신이 났다. 나는 그 친구에게 문장 완성 카드놀이를 할 때부터 동아리 활동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기는 역할을 맡겼다. 만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자료를 수집하는 활동이 중요하다는 말도 함께 건넸다. 문학 하마에게는 문학반 활동을 계속 메모하는 작업을 하라고 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관찰이 필요하고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므로 문학반 활동을 통해 그 연습을 해보라고 했다. 시 쓰기를 즐겨 하는 세일러 문에게는 문학반 활동을 하면서 만난 대상들을 비유하는 표현을 만들어보라고 하였다. 아이들 모두에게는 만화 박물관에 오고 가면서 바라본 거리의 간판 중 눈에 들어오는 이름을 메모해 둔 뒤 그 뜻을 다음 동아리 시간에 와서 발표하라고 하였다. 만화 박물관 이외에도 대형 서점, 동네 서점도 방문하였다. 아이들은 학교를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지 계속 웃음꽃을 피웠다.
여름 방학을 앞둔 1학기 마지막 동아리 시간. ‘감정 카드 나눔’ 시간을 가졌다. 감정 카드 하나를 선택한 뒤 5분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발표자가 아닌 듣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하고 시작했다. 철학자는 자신의 아버지가 지리산에서 철학관을 운영하고 계셔서 일 년에 몇 번도 못 본다고 하였다. 어머니께서 험한 일을 하시면서 집안 생활을 책임진다고 하셨다. 그래서 아버지도 밉고, 사실은 철학도 싫다고 하였다. 오늘 생각해 보니 철학이 중요한 학문이라고 말한 이유는 그래야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하온이가 이야기했다. 자신은 중학교 1학년 때까지 미국에서 살았는데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했다. 부모님께도 말씀드리지 않았다고 했다. 오늘도 자신은 노래를 부르겠다고 하며, ‘젊은 태양’을 불렀다. 이번에는 기타를 연주하면서 차분하게 불렀다. 그렇게 아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많이 아픈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자신을 세상에 꺼내놓기에 힘겨워하는 친구들이었다. 나는 일종의 고해성사처럼 이야기했다. 처음에 너희들을 하찮게 봤다고, 포기하려 했다고, 그냥 올해만 때우려고 했다고, 너희들의 상처를 보려고 하지 않았다고, 많이 미안하다고 …. 그날 우리들은 많이 울었다.
가을이 되었다. 문학반 하마가 문집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동안 문학반에서 활동한 내용을 글로 써서 정리하면 괜찮을 것 같다고 하였다. 물론 결과물이 있어야 생활기록부 동아리 활동 내용이 풍성해지리라는 계산도 깔려 있다고 부끄러운 듯 말했다. 제목도 아이들과 의논해서 정했다고 했다. ‘경계선’. 자신들이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이고, 글을 쓴다는 것은 ‘경계선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하고 궁금해하는 과정인 것이 두 번째 이유라고 했다. ‘두 번째 이유가 아주 멋진데.’라고 말하자 아이들이 와르르 웃었다. 내가 동아리 첫 시간에 아이들에게 했던 말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날 아이들은 내 말을 듣고 있던 것이다. 자료를 모으고, 글을 쓰고, 합평회를 하고, 교정 교열을 하는 산고의 시간을 보냈다. 문학반 모두 함께 그 시간을 보냈다.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 꽤 알찬 문집 ‘경계선’이 세상에 나왔고, 문학반 아이들은 동인지를 만든 경험이 있는 ‘작가’들이 되었다. 문집이 나올 즈음 학교는 축제를 준비하는 기간이었다. 우리는 출판 기념회 겸 카페를 운영하기로 했다.
카페는 대성공이었다.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들이 많이 다녀가셔서 문학반 카페 ‘로트레아몽의 경계선’은 늘 바빴다. 바리스타 못지않게 커피를 잘 타는 친구가 둘이나 있다는 사실도 그날 알았다. 일 년 동안의 활동 모습, 작품을 낭송하는 문학반 친구들, 연극처럼 철학을 강의하는 철학자와 문학을 강의하는 문학 하마,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하온이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카페 안에서 화면을 통해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카페 수익금도 꽤 많이 생겼다. 책이나 영상물을 사서 도서관에 기증하자고 아이들이 제안했다. 나는 책을 두 권씩 사서 한 권은 자신이 갖고 한 권은 도서관에 기증하자고 수정 제안했고, 친구들은 흔쾌히 승낙했다.
동아리 마지막 시간. 롤링 페이퍼를 썼다.
- 문학 평론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문학에 매몰되지 않고 문학에 관한 것들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제 삶이 넓어졌습니다. (문학 하마)
- 선생님 덕분에 아주 멋진 등대를 하나 발견했어요. (세일러 문!)
- 담배 끊었어요. 로트레아몽 이해하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문예반장)
- 저랑 늘 함께 노래 불러주셔서 감사해요. (정하온 올림)
- 웹툰 작가에서 사진작가로 꿈을 바꿨어요. 잘했죠? (웹투니)
- 제 경계가 어디 쯤인지 생각해보라는 선생님 말씀 멋있었어요!(얼떠리)
- 글을 잘 쓰지 않아도 문학은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얼떠리2)
- 저도요! (얼떠리3)
- 나도요! (얼떠리4)
- 앞으로 글을 쓰면서 살지는 않을 것이에요. 하지만 문학은 계속 좋아하게 될 것 같아요.(실용주의자)
문학반 친구들 가운데 문학을 업으로 살게 될 이들은 한둘뿐이란 것을 나는 안다. 그러나 앞날을 엮어나가면서 그들은 문학반 동아리 추억에 관해 이야기를 자주 할 것이고, 문학은 맺힌 마음을 풀어낼 수 있는 소중한 영역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도 나는 안다.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상담심리교육전공 졸업
서울시교육청학부모지원센터 학부모교육 강사
자기주도학습 코칭전문가
문청소년진로연구소 소장
한국독서치료연구소 부소장
대광고등학교 진로진학 컨설턴트
서울 YWCA 청소년부 자문위원
한국 인성 교육협회 위촉교수
前 중동 중학교, 대광 중고등학교 국어교사
대광 고등학교 진로 교사, 상담실장, 생활관장
영락 고등학교 심리학 강사, EBS 출연교사
저서 「외로워서 그랬어요」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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