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지도사의 길을 걷게 된 금쪽이”
문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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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영. 4대째 목사님 집안에서 태어난 친구. 어머니께서 마흔에 난 늦둥이이자 외둥이. 초등학교 때까지는 자기 마음대로 하다가 선생님께 자주 야단을 맞고, 중학교 때는 고집을 자주 피워 친구들에게 은근한 따돌림을 당하고 자신도 아이들에게 무관심한 척 하면서 책만 읽으며 지낸 아이. 학교 밖에서 숙박하는 학교 행사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아이. 그래서 별명이 ‘금쪽이’가 되어버린 아이. 고등학교에 와서는 선생님하고만 대화하는 것으로 유명해진 아이. 그래서 별명이 ‘꼰대 금쪽이’로 변해버린 아이. 2학년 때처럼 내 수업 교재를 들어주기 위해 왔다가 올해는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내 말을 듣고 당황한 표정으로 한참 노려보다가 교무실을 나가고 그 뒤부터 인사는커녕 눈도 마주치지 않는 아이. 그런 주영이와 고3 첫 진학 상담을 하는 시간.
“교대로 진학하고 싶어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중학생 때는 가르쳐서 고치려고 해도 소용없어요. 초등학교 때 확실하게 가르쳐야 올바른 사람으로 만들 수 있어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
“교사가 되고 싶구나. 그런데 지금 네 성적으로는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니?”
“어느 정도 올려야 해요?”
“많이. 아주 많이 올려야 해.”
“올해 죽어라고 공부해서 성적 올리면 가능해요?”
“생활기록부 내용은 교사가 되기에 필요한 부분들은 거의 채워져 있구나. 자. 그럼 이렇게 하자. 일단 이번 1학기에 죽어라고 공부해라. 모의고사를 치르고 난 결과를 참고하고, 1학기 내신 성적이 나오면 여름 방학 전에 한 번 더 상담하자.”
인사도 하지 않고 건조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교무실을 나서는 주영이를 보면서 나는 한숨을 쉬었다. 올바르게 가르치는 교사…. 아이들과 생활하는 것이 즐거운 교사 …. 그러나 고민을 오래 하기에는 3월 고3 담임 업무는 무척 바빴고, 우리 반에는 주영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문 선생. 점심 약속 있어요?”
민 선생님. 내 고교 시절 국어 선생님. 우리 아버지와 월남전 십자성 부대에서 함께 근무하신 분. 그래서 늘 나를 친아들처럼 보살펴주시는 나의 멘토. 나와 함께 우리 반 아이들 국어 수업을 하시는 원로 선생님. 3월 말이 되어 입안이 터지고 코안에 열꽃이 잔뜩 피고 눈이 충혈이 된 내가 안쓰러우셨는지 가정식 삼계탕으로 몸보신하자고 하셨다. 교문을 나서는데 올해 신규 교사 여선생님 세 분을 만나서 점심을 함께 먹게 되었다.
“제가 오늘 아이들 앞에서 야단치다가 고개를 숙이고 울었어요. 제가 부족해서 그런 것인데 아이들에게 심하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다음부터는 잘해보자. 이렇게 말하고 고개를 들어보니 얘네들이 모두 빙글빙글 웃고 있었어요. 그리고 회장이 일어나더니 저에게 ‘반사’, 이랬어요. 너무 속이 상해요.”
“저는 요즘 밤마다 꿈을 꿔요. 우리 반 아이들을 장풍으로 날려 보내는 꿈이요.”
“문 선생님은 담임 반 아이들하고 잘 지내시잖아요. 비결 좀 알려주세요. 저희도 10년쯤 되면 선생님처럼 여유 있게 잘 지낼 수 있나요?”
“저요? 하하. 저도 어제 꿈을 꿨어요. 우리 반 아이들을 일렬로 세워 놓고 한 명씩 칠판을 잡으라고 하고 야구방망이로 때리려는 꿈이었어요. 그런데 팔이 마비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아서 방망이를 휘두를 수 없었어요. 아이들은 제 옆에서 계속 비웃고 있고요. 아내가 저를 깨웠어요. 제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나 봐요. 저도 선생님들과 별 차이 없어요. 그래도요. 요즘은 꿈에서 깨고 나면 기분이 좋아요. 아! 내가 아직까지 아이들에 관한 꿈을 꾸고 있구나 이렇게 생각해요. 세월이 주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제 말이 너무 길었죠? 선생님께서 여기 미녀 삼총사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나의 장광설을 듣고 계시던 민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요? 허허. 여기 문 선생님 있잖아요. 이 나이에 이렇게 순수하게 선생 노릇하기 힘들어요. 난 집에 가면 잠 자기 바쁜데…. 꿈을 꾸는 선생님들이 부러워요. 허허. 그런데요. 이 문 선생을 누가 키운 줄 아세요? 나에요. 이 문경보가 내 제자란 말이에요. 그 아이들도 이다음에 선생님들 제자이고요. 허허.”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올해만 지나면 문득 민 선생님께서 정년퇴임을 하신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울적해졌다. 아! 저분이 학교를 떠나고 나면 나는 누구에게 기대어 지낼까?
“선생님. 아이들 조용하게 해주세요. 교실에서 너무 시끄럽게 떠들어요.”
주영이가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교무실에 와서 소리를 질렀다. 주영이의 손에는 국어 문제집 두 권과 오답 노트, 펜이 들려있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소란스럽게 하는 줄 알았으나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떠든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종례 시간에 고3 교실은 도서실 같아야 한다고 엄하게 말했다. 종례를 마치고 교무실에 왔을 때 회장, 부회장, 장학 부장 세 명이 나에게 와서 이야기했다. 사실은 주영이가 학급 회의 시간에 건의해서 쉬는 시간에 그렇게 큰 소리로 떠드는 아이는 없다고 하였다. 체육 시간에 옷을 갈아입고, 이동 수업 때 반 친구들끼리 농담을 하는 것까지 주영이가 화를 내는 상황이라고 이야기했다. 주영이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자신들은 좀 억울하다고 말했다. 속이 깊은 부회장은 주영이의 신경이 너무 예민한 것같아 걱정스럽다고 했다.
“그래도 열쇠는 너희들이 갖고 있는 것 아닐까? 최주영에 대해서는 선생님보다 너희들이 잘 알잖아. 선생님도 대책을 세워볼 테니 너희들도 조금만 더 노력해 주었으면 좋겠다.”
다음 날도 주영이는 교무실에 와서 아이들이 여전히 떠든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한 번 더 아이들에게 엄하게 훈계했다. 아이들은 나를 바라보지 않고 고개를 숙이거나 주영이를 노려보기만 했다. 주영이는 나의 훈계나 친구들의 시선에는 신경 쓰지 않고 국어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가면을 쓰고 아슬아슬하게 외줄타기 놀음을 하는 기분이었다. 며칠이 지난 후 저녁, 주영이가 문자를 보내왔다. ‘여전히 아이들은 선생님 말을 무시하고 교실 분위기를 망치고 있습니다.’로 시작한 문자는 주로 떠드는 아이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교무실로 주영이를 불렀다. 거칠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최주영! 언제까지나 친구들 탓만 할래! 교실에서 공부하기 힘들면 교실 바로 옆에 자습실도 늘 개방이 되어 있고, 점심에는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면 되는데 왜 그래! 교실이 네 왕국이라도 되니? 왜 그렇게 네 마음대로 다하려고 해! 너 초딩이야? 세상이 다 네 마음대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해? 다른 방법을 찾을 줄도 알아야지!”
나의 큰 소리에 움찔 놀라서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주영이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교무실을 나가려고 했다.
“주영아. 이리 좀 와 볼래? 네가 갖고 온 게 뭔지 궁금하네.”
옆자리에서 교재연구를 하시던 민 선생님께서 주영이를 불러 세웠다. 주영이는 내 눈치를 보면서 민 선생님께 다가가서 국어 문제집과 오답 노트를 건넸다.
“오호! 문제집 두 권 다 잘 선택했네. 국어 공부하는 요령 잘 알고 있네. 이 문제집 네가 골랐니?”
주영이가 어색하게 고개를 흔들더니 나를 가리켰다.
“역시, 국어 선생님이 담임이니까 좋지? 문 선생님 국어 내가 가르쳤잖니?”
“알아요. 선생님이 대한민국에서 국어를 제일 잘 가르치시는 선생님이라고 담임 선생님이 그랬어요.”
“크크 그랬구나. 자. 보자. 와! 많이도 풀었네. 그런데 틀린 문제만 자꾸 틀리네. 문법에 좀 약한가보다. 오답 노트도 보자. 와! 글씨 정말 잘 쓰네. 조금만 더 작게 쓰면 훨씬 시간 절약할 수 있겠다. 국어 수재네. 조금만 더 노력하면 국어 천재도 되겠는 걸. 우리 최주영.”
“선생님. 다음에 국어 문제 물어보러 와도 돼요?”
“담임 선생님하고 의논해 보고 내일 수업 시간에 이야기해 줄게. 괜찮지?”
주영이가 나가고 난 뒤 선생님과 나만 있는 교무실, 그러니까 상담실에 침묵이 맴돌았다. 하루 내내 그랬다. 퇴근 시간이 되었다. 4월 초인데 눈이 날리고 있었다.
“봄눈이네. 문 선생. 저녁에 약속 없으면 나랑 대학로에 가서 커피 한 잔 마시자.”
- 지금도 기억나요. 문 선생이 고1 때 교내 백일장에서 ‘꽃’이란 제목으로 쓴 글. 아마 장원을 했지요. 학교에서 일하시는 용원분들에게 인사를 잘하라는 교장 선생님 말씀에 화가 났다고 시작했던 글.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교장 선생님의 훈화를 듣고, 세상에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했던 말.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자리에서 피어나는 꽃’이라는 표현. 참 좋았어. 아주 좋았어. 그리고 그 학생이 다시 국어 교사로 모교에 온다고 하니 정말 기뻤어요. 하지만 그만큼 염려도 되었어요. 이제 그 염려를 이야기할 때가 된 것 같아요. 교사를 오래 하다 보니 모범생들의 가장 큰 단점은 다른 학생도 모범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이란 걸 종종 발견하곤 해요. 문 선생은 누가 뭐래도 모범적인 학생이었고, 모범적인 교사에요. 그리고 착해요. 거기다 여리기까지 한 사람이에요. 내가 보기엔 그래요. 최주영이를 바라볼 때도 저렇게 살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외될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에 야단을 쳤을지 몰라요. 그러느라고 주영이의 손에 들린 문제집이나 오답 노트에 깊은 관심을 가지지 못했을지 몰라요. 주영이는 자신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것을 문 선생님께 자랑하고 싶어서 자주 교무실에 왔다고 생각해요. 아! 물론 본인은 잘 모를 수도 있어요. 그건 일종의 무의식 같은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요. 어쩌면 문 선생님은 주영이에게 건강한 좌절을 경험하게 하고 싶어서 고3 담임으로 여러 가지 말을 하고, 화도 일부러 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요. 주영이가 좌절을 경험한 적이 없는 아이일까요? 외로웠던 경험이 없는 아이일까요? 그 아이를 문 선생이 밀어내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다가 나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마치 퇴임사, 마지막 인사를 듣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저분과 헤어질 때가 되었다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 후로 주영이는 틈만 나면 민 선생님께 와서 국어 문제를 물어보았다. 선생님은 당신의 자리 옆에 책상 하나를 놓아주셨다. 그리고 수업 시간 국어 문제 풀이 과정을 설명하는 시간에 꼭 주영이를 참가시켰다. 아이들과 주영이는 국어 문제를 중심으로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어 주영이의 별명은 ‘꼰대 금쪽이’에서 ‘국어 멘토’로 바뀌게 되었다. 가끔 민 선생님은 주영이와 나에게 간식거리를 나눠주셨다. 어느 날 주영이가 귤 세 개를 들고 와서 민 선생님 책상에 하나, 내 책상에 하나, 자기 책상에 하나. 수줍게 내려놓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고 중간고사를 마친 후 주영이는 민 선생님 옆 책상을 치워도 괜찮겠냐고 나에게 물어보았다. 민 선생님께 먼저 말씀을 드렸더니 담임 선생님께 허락받으라고 하셔서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달 만에 나누는 대화였다. 이유를 물어보니 쉬는 시간에 반 아이들 국어 문제를 설명해 줘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교실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것은 여전히 신경에 거슬린다고 했다.
중간고사 결과가 나온 후 나는 주영이에게 국어 멘토로 수고한 보상이라고 하며 이어플러그를 선물했다. 주영이가 좋아하는 주황색이었다. 주영이가 빙긋 웃었다. 2학년 수업 시간에 나에게 보였던 미소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학기 기말고사를 마친 후 주영이와 2차 진학 상담을 했다.
- 성적이 많이 오르지 않네요. 다른 아이들도 모두 노력해서 그런가 봐요. 그래도 최선은 다했으니까 실망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제 꿈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서 교대로 가지 않고 청소년 지도학과가 있는 대학에 지원해 보려고 해요. 청소년 지도사가 되는 것으로 방향 전환을 했어요. 선생님. 이건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건데요. 사실 저는 집에 가면 아버지랑 거의 대화를 안 해요. 아니 못 해요. 교회 일로 너무 바쁘시거든요. 아버지도 할아버지와 대화를 많이 못 나누셨다고 해요. 그래서 저랑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지 늘 잘 모르겠다고 하셨어요. 그런데요. 학교에 와서 저는 두 분 선생님 덕분에 아버지, 할아버지 다 만난 것 같아요. 선생님이 절 야단치시지 않으시고, 민동희 선생님께서 저를 예뻐해 주지 않으셨으면 전 지금도 늘 우울하게 지내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저도 두 분 선생님처럼 아이들을 엄하게 야단치기도 하고 따뜻하게 안아주기도 하는 청소년 지도사가 되려고 해요.“
이듬해, 주영이는 청소년 지도학과로 진학하였다. 민 선생님께서도 정년퇴임을 하셨다. 스승과 제자, 모두가 떠난 학교에는 나 혼자 남았다. 쓸쓸한 2월이었다.
세월은 무정하게 빠르게 흘러갔다. 어느덧 나는 민 선생님의 자리에 서 있게 되었고, 후배 선생님은 내 앞에서 학생들에게 훈계하고 있었고, 또 다른 주영이들은 야단맞으면서 가지가지 표정으로 자신의 마음을 봐달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나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학생의 이름을 부르며 덕담을 건네고, 후배 선생님께 차 한 잔 마시자고 했다. 떠나간 사람들이 남아 있는 사람과 함께 세상을 살아내고 있었다.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상담심리교육전공 졸업
서울시교육청학부모지원센터 학부모교육 강사
자기주도학습 코칭전문가
문청소년진로연구소 소장
한국독서치료연구소 부소장
대광고등학교 진로진학 컨설턴트
서울 YWCA 청소년부 자문위원
한국 인성 교육협회 위촉교수
前 중동 중학교, 대광 중고등학교 국어교사
대광 고등학교 진로 교사, 상담실장, 생활관장
영락 고등학교 심리학 강사, EBS 출연교사
저서 「외로워서 그랬어요」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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