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사법연수원)과 이이(이자스민)
| 2014-08-05 15:39:50
한국외국어대 철학과 교수 김정겸 이황 - 인간이 되는 공부를 해라. 항상 자신의 마음을 경건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敬이다. 혼자 있을 때도 마치 귀신과 부모가 바로 위에 와 있는 것과 같이, 또 깊은 연못과 얇은 얼음이 발 밑에 있는 것과 같이 하고 혹은 제사 지낼 때의 엄숙한 마음 상태를 끊임없이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면 백리(白里)를 울리는 천둥이 쳐도 마음이 놀라 제기를 떨어뜨리는 일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건한 마음은 그렇게 마음을 먹는다고 하루 이틀에 생길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오랜 기간의 수련을 통해 달성될 수 있는 경지라고 할 수 있다.<이황> “서당(초등교육) → 사부학당, 향교(중등교육) → 소과(초급관리 등용과거시험, 대학입학시험) → 성균관(고등교육, 오늘날 대학) → 대과(고급관리 등용과거시험)”의 고정을 밟는 것처럼 조선시대 학교교육의 과정은 과거 시험제도와 밀접하게 관계되었다. 이처럼 공교육(사부학당, 향교, 성균관은 관학으로서 오늘날 공교육)은 과거시험, 즉 선발시험과 연계되어 있다. 이황은 경쟁만 추구하는 선발적 교육에서는 이상적인 선비를 길러낼 수 없다고 함으로서 서원교육을 강조한다. 퇴계는 서원교육의 핵심을 거경궁리(居敬窮理)라고 보았다. 거경궁리의 교육방법은 다음 그림과 같다. 거경(居敬) 의 방법 궁리(窮理)의 방법 주일무적(主一無適)과 우유함영(優游涵泳) . 독서궁리(讀書窮理)와 격물치지(格物致知) 거경의 방법에서 주일무적(主一無適)은 고요한 방에 홀로 앉아 명상하는 방법이며 우유함영(優游涵泳)은 자연을 소일하며 유유자적하는 방법이다. 궁리의 방법에서 독서궁리독서궁리(讀書窮理)는 책을 읽으면서 그 의미를 심사숙고하는 공부방법이며, 격물치지(格物致知) 는 일이나 사물에 대해 그 원리나 시시비비를 가리는 방법이다. 퇴계는 거경과 궁리의 방법을 통해 위기지학(爲己之學)에 이를 것을 주장한다. 위기지학(爲己之學):敬 거경(居敬) 행(行) 실천(實踐) 궁리(窮理) 지(知) 인식(認識) 이황은 학문과 수양의 방법으로 거경(居敬)을, 목적으로 爲己之學을 중시하였다. 위의 표에서 보다시피 이황은 지행병진(知行竝進)을 강조한다. 즉 알면(知) 실천(行)하는 것으로 배움도 없이 허심을 부려 남에게 알리는데 힘쓰거나 이름과 명예만을 추구하는 위인지학(爲人之學)이 아니라 인간으로써 마땅히 할 도리를 배우고 수양하여 행동으로 옮기는 학문 위기지학(爲己之學)의 실천을 강조한다. 요즘의 학문풍은 남에게 잘난 것을 보여주기 위한 爲人之學의 공부방법을 중요시 하고 있다. 입신양명과 출세를 지향하는 공부를 강조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강조된 이런 공부를 한 사람은 과연 남과 같이 어울려 살아 갈 수 있는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언제부터 우리 삶의 가치가 “공부열심히 해서 돈 많이 벌고 출세해라”가 되었을까요? 이렇다 보니 돈 때문에 웃고 돈 때문에 죽고... 세상이 어지럽게 되는 것이다. 사람되라는 말은 들어 볼 수도 없게 되었다. 자신의 인격완성, 자아실현을 위해서 끊임없이 공부하는 사람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이래서 인문학이 필요한 것이다. 이이 - 내 얼굴과 다르다고 배척하지 말자. 그들 氣 나름의 있으니까 이(理)는 맑고 흐린 데는 물론, 더러운 곳 까지 있지 않은 곳이 없어서, 그것이 각각 그 본성이 되지만 그 오묘함을 잃지 않으므로, 이것은 이(理)가 두루 통한다고 한다. 그러나 기(氣)가 흘러 다닐 때 그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그리하여 맑은 모습, 흐린모습, 찌꺼기와 잿더미의 모습등에 치우친 것이 생긴다. 이것을 일러 기(氣)가 국한 되었다고 한다.<이이> 밑줄 친 부분 ‘이(理)가 두루 통한다(理通)’ ‘기(氣)가 국한되었다.(氣局)’은 이이의 이통기국론(理通氣局論)을 설명하는 것이다. 理는 ‘보편적인 것’이고 氣는 ‘특수한 것’으로 보고 ‘이’는 통하고 ‘기’는 국한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물에 ‘理’가 들어가 있다고 보면 모든 사물은 다 똑같게 된다.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된다.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이 다르고 밥그릇이라도 서로 다르다. 이런 차이가 없게 된다. 이런 차이성에 율곡 이이는 관심을 갖게 된다. 이이는 그 이유를 ‘氣’가 국한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위의 주어진 자료에서도 보다시피 氣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본다. 즉 氣가 여기 저기에 돌아 다니면서 맑은 모습, 흐린 모습, 찌꺼기와 잿더미의 모습등 ‘특수한’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본다. 즉 氣에 의해 사물의 특성이 다르게 나타난다. 이를 그림으로 그려 설명해 보기로 하자! 원통모형의 그릇에 물(H₂O),삼각형 그릇의 그릇의 물(H₂O),호리병의 물(H₂O)을 상상해 보자. <그림>에서 공통적인 것, 즉 ‘보편적인 것(理)’은 무엇인가? 그것은 물(H₂O)이다. 모든 그릇의 물은 모두 같다. 그렇지만 그릇의 모습은 전부 다르다. 여기서 물은 理로서 ‘본질’이라면 원통모형의 그릇, 삼각 뿔형의 그릇, 호리병의 그릇은 기(氣)로서 전부 제각기 다른 모습(형상)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이는 주기론(主氣論)을 강조하는 인물이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삶을 살아야 할까?... 理로서? 氣로서?.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 전부 다르듯이 살고자 하는 삶도 그만큼 다르다. 理만을 강조한다면 이국만리에서 온 외국인의 삶은 얼마나 고달플까? 그들만의 氣를 인정해주고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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