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3‧1운동 알린 앨버트테일러 가옥 ‘딜쿠샤’ 시민 개방

김민주 / 2021-02-26 13: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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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 복원해 살아있는 역사전시관 조성, 사전예약 후 해설 관람

 

[공무원수험신문, 고시위크=김민주 기자] 1919년 3월 1일, 치열했던 독립운동의 현장과 일제의 만행이 세계에 알려지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 있다.

 

일제강점기 미국 연합통신(Associated Press)의 임시특파원으로 3·1운동 독립선언서를 해외에 가장 먼저 타전한 앨버트 W. 테일러(Albert Wilder Taylor)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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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버트 W. 테일러(Albert Wilder Taylor)

 

서울시가 앨버트 W. 테일러가 서울에 짓고 살았던 가옥 <딜쿠샤>의 원형을 복원, 독립의 숨결을 기억하는 역사 전시관으로 조성해 다가오는 3.1절 시민들에게 개방한다. 1942년 앨버트 W. 테일러가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되며 방치된 지 약 80년 만이다.

 

종로구 행촌동에 위치한 지하 1층~지상 2층의 붉은 벽돌집 <딜쿠샤>는 미국인 앨버트 W. 테일러(1875~1948)가 1923년 한국에 거주할 당시 건립한 서양식 가옥으로 2017년 8월 국가등록문화재 제687호(서울 앨버트 테일러 가옥, DILKUSHA)로 지정됐다.

 

딜쿠샤의 주인 ‘앨버트 W. 테일러’는 1896년(고종 33) 조선에 들어와 평안도 운산 금광 감독관을 지내고 충청도의 직산 금광을 직접 운영한 광산 사업가였다. 또한 연합통신 임시특파원(special correspondent)으로 활동하며, 3·1 운동과 제암리 학살사건을 해외에 보도해 일제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알리는데 공헌했다.

 

특히 1919년 아내 메리 L. 테일러(Mary Linley Taylor)가 아들을 출산할 당시, 세브란스 병원 침상에 숨겨져 있던 3·1 운동 독립선언서 사본을 발견하고 갓 태어난 아들의 침대 밑에 숨겨 두었다가 일제의 눈을 피해 외신을 통해 전 세계에 알리게 된다.

 

1942년 조선총독부의 외국인추방령에 의해 테일러 부부가 추방된 후, <딜쿠샤>는 장기간 방치된 채 훼손됐다.

 

서울시는 딜쿠샤의 원형 복원을 위해 2016년 관계기관(서울시·기획재정부·문화재청·종로구)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고증 연구를 거쳐 2018년 복원 공사에 착수, 2020년 12월 <딜쿠샤 전시관>으로 공사를 완료했다.

 

<딜쿠샤 전시관>은 총면적 623.78㎡(지하 1층~지상 2층) 규모로 조성됐다. 내부 1·2층 거실은 테일러 부부 거주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나머지 공간은 테일러 가족의 한국에서의 생활상과 앨버트 테일러의 언론활동 등을 조명하는 6개의 전시실로 구성했다.

 

<딜쿠샤 전시관>은 매주 화~일요일 09:00~18:00 운영되며 입장료는 무료이다. 또한 온라인 사전 예약을 통한 해설 관람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1일 4회 관람이 진행되며, 1회당 관람가능 인원은 20명이다. 사전 관람 예약은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yeyak.seoul.go.kr)’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

 

앨버트 테일러의 손녀이자 유물기증자인 제니퍼 L. 테일러는 “딜쿠샤를 복원해 전시관으로 개관한 서울시에 매우 감사드린다”라며 “이번 개관으로 한국의 독립투쟁에 동참한 서양인 독립유공자가 재조명받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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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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