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울 플레이스’는 어디일까?
숨은 보물을 찾듯이 경이로운 자연과 마주하거나, 꽉 막혀 있던 숨통이 트이는 장소를 발견하거나, 인적이 드문 아늑하고 편안한 카페에서 차 한 잔을 마시게 되면 비밀의 화원처럼 나의 비밀의 아지트로 정하고 싶다. 아지트의 역할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온전한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는 것이다. 결국 나만의 화원은 고사하고 페이스북, 블로그 등에 소개되어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함으로써 누구나 한 번 쯤은 보고 느끼는 장소로 소문이 난다.
이 책은 13인의 작가가 풀어 낸 자신만의 영혼이 머무는 자리 ‘소울 플레이스’를 소개하는 옴니버스 산문집이다. 그들이 찾은 영혼의 안식처는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위안을 주는 장소를 만나게 해준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작가들의 개인 프로필이 더 흥미로웠다. 창작가, 잡지사편집장, 쉐프, 신문기자, 서양화가, 추리소설가, 아나운서, 북 에디터, 시인 등의 다채로운 직업들을 가진 작가들의 소울플레이스는 어디일까? 특정한 장소, 풍경, 직장 등 다양한 플레이스가 소개되어 있는 데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길’이였다. 이구아수 폭포처럼 자연이 주는 위대함도 없고 뉴욕의 하이라인처럼 쉽사리 가볼 수 없는 외국의 풍경도 없지만 여덟 살 소녀에게 세상에 대한 호기심, 두려움이 가득하고 쉬운 길보단 모험 가득한 길을 걷는 것이 그녀의 인생임을 깨닫게 해준 ‘연서로’
“내 방의 이불에 누워서 나는 깨달았다. 새 학교와의 짧은 등하굣길에는 육교가 없었다. 극장도 없었고, 공업사도, 주유소도 없었다. 공상도, 모험도 일탈도 없었다. ‘함께’였으므로 ‘혼자’가 될 수 없었다. ‘쉬운’길이었으므로 ‘긴장’이 없었다. ‘흔한’ 길이었으므로 ‘흥분’도 없었다. 나는 눈치 챘다. 나를 더 매혹시키는 길은 친구들과 손잡고 시끄럽게 떠들며 불량식품을 입에 물고 돌아오는 짧은 길이 아니라, 혼자서 두려워하고 공상하며 아픈 다리 쉬어 가며 걷는 길디긴 길이라는 것을.”
- 윤수정/ 여덟 살의 길, 연서로 중에서
소울플레이스는 현실 도피를 꿈꾸는 것이 아닌, 치열하고 지루한 일상 속에서 잠시 벗어나 자기 자신을 만나고 회복할 수 있는 재충전의 여행이 되길 바라는 듯하다. 나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영혼의 안식처를 만나는 여행을 떠나보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나의 ‘소울 플레이스’는 어디일까? 다른 이들의 안식처가 아닌 나만의 안식처를 책을 읽는 동안 내내 고민해봤다. 내가 자주 가던 카페, 서점, 자주 걷던 거리 등.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나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시·공간을 의미하거나 나 자신, 당신, 우리를 의미하는 지도 모른다. 요리사에게는 요리를 하는 행위가 존재를 거는 것처럼 그에게 부엌은 그랬고, 나에게 소울플레이스는 나의 존재를 온전히 느끼고 미소 짓고 행복할 수 있는 곳이었음 좋겠단 생각을 하니 그 길에 당신이 서 있다. 나 혼자 걷던 길은 ‘연서로’ 같았지만 당신과 함께 가는 길은 바람도 느끼고 햇볕도 쐬고 소소한 일상을 누릴 수 있는 여유로운 길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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