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 소묘
음력 팔월 보름, 추석이다.
추석은 설과 함께 우리민족의 전통명절이지만, 세상이 급변하다보니 해가 갈수록 전통명절의 정취는 점점 퇴색하고 있다. 제 각기 바쁘게 살다보니 명절이 되어도 친지는커녕 가족 형제조차 오붓하게 한자리에 모이지 못하기 일쑤이고, 차량 홍수에 막히고 귀성객들에게 부대끼며 찾아간 고향도 어렸을 적에 뛰어놀던 아련한 추억을 찾아볼 수가 없을 만치 상전벽해가 되어버렸다. 산고개를 넘고 고불거리는 농로 길을 걸어서 찾아간 고향마을에 들어서면 정겨운 초가지붕 뒤로 솟은 굴뚝 사이로 퍼져 오르는 연기도 반갑고, 낯선 이방인을 보고 먼 산을 바라보며 짖어대던 이웃집 삽살개 소리는 이미 구색 맞지 않는 슬래브 집으로 변한지 오래고, 시멘트 포장된 골목길에서는 경운기 소리만 왱왱거린다.
이런 풍경들은 오랫동안 찌들었던 삭막한 도시생활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또, 풍성하게 익어가는 들판의 나락이며, 토실토실한 알밤, 붉게 익어가는 홍시감도 이미 백화점은 물론 대형마트에서도 사시사철 살 수 있고, 맛 볼 수 있기 때문일 게다.
예전에는 설이나 추석은 고작 하루만 쉬는 날이었다. 그러다보니 명절 전날이면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로 밤새도록 철도며 버스터미널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그렇게 찾아간 고향집에서 부모님과 조상들을 찾아뵙고 돌아서는 발길은 어머님이 챙겨주는 햇곡식과 과일들로 묵직해도 가볍기만 했는데, 어느새 편리해진 고속도로와 KTX로 불편은 많이 사라졌다. 1980년대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국민들의 지지를 확보하려는 의도로 설과 추석을 사흘 연휴로 정했는데, 이것은 그만큼 귀성과 귀경길을 완화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하루를 쉬다가 사흘을 쉬도록 한 전통명절의 휴일제도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다며 지난해부터 공휴일이 일요일과 겹칠 경우에는 다음날을 휴일로 대체한다는 대체휴일제가 시행되었다. 공휴일이 일요일과 겹쳐서 실제로 즐기지 못하는 날짜수를 확보해준다는 것이지만, 이것이 과연 산업사회에서 생산과 국가경쟁력에 있어서 얼마나 도움이 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물론, 휴식이 생산 에너지를 충전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지만, 아직 우리사회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기 위하여 허리띠를 졸라매고 더 땀을 흘려야 한다. 불필요한 제도가 아니라 많은 국민들은 1980년까지의 급격한 경제성장에 따른 국민소득의 증가를 기대하고 있지만, 국민소득이 향상되지 않은 채 삶의 질 향상만을 부르짖은 결과는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3D: Difficult, Dirty, Dangerous)은 하지 않으려는 겉 멋쟁이들만 양상해서 20대 백수가 즐비한 현실에서 아직은 시기상조가 아닌가 싶은 것이다.
기업들로서는 똑같은 날에 작업을 시키는데도 유급휴일이라고 급료를 주어야 하고, 또 휴일에 근무하는 근로자들에게는 휴일근무수당을 주어야 하는 이중부담이니 산업경쟁력에서 문제가 아닐 수 없지만, 못난 위정자들은 돈 들이지 않고 인기 없는 편안한 방책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다보니 십 수 년째 소득은 제자리걸음이고, 경제는 수렁의 길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도 경제는 활성화되어 목표한 성장률을 달성하고 있다는 허풍을 늘어놓고 있으니, 언제까지 이런 사기꾼 같은 말을 듣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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