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오후] 7년의 밤

/ 2015-07-07 15: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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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 : 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출판사 :은행나무


주변 지인들이 간혹 나에게 재밌는 책을 추천해달라고 한다. 나는 책을 쉽게 추천해주지 않는 편인데, 내가 재밌게 본 책이라고 하더라도 상대는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상대의 성향이나 기분을 먼저 파악하고자 한다. 이후 책을 읽을 때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비로소 그 책을 선물해준다. 


그러나 상대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책을 추천해주는 경우일때는 최대한 술술 읽힐 수 있는 책을 추천해주고자 한다. 그러한 책들 중 한 권이 정유정의 ‘7년의 밤’이란 책이다. 한 여름 바닷가에서 휴가를 즐길 수도 있지만, 이 무더위를 차디찬 세령호에 가라앉아 세령마을에서 열을 식히는 경험을 하길 원한다면 이 책은 안성맞춤이다. 


이 소설의 장르는 스릴러라고 하기엔 충분하지 않다. 스릴러보다 더 큰 개념인 서스펜스 소설이라고 하는 게 맞을 듯 하다. 서스펜스란 영화, 드라마, 소설 따위에서, 줄거리의 전개가 관객이나 독자에게 주는 불안감과 긴박감을 의미한다.
 
“소설을 끝내던 날, 나는 책상에 엎드린 채 간절하게 바랐다. ‘그러나’ 우리들이, 빅터 프랭클의 유명한 말처럼,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예스’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 ..." <작가의 말>중의 한 글귀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이 글귀를 본다면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도 ‘그러나’가 있을 수 있는 일들이 어느 날 갑자기 운명처럼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7년의 밤>은 현재와 과거로 인물의 시선을 따라 이동한다. 이야기는 잔혹하고 무자비한 살인마의 아들로 현재를 살아가는 서원의 시선을 따라 전개된다.

어느 곳에도 정착할 수 없고, 평생 ‘살인마의 아들’이란 꼬리표를 달고 살며 마을 사람들 모두를 집어삼킨 세령호 사건에 멀쩡하게 살아남은 아이, 최서원은 도망치고자 발버둥 친다.

전직 2군 프로야구 선수이자 아들인 서원을 사랑하는 현수는 음주운전사고를 내고 12살의 세령이를 뼛속까지 차가운 세령호에 유기한다. 아내와 딸을 소유물로 여기던 오영제에겐 딸을 죽인 자에게 처절하고 잔인한 복수를 집행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살인자의 아들인 서원에게 복수는 7년 동안 지속된다.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안승환과 재회하며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7년 동안 ‘살인자의 아들’로 낙인찍게 만든 ‘선데이매거진’이 등대마을까지 다시 등장하게 된다. 돌연히 사라진 안승환 아저씨, 그 이후로 아저씨의 취재수첩, 원고가 배달되면서 2004년 세령댐으로 돌아가게 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으로는 7년 전, 소설가이자 다이버인 안승환이 디찬 세령호에 잠수하여 호수 밑에 있는 세령마을을 만나던 장면이다. 과거의 추억과 상처를 덮어버린 세령호에서 죽음과 모든 진실을 알고 있으나 허락하지 않는 듯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책의 스토리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세령호에 잠수하듯이 이 책에 빠져들어 깊숙이 가라앉은 진실들을 알아내길 원하기 때문이다. 또한 책을 원작으로 9월부터 영화를 제작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내년 상반기쯤에는 스크린에서 만나게 된다는 소식이 반갑기도 하고 인물들의 감정묘사나 디테일한 부분들을 어떻게 담아낼지 내심 걱정이 된다. 나는 영화를 보기 전에 원작소설을 먼저 읽기를 권한다. 영화로 다 담지 못한 내용들을 알고 본다면 영화를 보는 내내 더 몰입하게 될 수 있다. 한순간의 실수로 인해 파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한 남자, 서원의 아버지인 현수의 이야기이며 우리에게도 어느 날 갑자기 닥칠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래서인지 소설을 읽으면서 장면마다 내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게 된다. 선택의 기로 섰을 때 어떤 선택을 할 것이며, 선택의 따른 결과를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을 공감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사실과 진실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를 궁금해 하기보단 사실을 진실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내 평생 지키고 싶었던 ‘무엇’, 현수에겐 가족이며 사랑하는 아들이었을 것이다. 최현수가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지만, 그 ‘무엇’은 존중되어져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삶의 주체는 ‘나’인데 본인 의지와는 상관없으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살아가는 인생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스’라고 대답할 수 있을지가 의문스럽다. 서원아버지가 벼랑 끝에서 자신의 생을 걸어 지켜낸 ‘무엇’을 나의 ‘무엇’이라고 생각한다면 ‘예스’란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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