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성과 전파가능성”
| ▲최창호 변호사 |
형법 제307조 명예훼손죄와 제311조 모욕죄는 공통적으로 ‘공연히’라는 구성요건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개인의 사회적 평가를 보호하는 동시에, 불필요한 형벌권 행사를 제한하고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입법적 장치이다. 판례는 전통적으로 공연성을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로 정의해 왔다. 즉,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으로서 공연성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고, 개별적으로 소수의 사람에게 사실을 적시하였더라도 그 상대방이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적시된 사실을 전파할 가능성이 있는 때에도 공연성이 인정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현실의 발언 형태는 단 한 사람 또는 특정한 소수에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적 대화나 일대일 발언을 명예훼손죄의 범위에 포섭시키기 위해 대법원이 통상적인 해석을 넘어 발전시킨 법리가 바로 ‘전파가능성이론’이다.
2. 공연성과 전파가능성이론의 개념
가. 전파가능성이론은 발언의 직접 상대방이 비록 특정된 1인 또는 소수라 할지라도, 그 상대방이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해당 사실을 전파할 가능성이 있다면 공연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법리이다. 즉, 적시 행위 자체는 사적 수준에 머물렀더라도 불특정 다수에게 퍼질 위험성을 매개로 공연성을 충족시키는 구성요건 확장 기술이라 할 수 있다.
나. 다만, 개별적인 소수에 대한 발언을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을 이유로 공연성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막연히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 부족하고, 고도의 가능성 내지 개연성이 필요하며, 이에 대한 검사의 엄격한 증명을 요한다(대법원 2020. 12. 30. 선고 2015도15619 판결).
3. 판례의 태도 및 변천
가. 대법원은 1968년 전파가능성 법리를 처음 확립한 이래 일관되게 이를 유지하고 있다. 개별적·소수에게 전달된 사실이라도 상대방과 피해자 또는 발언자의 관계, 비밀유지의무 유무, 대화의 정황 등을 종합하여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면 명예훼손죄의 성립을 인정한다.
나. 판례는 전파가능성의 범위를 정밀하게 제한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세부 기준을 다듬어 왔다.
(1) 친족 및 사적 친밀관계
피해자의 배우자, 친척, 친구 등 사적으로 매우 친밀한 관계에 있거나 발언자와 강력한 신뢰 관계가 있는 자에게 말한 경우 전파 가능성을 부정하는 경향이 있다.
(2) 공무 및 비밀유지의무
직무상 비밀유지의무가 있는 경찰, 공무원, 혹은 사건 처리 절차상의 관계자에게 고소나 제보 형태로 말한 경우 전파 가능성을 부정한다.
다. 대법원 2020. 11. 19. 선고 2020도5813 전원합의체 판결
(1) 대법원은 전파가능성 법리의 폐지 여부가 정면으로 다루어진 사건에서 다수의견으로 기존 법리를 재확인하였다. 시대 변화에 따른 정보통신망의 발달과 신종 매체의 등장으로 사적 발언의 전파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진 만큼, 피해자의 명예 보호를 위해 전파가능성 법리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취지였다. 다만 처벌 범위의 과도한 확대를 방지하기 위해 엄격한 객관적 사정검증이 필요함을 부연하였다.
(2) 대법원은 공연성 이론을 고수할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공연성에 관한 전파가능성 법리는 대법원이 오랜 시간에 걸쳐 발전시켜 온 것으로서 현재에도 여전히 법리적으로나 현실적인 측면에 비추어 타당하므로 유지되어야 한다. 대법원 판례와 재판 실무는 전파가능성 법리를 제한 없이 적용할 경우 공연성 요건이 무의미하게 되고 처벌이 확대되게 되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전파가능성의 구체적·객관적인 적용 기준을 세우고, 피고인의 범의를 엄격히 보거나 적시의 상대방과 피고인 또는 피해자의 관계에 따라 전파가능성을 부정하는 등 판단 기준을 사례별로 유형화하면서 전파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필요함을 전제로 전파가능성 법리를 적용함으로써 공연성을 엄격하게 인정하여 왔다.”
4. 전파가능성이론에 대한 비판적 견해
학계 및 대법원 반대의견에서는 전파가능성이론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주요 비판 논거는 다음과 같다.
가. 죄형법정주의와 유추해석금지 원칙 위배
국어사전적 의미의 ‘공연히’는 세상이 다 알 만큼 뚜렷하고 공공연하게 드러난 상태를 뜻한다. 특정한 1인과의 일대일 은밀한 대화를 ‘공연한 행위’로 해석하는 것은 문언의 가능한 의미를 넘어서는 불리한 확장해석이자 유추해석이다.
나. 추상적 위험범의 삼중 확장 및 결과책임화
명예훼손죄는 명예가 침해될 위험만으로 성립하는 추상적 위험범이다. 여기에 ‘전파될 가능성’이라는 추측성 요건까지 결합하는 것은 위험의 위험을 처벌하는 격이 되어 형벌의 과잉 지배를 초래한다. 나아가 행위자 본인의 적시 행위가 아니라 제3자의 자발적인 전파 행위에 따라 피고인의 형사책임이 결정되는 모순을 낳는다.
다. 표현의 자유와 사적 통신 자유의 위축
인간은 사적 대화를 통해 타인과 교류하고 소통한다. 은밀한 일대일 대화나 모바일 메시지까지 향후 전파 가능성을 이유로 수사 및 처벌의 대상이 된다면, 국민의 일상적인 사적 대화와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는 현저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5. 결론
전파가능성이론은 개인의 사회적 명예가 유포와 전파를 통해 심각하게 침해되는 것을 막기 위한 법 현실적 필요성에서 발달하였다. 그러나 문언의 한계를 넘어서는 적용으로 인해 죄형법정주의의 엄격성 및 표현의 자유 보장이라는 형법의 대원칙과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다.
향후 판례는 전파가능성이라는 용어 아래 사적 대화 영역까지 무분별하게 형사처벌을 확대하는 것을 극도로 자제해야 한다. 나아가 입법적으로 정보통신망법 규정처럼 ‘공공연하게’ 등의 명확한 구성요건으로 조문을 개정하거나, 전파의 위험성을 넘어서는 현실적인 제한 기준을 정립함으로써 법적 안정성과 기본권 보장의 균형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최창호 변호사
서울대 사법학과 학·석사 출신으로 1989년 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군법무관을 거쳐 1995년에 검사로 임용되어 공안, 기획, 특수, 강력, 의료, 식품, 환경, 외국인범죄, 산업안전, 명예훼손, 지적재산, 감찰, 송무, 공판 등의 업무를 담당한 바 있고,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헌법재판을 경험한 후 법무부 국가송무과장으로 대한민국 정부 관련 국가 송무를 총괄하면서 주요 헌법재판, 행정재판 및 국가소송 사건을 통할하고, 정부법무공단의 발족에 기여했다. 미국과의 SOFA 협상에 참여한 바 있으며, 항고, 재기수사명령 등 고검 사건과 중요경제범죄 등 다수의 사건을 처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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