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성희롱”
| ▲최창호 변호사 |
직장 내 성희롱은 개개인의 인격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근로자의 노동권을 훼손하고 조직 전체의 생산성과 신뢰를 무너뜨리는 중대한 사회적 문제에 해당한다. 과거에는 직장 내 성희롱이 단순하게 개인 사이의 사적인 마찰이나 부적절한 언행 정도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근로환경의 안전성을 위협하는 법적·제도적 규제 대상이자 조직 관리의 핵심 과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 직장 내 성희롱의 개념 및 성립 요건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제2조 제2호는 “직장 내 성희롱”이란 사업주ㆍ상급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 내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하여 다른 근로자에게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또는 그 밖의 요구 등에 따르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근로조건 및 고용에서 불이익을 주는 것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성희롱의 성립 여부를 판단할 때 핵심이 되는 기준은 행위자의 주관적 의도가 아니라 피해자의 주관적 느낌과 객관적인 사정이다. 행위자가 친밀감의 표시라 주장하더라도, 사회통념상 합리적인 사람이 피해자의 입장이라면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인정된다면 성희롱이 성립한다.
이러한 성희롱은 신체 부위의 접촉이나 밀착과 같은 육체적 행위, 외모에 대한 성적 평가나 음담패설 등 언어적 행위, 그리고 음란한 영상이나 게시물을 보여주는 시각적 행위 등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나아가 성적 요구 거절을 이유로 해고, 승진 누락, 전보 등 불이익을 주는 조건형 성희롱 역시 엄연한 법적 처벌 대상이다.
3.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제2항: 조사 의무와 법적 근거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이 발생했을 때 조직이 이행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법적 의무에 관하여는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제2항에 명시되어 있다. 해당 조항은 사업주가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사실을 알게 된 경우에는 지체 없이 그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를 진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업주는 정식 신고 접수뿐만 아니라 제3자의 제보나 소문 등을 통해 발생 사실을 인지한 즉시 지체 없이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를 시작해야 한다. 이때 조사는 형식적인 절차에 그치지 않고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며, 만약 법적 의무를 위반하여 지체 없이 조사를 실시하지 않을 경우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동법 제39조 제3항 제1의4호). 이 조항은 조직 내 성희롱을 묵인하거나 방치하지 않고, 사업주가 책임감을 가지고 즉각적인 사후 조치를 취하도록 강제함으로써 피해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추가적인 피해를 예방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4. 사건 발생 시의 단계별 처리 절차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은 치밀하고 체계적인 절차에 따라 처리되어야 한다. 절차상의 허점은 피해자에게 추가적인 상처를 주거나 피신고인의 방어권을 침해하여 또 다른 분쟁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신고 접수 및 상담 단계에서는 피해자의 의사를 최우선으로 확인해야 한다. 피해자가 정식 조사를 원하지 않고 당사자 간 사과나 부서 이동 등 자율적 해결을 원하는지, 정식 조사를 통한 징계를 원하는지 명확히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둘째,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임시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제3항에 따라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는 한 근무 장소 변경, 유급휴가 명령 등을 시행하여 피해자와 피신고인을 물리적·업무적으로 즉시 분리해야 한다.
셋째, 본격적인 사실 조사에 착수하여 피해자, 피신고인, 참고인 진술을 청취하고 관련 물증을 확보한다. 조사 과정 전반에서는 비밀유지 의무를 엄격히 준수해야 한다.
넷째, 조사를 바탕으로 성희롱 인정 여부를 판단한다. 성희롱이 인정될 경우 사업주는 지체 없이 피신고인에 대해 징계, 근무 장소 변경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하며, 피해자가 요청할 경우 배치전환이나 유급휴가 등 추가 보호 조치를 제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징계 집행 후에도 피해자에 대한 보복 행위가 발생하는지, 2차 피해가 없는지 지속적인 사후 모니터링이 이어져야 한다.
5. 조사 과정에서의 전문성과 객관성 확보
가. 성희롱 사건 조사는 단순한 사실관계 확인을 넘어 성인지 감수성과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 조사가 미숙하게 진행될 경우, 진실 규명이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조사 과정 자체가 또 다른 가해가 될 수 있다.
조사 담당자는 위계구조와 권력 불균형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의 특성을 깊이 이해하는 성인지 감수성을 가져야 한다. 피해자의 진술에서 사소한 불일치가 있더라도 사건 당시의 당황함이나 공포감을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평가해야 하며, 피해자의 평소 태도나 복장 등을 이유로 피해자다움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나. 또한 내부 조사위원만으로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거나 사건 내용이 복잡한 경우, 노무사·변호사·성희롱 예방 전문상담원 등 외부 전문가를 조사위원으로 위촉하거나 조사를 위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조사의 객관성을 확보하고 조직 내부의 온정주의나 편향성을 배제하는 데 효과적이다. 나아가 조사 참여자는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되며, 이를 위반할 경우 강력한 법적 제재와 함께 치명적인 2차 피해를 유발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변호사 또는 노무사라 하더라도 사건의 조사 경험이 없는 사람이 많다. 범죄사건의 수사경험이 많은 변호사 등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6. 2차 피해의 본질과 예방 대책
가. 직장 내 성희롱 문제에서 최근 가장 심각하게 다루어지는 부분은 2차 피해이다. 2차 피해란 성희롱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 발생 이후 조사 과정이나 조직 내부의 대응 과정에서 피해자가 겪게 되는 추가적인 정신적·물질적·직업적 불이익을 의미한다.
나. 이러한 2차 피해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사건 내용이나 피해자의 신원을 조직 내에 유포하는 신상 털기, "피해자에게도 원인이 있다"거나 "승진을 노리고 신고했다"는 식의 악의적 루머와 인격 모독이 대표적이다. 이에 더해 피해자를 업무에서 배제하거나 동료들이 대화를 기피하는 조직적 왕따, 신고를 이유로 한 부당한 전보, 인사평가 불이익, 은밀한 퇴사 압박 등 구조적 불이익 처분 역시 심각한 2차 가해에 해당한다.
다.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제6항은 사업주가 성희롱 발생 사실을 신고한 근로자 및 피해 근로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고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며, 위반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동법 제37조 제2항 제2호). 2차 가해자는 피신고인뿐만 아니라 동료, 상사, 나아가 조직 전체가 될 수 있으므로, 조직 차원의 엄정한 경고와 2차 가해자에 대한 단호한 징계 조치가 필수적이다.
7. 결
직장 내 성희롱은 개인 간의 불미스러운 사고가 아니라, 조직 문화의 부재와 권력 불균형에서 비롯되는 구조적 질병이다.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제2항이 규정한 신속한 조사 의무는 단순한 법적 절차를 넘어, 조직이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올바른 자정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는 시급한 과제이다.
성희롱 사건의 올바른 해결은 철저한 비밀유지 아래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조사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시작된다. 나아가 사건 처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2차 피해를 철저히 차단하는 것만이 피해자의 일상 복귀를 돕고 조직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길이다. 법적 의무 이행을 넘어 성인지 감수성이 작동하는 대등하고 상호 존중하는 조직 문화를 뿌리내릴 때, 비로소 직장 내 성희롱이라는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최창호 변호사
서울대 사법학과 학·석사 출신으로 1989년 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군법무관을 거쳐 1995년에 검사로 임용되어 공안, 기획, 특수, 강력, 의료, 식품, 환경, 외국인범죄, 산업안전, 명예훼손, 지적재산, 감찰, 송무, 공판 등의 업무를 담당한 바 있고,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헌법재판을 경험한 후 법무부 국가송무과장으로 대한민국 정부 관련 국가 송무를 총괄하면서 주요 헌법재판, 행정재판 및 국가소송 사건을 통할하고, 정부법무공단의 발족에 기여했다. 미국과의 SOFA 협상에 참여한 바 있으며, 항고, 재기수사명령 등 고검 사건과 중요경제범죄 등 다수의 사건을 처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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