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직무정지”
| ▲최창호 변호사 |
국회의원의 직무 활동을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정지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을 추진하겠다는 소문이 있다. 의회의 자정과 책임성을 강화한다는 명분을 이유로 한 것일 수는 있겠지만, 법리적·헌법적 시각에서 이는 대한민국 헌정사의 법치주의와 의회민주주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극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의기관의 권한을 단지 원내 일반 의결정족수인 ‘과반수’로 묶어두겠다는 것은, 헌법이 엄격히 규정한 결단을 법률의 이름으로 우회하려는 전형적인 위헌적 시도라는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2. 헌법 제64조의 가중정족수를 법률로 무력화하려는 편법
우리 헌법 제64조는 국회의 자율권과 함께 의원의 신분 보장 절차를 명확히 정하고 있다. 의원의 자격심사는 물론, 신분을 박탈하는 제명(제4항)의 경우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라는 대단히 엄격한 가중정족수를 요구하고 있다. 헌법이 이처럼 높은 문턱을 두어 의원의 제명을 어렵게 만든 이유는 명확하다. 임기 중인 국회의원의 신분을 박탈하는 것은 곧 선거를 통해 대의기관을 구성한 주권자 국민의 의사를 뒤엎는 중대사이기 때문이다. 헌법의 정신은 과거를 돌이켜볼 때 정치 권력이 정적을 제거하거나 야당 의원의 자격을 부당하게 박탈했던 헌정사의 비극적 폐단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헌법적 방파제인 제도로 해석되어야 한다.
문제는 명목상 '제명'이 아닌 '직무 정지'라 할지라도, 그 실질은 의원에게 부여된 핵심 권한인 법률안 심의·표결권, 국정감사권, 발언권 등을 전면 박탈한다는 점이다. 효력 면에서 사실상 제명과 다름없는 중대한 신분상 제약을 단지 법률을 개정해 재적 과반수(일반정족수)만으로 가능하게 하겠다는 것은, 헌법이 명시한 2/3 가중정족수 규정을 단률 법률로 무력화하려는 '헌법 우회'이자 최고규범성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 할 것이다.
3. 다수당의 소수파 압살 도구로 전락할 위험
의회민주주의의 본질은 단순히 다수결의 원리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데 있지 않다. 다수파의 독주를 견제하고 소수파의 자유로운 토론과 반론권을 보장하는 '소수자 보호'야말로 의회주의를 지탱하는 핵심 축이다.
만약 재적 과반수 표결로 특정 의원의 직무를 정지시킬 수 있는 제도가 현실화된다면 원내 절대다수를 점한 정당이 첨예한 정쟁 국면마다 대립하는 소수당 의원들을 집단으로 직무 정지시킬 수 있는 합법적 통로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다수당이 입법권을 독점하는 것을 넘어, 자신에게 비판적인 소수당의 목소리를 원천 봉쇄하는 무기로 악용될 여지가 농후하다.
이는 의원이 다수파의 눈치를 보게 만들고 의회 내 자유로운 의사 형성 과정을 왜곡시킴으로써, 의회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4. 국민주권과 대의제 민주주의의 본질적 침해
헌법 제1조 제2항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하며, 제41조 제1항은 국회가 국민의 선거로 구성됨을 명시한다. 국회의원의 의정 활동 권한은 의원 개인의 특권이 아니라, 그를 선출한 국민(주권자)으로부터 위임받은 대의적 권한이다.
따라서 정당한 헌법적 적법절차나 확정판결 없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좌우되기 쉬운 원내 과반수 표결만으로 의원의 직무를 정지하는 것은, 해당 의원 개인에 대한 제재를 넘어 그를 선출한 지역구 주민들과 정당 지지자들의 정당한 대의권을 박탈하는 것과 같다. 이는 국민주권주의와 대의제 민주주의의 본질적 내용을 직접적으로 침해한다.
아울러 헌법 제44조가 행정부나 다수파의 부당한 압력으로부터 의원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의 제도적 취지 역시, 이러한 정치적 표결에 의한 직무 정지 제도 앞에서 사실상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
5. 헌법의 틀 안에서 자정을 도모해야
국회의원의 부적절한 행위에 대한 엄정한 통제와 자정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 방식은 어디까지나 헌법이 이미 정해둔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의 엄격한 심사와 헌법상의 자격심사 및 제명 절차(재적 2/3), 그리고 무엇보다 다음 선거를 통한 국민의 엄중한 결단에 의한 심판이 바로 그것이다.
정치적 편의나 진영의 논리에 따라 헌법의 엄격한 요건을 법률로 완화하려는 입법적 시도는 헌법의 정신을 우회하는 위헌적 접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헌정 질서의 안정성과 의회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헌법을 우회하는 위헌적 '의원 직무정지' 법안에 대한 논의는 즉시 정지되어야 한다.
최창호 변호사
서울대 사법학과 학·석사 출신으로 1989년 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군법무관을 거쳐 1995년에 검사로 임용되어 공안, 기획, 특수, 강력, 의료, 식품, 환경, 외국인범죄, 산업안전, 명예훼손, 지적재산, 감찰, 송무, 공판 등의 업무를 담당한 바 있고,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헌법재판을 경험한 후 법무부 국가송무과장으로 대한민국 정부 관련 국가 송무를 총괄하면서 주요 헌법재판, 행정재판 및 국가소송 사건을 통할하고, 정부법무공단의 발족에 기여했다. 미국과의 SOFA 협상에 참여한 바 있으며, 항고, 재기수사명령 등 고검 사건과 중요경제범죄 등 다수의 사건을 처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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