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소판결”
| ▲최창호 변호사 |
형사재판에서 유·무죄의 실체판결이 아닌 공소기각이나 면소판결이 선고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실무상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의 유·무죄를 다투는 법정 풍경은 익숙하다고 할 수 있다. 검사는 공소사실을 입증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피고인과 변호인은 무죄를 주장한다. 그러나 법원에 제출된 형사 사건이 언제나 "유죄냐, 무죄냐"의 실체적 판단으로만 끝나는 것은 아니다. 범죄 사실의 유무를 판단하기에 앞서, 소송을 더 이상 진행할 실익이나 법적 명분이 사라진 경우 법원은 ‘면소(免訴)판결’을 통하여 재판을 종결시키는 경우가 있다.
2. 의미
면소판결이란 쉽게 말해 ‘소추(형사소추)를 면한다’는 뜻으로, 공소권이 소멸했음을 이유로 소송을 종결하는 형식적 재판이다. 범죄 성립 여부를 따지는 실체 판결은 아니지만, 일단 확정되면 동일한 범죄 사실로 다시 처벌받지 않는 일사부재리(기판력)의 효력이 발생하는 독특한 성격을 가진다.
3. 사유
형사소송법 제326조가 규정하고 있는 면소판결의 4가지 사유와 그 구체적 의미를 살펴본다.
가. 확정판결이 있은 때
동일한 범죄 사실에 대해 이미 유죄·무죄 또는 면소의 확정판결이 존재함에도 다시 공소가 제기된 경우다. 우리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보장하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국가가 동일한 범행을 두 번 처벌하거나 재판할 수 없다. 판결뿐만 아니라 약식명령이나 즉결심판, 그리고 도로교통법 등에 따른 범칙금 납부 역시 확정판결에 준하는 효력을 가지므로, 범칙금을 납부한 행위에 대해 다시 형사기소가 이루어진다면 법원은 면소판결을 선고해야 한다.
나. 사면이 있은 때
여기서 말하는 사면은 특정 개인이 아닌 범죄의 종류를 지정하여 공소권을 소멸시키는 ‘일반사면’을 의미한다. 형 선고를 받은 자를 전제로 형 집행을 면제해 주는 ‘특별사면’과 달리, 일반사면은 아직 판결을 받지 않은 사건에 대해서도 공소권을 소멸시키므로 면소 사유가 된다.
다. 공소시효가 완성되었을 때
범죄 행위가 종료된 후 법률이 정한 일정 기간이 지나면 국가의 소추권이 소멸한다. 공소제기 당시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거나, 공소가 제기되었더라도 판결 확정 없이 25년이 경과한 경우(형사소송법 제249조 제2항) 법원은 실체 심리를 진행하지 않고 면소를 선고해야 한다.
라. 범죄 후의 법령개폐로 형이 폐지되었을 때
범죄가 행하여질 당시에는 처벌 대상이었으나, 그 이후 법령이 개정되거나 폐지되어 더 이상 형벌을 가할 수 없게 된 경우다. 법령개폐의 모든 경우에 면소판결을 하여야 하는지 법령개폐의 원인에 따라 모든 경우에 면소판결을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는 견해가 나뉘지만, 판례가 동기설을 폐지한 이상 전부면소설이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이창현, 형사소송법, 정독, 2025, 1123면). 다만, 해당 형벌 조항이 당초부터 헌법에 위배되어 무효였던 경우(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등)에는 면소가 아니라 ‘무죄’가 선고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4. 면소판결이 갖는 절차적 특성과 상소의 제한
면소판결은 피고인의 범죄 유·무죄를 가리는 재판이 아니므로 몇 가지 독특한 절차적 특징을 지닌다.
첫째, 실체적 심리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 면소 사유가 명백히 존재하는 이상 법원은 피고인이 실제 죄를 지었는지 여부에 관한 증거 조사를 할 필요가 없으며, 즉시 절차를 종결할 수 있다.
둘째, 피고인 불출석 재판의 허용이다. 면소는 피고인을 형사소송이라는 부담스러운 절차에서 조기에 벗어나게 해주는 판결이므로, 피고인이 법정에 출석하지 않더라도 재판을 진행해 선고할 수 있다. 면소판결이 선고되면 검사는 항소 및 상고를 할 수 있으나, 피고인은 무죄를 주장하면서 불복할 수 없다.
5. 형사사법의 정의와 소송경제를 이루는 축
면소판결은 자칫 ‘범죄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무한정한 국가 형벌권의 남용을 막고 피고인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중요한 제도적 장치다. 이미 일사부재리의 효력이 발생했거나, 시효가 완성되었거나, 법령이 폐지된 사건을 끝까지 법정에 붙들어 두는 것은 소송자원의 낭비이자 피고인에게 부당한 고통을 강요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면소판결은 유죄와 무죄라는 이분법적 틀을 넘어, 형사사법 절차의 법적 안정성과 소송경제, 그리고 피고인의 절차적 권리를 실현하는 형사소송법의 지혜로운 합리화 장치라 할 수 있다.
최창호 변호사
서울대 사법학과 학·석사 출신으로 1989년 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군법무관을 거쳐 1995년에 검사로 임용되어 공안, 기획, 특수, 강력, 의료, 식품, 환경, 외국인범죄, 산업안전, 명예훼손, 지적재산, 감찰, 송무, 공판 등의 업무를 담당한 바 있고,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헌법재판을 경험한 후 법무부 국가송무과장으로 대한민국 정부 관련 국가 송무를 총괄하면서 주요 헌법재판, 행정재판 및 국가소송 사건을 통할하고, 정부법무공단의 발족에 기여했다. 미국과의 SOFA 협상에 참여한 바 있으며, 항고, 재기수사명령 등 고검 사건과 중요경제범죄 등 다수의 사건을 처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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