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세자 권익 구제의 새로운 패러다임 : 절차적 정당성 강화와 세무조사 통제의 진화”
| ▲최창호 변호사 |
1. 서
조세의 부과와 징수는 국가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적인 공권력 행사의 일환이다. 그러나 국가의 과세권 행사가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단순히 실체적 과세요건을 충족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헌법 제12조가 규정한 적법절차원칙(Due Process of Law)은 조세법 영역에서도 예외 없이 관철되어야 하며, 오히려 납세자의 재산권을 직접 제한하는 침익적 행정작용이라는 점에서 더욱 엄격한 적용이 요구된다. 또한 헌법 제23조의 재산권 보장과 헌법 제37조 제2항의 과잉금지원칙 역시 조세행정 전반에 적용되어야 한다.
조세 부과는 국가 운영을 위한 불가피한 제도이지만, 과세권 행사가 자의적이거나 절차적 통제를 결여할 경우 국민의 재산권과 법적 안정성은 심각하게 침해될 수 있다. 따라서 현대 조세법은 단순히 “세금을 얼마나 부과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넘어 “어떠한 절차를 통해 과세할 것인가”라는 절차적 정의의 문제를 핵심 가치로 삼고 있다.
최근 판례의 흐름 역시 이러한 방향으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다. 과거에는 세무조사 과정에 일부 하자가 존재하더라도 실체적인 과세요건과 세액 산정이 적법하다면 과세처분 자체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일부 존재하였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은 세무조사 절차 자체가 납세자의 권리보호를 위한 본질적 장치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세무조사 및 과세예고통지 과정에서 절차적 위법이 발생한 경우 실체적 과세요건의 충족 여부와 관계없이 과세처분 자체를 취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조세절차법의 헌법화 현상이라 평가할 수 있다.
2. 세무조사의 개념과 기본 절차
가. 세무조사의 개념
세무조사란 “국세의 과세표준과 세액을 결정 또는 경정하기 위하여 질문을 하거나 해당 장부ㆍ서류 또는 그 밖의 물건을 검사ㆍ조사하거나 그 제출을 명하는 활동”을 의미한다(국세기본법 제2조 제21호). 행정법적으로는 과세자료 수집을 위한 조사행위로서 행정조사의 성격을 가진다.
다만 세무조사는 단순한 정보 수집을 넘어 납세자의 영업활동과 재산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공권력 행사라는 점에서, 그 개시와 진행 및 종결 전반에 걸쳐 엄격한 절차적 통제가 요청된다.
나. 세무조사의 일반 절차
세무조사는 일반적으로 정기 세무조사와 비정기(특별) 세무조사로 구분되며, 통상 다음과 같은 절차를 거친다.
(1) 사전통지
세무공무원은 조사 개시 15일 전까지 조사 대상 세목, 조사 기간, 조사 사유 등을 납세자에게 통지하여야 한다. 다만 증거인멸 우려나 구체적인 탈루 혐의가 존재하는 경우 등 특별 세무조사에 해당하는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사전통지를 생략할 수 있다.
(2) 조사의 실시와 납세자 권리장전
조사 과정에서 납세자는 변호사, 세무사 등 전문가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또한 세무공무원은 납세자권리헌장 요약서를 교부하고 그 내용을 설명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형식적 절차가 아니라 납세자의 방어권 보장을 위한 핵심 장치이다.
(3) 조사결과 통지
조사가 종료되면 세무공무원은 그 결과를 20일 이내에 납세자에게 서면으로 통지해야 한다. 최근 사법부는 이 기간 준수 역시 단순한 훈시규정이 아닌 강행규정의 성격을 가진다고 보아, 이를 위반한 경우 과세처분의 위법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3. 절차적 통제의 강화
가. 개요
최근 판례가 납세자 권익 보호를 위해 가장 강력하게 통제하는 영역은 바로 위법한 세무조사와 중복조사의 제한이다.
종래 판례는 세무조사 절차상 하자가 있더라도 과세요건 사실과 세액 산정이 적법하다면 과세처분 자체를 쉽게 무효 또는 취소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은 세무조사 절차 자체가 납세자의 권리보호를 위한 본질적 장치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절차 위반만으로도 과세처분의 위법성을 적극 인정하고 있다.
이는 조세행정에서도 “목적이 정당하면 절차 위반이 용인될 수 있다”는 과거의 행정편의주의적 사고를 극복하고, 절차적 정당성 자체를 독립된 헌법적 가치로 평가하기 시작하였음을 의미한다.
나. 중복 세무조사 금지의 원칙
국세기본법 제81조의4 제2항은 동일한 과세기간과 동일한 세목에 대한 재조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조세탈루 혐의를 인정할 만한 명백한 자료가 존재하는 경우나 거래상대방 조사가 필요한 경우 등에만 재조사가 허용된다.
최근 판례는 금지되는 “중복조사”의 범위를 매우 넓게 해석하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단순한 “현지확인” 또는 “자료수집”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더라도, 실질적으로 납세자의 장부를 검사하거나 질문권을 행사하고 자료 제출을 요구하여 영업의 자유를 제한하였다면 이는 세무조사에 해당한다고 본다.
즉, 판례는 세무조사 여부를 형식이 아니라 실질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이른바 “조사의 실질설”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선행 절차가 실질적인 세무조사에 해당함에도 법정 예외사유 없이 다시 후행 조사를 실시하였다면, 그에 기초한 과세처분은 실체적 과세요건 충족 여부와 관계없이 위법하여 취소 대상이 된다.
다. 질문조사권 행사의 한계와 위법한 세무조사
과세관청은 제3자인 거래상대방에 대한 조사를 통해 납세자의 과세자료를 확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근 판례(2024두63830 판결 등)는 거래상대방에 대한 질문조사권 행사 역시 통상적 수준을 넘어 납세자의 사생활이나 영업의 자유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다면, 이는 실질적으로 납세자에 대한 세무조사로 평가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이는 과세관청이 우회적인 방식으로 납세자를 압박하거나 사전 절차를 회피하려는 편법적 조사행위를 더 이상 허용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로 평가된다. 결국 세무조사의 적법성은 조사 대상의 형식적 특정 여부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납세자의 권리 영역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중심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4. 과세예고통지와 과세전적부심사
가. 사전 권리구제 제도의 의의
세무조사가 종료되면 과세관청은 세금을 부과하기 전에 납세자에게 세액 환수 예정 사실을 미리 알리는 과세예고통지를 해야 한다. 납세자는 통지를 받은 날부터 30일 이내에 통지 내용의 적법성과 타당성을 다시 심사해 달라고 청구할 수 있는데, 이를 과세전적부심사라고 한다.
과세전적부심사는 행정소송 이전 단계에서 과세관청 스스로 오류를 시정할 수 있도록 하는 핵심적인 사전 권리구제 절차이다. 이는 납세자의 방어권 보장뿐 아니라 불필요한 조세소송을 예방하고 행정의 적법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기능도 수행한다.
나. 부과제척기간 임박과 과세예고통지 생략 문제
실무상 오랫동안 문제되었던 쟁점은 국세부과 제척기간 만료가 임박한 경우 과세관청이 과세예고통지 자체를 생략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과세관청은 통상 “제척기간 만료가 3개월 이하로 남은 경우에는 과세전적부심사를 진행할 시간적 여유가 없으므로, 그 선행 절차인 과세예고통지 역시 불필요하다”는 논리로 과세처분을 해왔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 판례(2023두41659, 2024두63830)는 이러한 관행에 명확한 제동을 걸었다. 판례는 부과제척기간 만료가 3개월 이하로 남았다는 사정은 과세전적부심사를 생략할 수 있는 사유일 뿐, 납세자의 방어권 보장을 위한 핵심 절차인 과세예고통지 자체를 생략할 수 있는 사유는 아니라고 판시하였다.
더 나아가 판례는 과세예고통지를 누락한 채 이루어진 과세처분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법하다고 보았다. 여기서 말하는 “특별한 사정”은 극히 제한적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단순한 행정편의나 과세관청의 내부 사정은 이에 해당할 수 없다. 또한 그러한 특별한 사정의 존재는 과세관청이 직접 입증해야 한다.
결국 대법원은 과세관청이 스스로 조사를 지연하거나 자료 확보를 늦게 하여 제척기간 임박이라는 상황에 처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불이익을 납세자의 절차적 권리 박탈이라는 방식으로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확히 선언한 것이다.
5. 절차 위법으로 인한 취소와 특례부과제척기간의 한계
과세예고통지 누락 등 중대한 절차 위반으로 과세처분이 취소된 경우, 과세관청이 다시 적법한 절차를 거쳐 재처분할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된다.
국세기본법상 특례부과제척기간은 일반적인 부과제척기간이 경과하였더라도, 불복절차나 행정소송의 판결이 확정된 날부터 1년 이내에는 그 판결 취지에 따라 처분을 보정하여 새로운 처분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예외적 제도이다.
그러나 과세예고통지를 전혀 하지 않은 채 과세처분이 이루어진 경우에는 절차적 하자가 지나치게 중대하므로, 해당 처분은 실질적으로 존재 자체가 부정될 정도의 중대한 위법 상태에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는 견해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특례부과제척기간에 의한 재처분 가능성 역시 제한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직 대법원이 이를 명시적으로 선언한 것은 아니나, 절차적 정당성을 중시하는 최근 판례의 흐름에 비추어 볼 때 중대한 절차 하자가 있는 처분에 대해서는 특례부과제척기간의 적용 범위를 보다 엄격하게 제한하려는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6. 결 : 사법 정의와 납세자 권익의 조화
조세행정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하는 흐름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되었다. 과거의 조세소송이 “세금 액수가 정확하게 계산되었는가”라는 실체법 중심의 분쟁이었다면, 현대의 조세소송은 “그 세금을 부과하기까지의 과정이 정의로웠는가”를 묻는 절차법 중심의 분쟁으로 진화하고 있다.
중복 세무조사의 엄격한 금지, 질문조사권 남용에 대한 통제, 그리고 부과제척기간 임박 상황에서도 과세예고통지를 생략할 수 없다는 최근 대법원의 단호한 태도는 과세관청으로 하여금 자의적이고 편의주의적인 권한 행사를 지양하고 보다 신속하고 치밀한 행정을 수행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납세자 역시 자신의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세무조사 단계에서의 절차적 권리와 과세전적부심사 등 다양한 사전 권리구제 수단을 정확히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결국 절차적 통제의 강화는 단순히 과세관청의 권한을 제한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조세행정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헌법상 조세법률주의와 적법절차원칙을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헌법적 요청이라 할 것이다. 조세 정의는 단지 올바른 세액 산정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로운 절차를 통하여 실현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최창호 변호사
서울대 사법학과 학·석사 출신으로 1989년 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군법무관을 거쳐 1995년에 검사로 임용되어, 공안, 기획, 특수, 강력, 의료, 식품, 환경, 외국인범죄, 산업안전, 명예훼손, 지적재산, 감찰, 송무, 공판 등의 업무를 담당한 바 있고,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헌법재판을 경험한 후 법무부 국가송무과장으로 대한민국 정부 관련 국가 송무를 총괄하면서 주요 헌법재판, 행정재판 및 국가소송 사건을 통할하고, 정부법무공단의 발족에 기여했다. 미국과의 SOFA 협상에 참여한 바 있으며, 항고, 재기수사명령 등 고검 사건과 중요경제범죄 등 다수의 사건을 처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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