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창호 변호사 |
1. 서
최근 기술 유출과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법원 역시 과거보다 한층 엄격한 잣대로 처벌 수준을 높이고 있다. 기업의 핵심 자산인 기술과 정보가 외부로 새어 나갈 경우 해당 기업이 입는 타격이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유형 중 하나가 바로 기업의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직원이 퇴직 직전이나 이직 과정에서 회사의 중요 자료를 무단으로 복사하거나 반출하는 행위다.
많은 실무자가 “내가 개발에 참여한 자료인데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라거나 “퇴직 전 인수인계나 개인 연구 실적 정리 차원”이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자료를 수집하거나 반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법적으로 매우 위험한 행위이다. 이 경우 단순한 도덕적 해이를 넘어 형법상 업무상배임죄 및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부정경쟁방지법) 위반으로 엄중한 형사처벌을 받게 될 수 있다.
2. 업무상배임죄의 성립 요건과 법리적 쟁점
형법 제356조가 규정하는 업무상배임죄는 타인의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회사)에게 손해를 가한 때 성립한다.
연구원은 회사의 자산과 인프라를 활용해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관리·유지할 신의칙상 업무상 의무를 진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사직을 앞둔 직원이 회사의 승인 없이 또는 업무상 목적 외에 개인적인 이익이나 이직할 회사를 위해 중요 영업 자료를 무단으로 복사하거나 반출하는 행위 자체를 '임무 위배 행위'로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핵심은 실제 그 자료가 경쟁업체로 넘어가 사용되거나 회사에 구체적인 금전적 손실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반출 행위가 이루어진 시점에 이미 업무상배임죄의 '기수(범죄 완성)'에 이른다는 점이다. 회사가 보유한 고유한 기술 정보나 경영 정보는 그 자체로 상당한 경제적 가치를 지닌 재산상 이익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퇴직 직전 “혹시 몰라서”, “개인 포트폴리오용으로” 백업해 둔 행위만으로도 처벌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3.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 침해죄와의 관계
가. 만약 반출한 자료가 법정 요건을 갖춘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면 업무상배임죄 외에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죄가 추가되어 처벌 수위가 가중된다.
법에서 말하는 영업비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첫째,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아니하고(비공지성), 둘째, 상당한 노력에 의하여 비밀로 유지되었으며(비밀관리성), 셋째, 생산방법, 판매방법 등 유용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경제적 유용성)여야 한다.
나. 특히 실무적으로 가장 치열하게 다투어지는 부분이 바로 '비밀관리성'이다. 회사가 해당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제한했는지, 비밀 서약을 받았는지, 파일에 암호를 걸어두었는지 등 객관적인 보안 조치가 있었는지가 관건이다. 만약 기업이 체계적인 보안 시스템을 갖추어 이를 비밀로 관리해 왔다면, 이를 무단 복사한 연구원은 영리 목적으로 영업비밀을 취득·누설한 죄로 형사적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기술 안보가 중요해진 현 시점에는 징역형의 실형 선고 비율이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추세다.
4. 실무상 주요 변수와 구제 가능성
가. 이처럼 벼랑 끝에 선 연구원의 입장에서 처벌 위기를 극복하거나 형량을 낮추기 위해서는 사건의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정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법적 방어권을 행사할 때 주로 검토되는 쟁점은 다음과 같다.
나. 자료의 성격과 가치에 대한 재평가
반출된 자료가 과연 회사의 고유한 기술인지, 아니면 이미 업계에 널리 알려진 범용적 기술이나 공인된 데이터인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독자성이 없는 정보라면 영업비밀성은 물론, 업무상배임죄에서 말하는 '재산상 가치 있는 정보'로 보기 어려워 무죄를 논증할 여지가 생긴다.
다. 반출의 목적과 고의성 여부
경쟁사 이직이나 창업 목적이 아니라, 순수한 인수인계 과정에서의 과실이거나 회사의 묵인·승인이 있었다는 정황을 객관적 증거(이메일, 메신저 대화록 등)로 입증할 수 있다면 배임의 고의를 부인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라. 비밀 관리 실태의 허점 파악
회사가 평소 해당 자료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방치했거나 보안 조치가 형식에 불과했다면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에 대해서는 무죄를 이끌어낼 가능성이 존재한다.
5. 선제적이고 전문적인 법률 대응의 중요성
가. 기술 유출 및 배임 사건은 초기 수사 단계에서의 대응이 파일럿의 생사를 가르는 골든타임과 같다. 대다수 기업은 내부 보안 감사 시스템을 통해 직원의 출력 기록, USB 다운로드 내역, 이메일 첨부 기록 등을 철저히 확보한 후 고소를 진행한다. 디지털 포렌식 증거가 이미 확보된 상태에서 피의자가 무작정 혐의를 부인하거나 핑계를 대는 것은 구속 수사의 빌미를 제공하거나 재판에서 가중 처벌을 받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한다.
나. 따라서 처벌 위기에 처한 초기 단계부터 디지털 포렌식 결과물을 엄밀히 분석하고, 반출된 자료의 정확한 법적 성격을 규명해야 한다. 만약 혐의가 명백하다면 무리한 부인보다는 피해 회사와의 원만한 합의를 도출하고, 자료가 외부에 유출되거나 악용되지 않았음을 입증하여 집행유예나 기소유예 등 관대한 처분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
6. 결
연구원이 퇴직 직전 회사의 자료를 복사하는 행위는 한 개인의 커리어는 물론 인신 구속으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형사 범죄다. “내가 밤새워 만든 결과물”이라는 주관적 소유권 주장이나 감정적 호소는 엄격한 법치주의 원칙과 기업 자산 보호라는 법 형량의 저울 앞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결국 직무상 취급하던 정보의 법적 한계를 정확히 인지하는 것이 우선이며, 이미 관련 혐의로 수사 선상에 올랐다면 독단적인 판단 조치를 지양하고, 사건 초기부터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법률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사실관계를 치밀하게 다듬고 체계적인 방어 전략을 철저하게 마련하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라 할 것이다.
최창호 변호사
서울대 사법학과 학·석사 출신으로 1989년 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군법무관을 거쳐 1995년에 검사로 임용되어 공안, 기획, 특수, 강력, 의료, 식품, 환경, 외국인범죄, 산업안전, 명예훼손, 지적재산, 감찰, 송무, 공판 등의 업무를 담당한 바 있고,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헌법재판을 경험한 후 법무부 국가송무과장으로 대한민국 정부 관련 국가 송무를 총괄하면서 주요 헌법재판, 행정재판 및 국가소송 사건을 통할하고, 정부법무공단의 발족에 기여했다. 미국과의 SOFA 협상에 참여한 바 있으며, 항고, 재기수사명령 등 고검 사건과 중요경제범죄 등 다수의 사건을 처리한 바 있다.
[ⓒ 피앤피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