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의 충실의무 개정, 민주공화국의 경제적 실천인가 경영권 침해인가”
| ▲최창호 변호사 |
1. 서
대한민국 상법 사상 유례없는 대변혁이 발생하였다. 2025. 7. 22. 공포된 개정 상법 제382조의3(이사의 충실의무 등)은 “①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 및 주주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 ② 이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여야 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명문화하였다. 그동안 학계와 실무에서 지속되어 온 ‘이사는 누구를 위해 봉사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대해 입법자가 명시적 견해를 표명하면서 답변을 내린 것이다.
헌법적 관점에서 보면 이는 단순한 회사법 개정이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이 선언하는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와 경제민주화, 그리고 재산권 보장이라는 세 축이 기업 지배구조 속에서 어떻게 조화될 것인지에 대한 실천적 선언이라 평가할 수 있다. 즉, 이번 개정은 “사적 자치”와 “공정한 시장 질서”라는 헌법적 긴장을 기업 내부의 의사결정 구조에 투영한 사건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겠다.
2. ‘회사의 이익’이라는 추상적 성벽의 붕괴
기존 상법은 이사가 ‘회사’를 위하여 직무를 수행한다고 규정함으로써, 회사와 주주를 엄격히 분리하였다. 대법원 역시 이를 전제로 회사의 손해와 주주의 손해를 구별하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그 결과 물적 분할, 합병, 전환사채 발행 등의 국면에서 주주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회사 자체의 손해가 없으면 이사의 책임을 묻기 어려웠다.
이러한 법리는 법인격 독립의 원칙이라는 상사법의 기초 위에 서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지배주주의 사익 추구를 정당화하는 방패로 기능해 왔다는 비판이 누적되었다. 특히 물적 분할 후 자회사 상장과 같은 구조에서는 소액주주의 지분가치 희석이 구조적으로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어할 법적 수단이 제한적이었다.
이번 개정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정면으로 돌파하고자 하는 시도에 해당한다. 이제 이사는 더 이상 ‘회사’라는 추상적 개념 뒤에 숨을 수 없으며, 주주의 비례적·실질적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 의사결정은 곧바로 책임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 이는 회사법의 중심축을 “법인 중심”에서 “투자자 중심”으로 이동시키는 역사적 전환이라 할 수 있다.
3. 총주주의 이익과 공평대우의 헌법적 의미
가. 총주주의 이익
개정 조문이 제시한 ‘총주주의 이익’과 ‘공평한 대우’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다. 이는 평등의 원칙이 회사 내부 질서에 구체적으로 이식된 형태라 볼 수 있다.
특히 ‘총주주의 이익’이라는 개념은 개별 주주의 이익을 단순 합산한 것이 아니라, 주주 전체의 장기적·집합적 가치 극대화를 의미한다. 따라서 단기적 주가 부양이나 특정 주주집단의 이익을 위한 의사결정은 오히려 충실의무 위반으로 평가될 수 있다.
나. 공평대우
또한 ‘공평대우’는 형식적 평등을 넘어 실질적 평등을 요구한다. 예컨대 동일한 조건의 주식이라 하더라도 정보 접근성, 의결권 행사 가능성, 거래 구조 등에 따라 실질적 불평등이 발생할 수 있다면, 이사는 이를 교정할 의무를 부담한다. 이는 이사회가 단순한 경영기관이 아니라 ‘이해관계 조정기관’으로 기능해야 함을 의미한다.
4. 경영권 위축 우려와 형사책임의 그림자
가. 경영계가 제기하는 가장 큰 우려는 이사의 책임 확대가 경영 판단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 법제에서 배임죄와의 결합 가능성은 결코 가볍지 않다.
주주의 이익을 침해했다는 사후적 평가가 형사책임으로 연결될 경우, 이사는 위험 회피적 의사결정에 머물 수밖에 없고, 이는 혁신 투자와 구조 개편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 더 나아가 소수 주주에 의한 소송이 남발될 경우 기업활동 전반에 ‘소송 리스크 프리미엄’이 내재화될 위험도 존재한다. 경영계가 두려워하는 점이 바로 이것이다.
나.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일정 부분 과장된 측면도 있다고 생각된다. 비교법적으로 보더라도 미국, 영국 등 주요 자본시장 국가에서는 이미 주주 이익을 고려한 충실의무가 확립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시장 신뢰를 확보해 왔다. 문제는 의무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판단하는 기준의 불명확성에 있다.
5.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자본시장 신뢰 회복
거시적 관점에서 이번 개정은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제공한다. 한국 기업은 지배구조 리스크로 인해 본질 가치 대비 낮은 평가를 받아 왔으며, 이는 외국인 투자자의 구조적 이탈로 이어졌다.
주주의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호되는 시장은 자본조달 비용이 낮아지고, 기업가치가 재평가되며, 장기 투자자가 유입된다. 이러한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 중심으로 재정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이번 개정은 단기적으로는 분쟁과 혼란을 야기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자본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국가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6. 향후 과제: 법리의 정교화와 균형의 확립
향후 가장 중요한 과제는 ‘기준의 명확화’이다. 첫째, 경영판단 원칙의 적용 범위를 명확히 하여, 선의·합리적 정보에 기초한 의사결정은 폭넓게 보호해야 한다. 이는 이사의 책임과 기업의 혁신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핵심 장치다.
둘째, ‘총주주의 이익’과 ‘공평대우’의 판단 기준을 판례와 하위 규범을 통해 구체화해야 한다. 예컨대 합병비율 산정, 물적 분할, 내부거래 등의 유형별로 심사 기준을 축적할 필요가 있다.
셋째, 사외이사의 실질적 독립성을 강화하고, 향후 도입 예정인 ‘독립이사’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이사회 내부에서 주주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구조적 장치가 된다.
7. 결어: 민주적 시장 질서의 서막
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 확대는 단순한 입법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기업지배구조가 ‘지배주주 중심’에서 ‘시장 참여자 전체의 신뢰’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다. 이는 시장경제 질서와 경제민주화 원리가 긴장과 조화를 이루며 발전하는 과정이며, 궁극적으로는 민주공화국의 경제적 기반을 강화하는 시도라 평가할 수 있다.
나. 이제 공은 다시 대한민국 법원으로 넘어갔다. 법원이 어떠한 기준과 논리를 통해 주주 보호와 경영 자율성 사이의 균형을 설정하느냐에 따라, 이번 개정은 ‘기업활동의 족쇄’가 될 수도, ‘공정한 시장의 토대’가 될 수도 있다.
다. 결국 이 변화의 성패는 법률가와 법원의 해석, 그리고 시장 참여자들의 책임 있는 행동에 달려 있다. 충실의무는 더 이상 선언이 아니라,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신뢰를 떠받치는 실질적 규범으로 작동해야 할 것이다.
최창호 변호사
서울대 사법학과 학·석사 출신으로 1989년 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군법무관을 거쳐 1995년에 검사로 임용되어, 공안, 기획, 특수, 강력, 의료, 식품, 환경, 외국인범죄, 산업안전, 명예훼손, 지적재산, 감찰, 송무, 공판 등의 업무를 담당한 바 있고,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헌법재판을 경험한 후 법무부 국가송무과장으로 대한민국 정부 관련 국가 송무를 총괄하면서 주요 헌법재판, 행정재판 및 국가소송 사건을 통할하고, 정부법무공단의 발족에 기여했다. 미국과의 SOFA 협상에 참여한 바 있으며, 항고, 재기수사명령 등 고검 사건과 중요경제범죄 등 다수의 사건을 처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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