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찾아온 역대급 한파에 - 정승열 법무사
| 2016-02-02 17:02:00
1년 중 가장 춥다고 하는 대한(大寒: 1.21)을 보낸 지난 주말 연 나흘동안 대전지방의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15도에서 18도에 이르고, 한낮에도 좀체 영상으로 올라서지 못했다. 이렇게 전국적으로 몰아친 한파는 곳곳에 1m가 넘는 폭설을 쏟아 붓고, 하늘 길과 뱃길도 막아버렸다. 울릉도 등 전국의 연안 섬으로 가는 뱃길이 두절된 것은 물론 비교적 안정적이라고 하던 제주도까지 여행을 떠났다가 귀가하지 못하는 승객들로 공항은 수만 명이 노숙자 아닌 노숙자로 43시간이상을 고생했다는 뉴스도 크게 보도되었다.
다행히도 이런 난리는 그저께 밤부터 어제까지 거의 수습되었지만, 말 짓기 좋아하는 네티즌들은 이번 현상을 ‘역대급 한파’라고 했다. 겨울철이면 풍랑으로 뱃길이 끊어지고 1m가 넘는 폭설과 내륙이며 섬지방이 큰 불편을 겪은 것이 어디 이번 뿐이랴마는 도대체 사전에도 없는 ‘역대급(歷代級)’이란 신조어까지 탄생시킨 것은 아마도 역대 최고 혹은 몇 위라는 신조어가 분명한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대전 지방에서의 폭설로는 2004년 4월 5일 하루사이에 무려 47㎝나 쌓여서 그날 시내 도로는 모든 교통수단이 올 스톱하고, 심지어 재판을 받기 위해서 교도소에서 호송되는 버스까지 불통이어서 재판이 연기된 적도 있다.
기상청은 이번 한파의 원인이 북극과 남극 대류권 중상부와 성층권에 위치하는 소용돌이 기류인 극(極) 소용돌이 즉, 폴라 보텍스(polar vortex)의 영향이라고 했는데, 일반 서민들에게는 약간 생소한 폴라 보텍스는 1853년 영국의 주간지 ‘리텔스 리빙 에이지’에서 “영하 15도 이하의 한파가 보름 동안 지속된 원인”이라고 언급한 이래 통용되고 있다. 극 소용돌이는 주로 북극에 머무는 회오리바람이 온난화 영향으로 제트기류를 뚫고 내려와 전 세계에 한파가 몰아치며 주변에 제트기류가 강하게 형성되면 내려오지 못하지만 제트기류가 약해지면 남하해서 한파 피해를 주는데, 겨울철에 특히 강력하고 여름에는 약화되거나 사라지는 경향을 보이고, 또 육지가 많이 분포하는 북반구보다 남반구에서 더욱 현저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이번 한파는 한반도를 비롯한 아시아 지역만이 아닌 미 대륙에도 큰 영향을 미쳐서 몇 년 전 큰 인기를 얻었던 영화 투모로우(tomorrow)를 연상하는 시민들이 많았다고 한다. 2004년 개봉된 영화 투모로우는 영화 펜도럼, 스마트 피플 등으로 잘 알려진 데니스 퀘이드(Dennis Quaid)와 영화 소스 코드(SOURCE CORD) 등으로 명성을 높인 제이크 질렌할(Jake Gyllenhaal)이 출연한 재난영화로서 기상학자인 잭 홀 박사가 갑자기 밀려온 이상한파로 온 세계가 상상할 수 없는 얼음세계로 변할 때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그의 외동아들과의 상봉과정을 그린 영화다.
홀 박사는 남극에서 빙하 코어를 탐사하던 중 지구에 이상변화가 일어날 것을 감지하고, 국제회의에서 급격한 지구 온난화로 남극․북극의 빙하가 녹고 바닷물이 차가워지면서 해류의 흐름이 바뀌게 되어 결국 지구 전체가 빙하로 뒤덮이는 거대한 재앙이 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비웃음만 당하고 상사와의 갈등만 일으키게 되었고, 잭은 상사와의 논쟁으로 퀴즈대회에 참가하러 뉴욕으로 가는 아들 샘을 데려다 주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만다. 이윽고 아들이 탄 비행기가 이상 난기류를 겪게 되고, 일본에서는 우박으로 인한 피해가 TV를 통해 보도되는 등 지구 곳곳에 이상기후 증세가 나타난다. 잭은 해양온도가 13도나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자신이 예견했던 빙하시대가 곧 닥칠 것이라는 두려움에 떨면서 앞으로 일어날 재앙으로부터 아들을 구하러 가려던 중 백악관으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잭은 백악관 브리핑에서 현재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는 지구 북부에 위치한 사람들은 이동하기 너무 늦었으므로 포기하고 우선 중부지역부터 시민들을 최대한 멕시코 국경 남쪽으로 이동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하자 또다시 관료들과 갈등을 겪게 된다.
그러나 이미 이상기후로 수많은 고층빌딩 꼭대기까지 쌓인 폭설과 한파 속에서 이동을 시작한 피난민들은 일대 혼란에 휩싸이게 되고, 잭은 아들이 있는 북쪽 뉴욕으로 가기 위해서 눈썰매를 탄다. 우여곡절 끝에 도서관에서 책들을 불태우며 체온을 유지하던 아들과 상봉하는 영화인데, 겨울이면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사흘은 춥다가도 나흘은 포근하다는 이른바 삼한사온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지만, 세상이 너무 급변하면서 이런 관념도 사라진 것 같다. 식자우환이라고 너무 발달된 매스컴과 SNS 영향으로 불필요한 걱정과 근심이 우리의 밝은 미래를 어둡게 하는 것 같아서 씁쓸하기만 하다. 다음 주가 음력절기상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이니 어쩌면 이번 추위가 올겨울 막바지 한파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하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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