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호 변호사의 법조단상] 회계기본법안, ‘투명성’이라는 명분에 가려진 ‘헌법적 가치’의 위기
피앤피뉴스
gosiweek@gmail.com | 2026-03-03 14:57:13
회계기본법안, ‘투명성’이라는 명분에 가려진 ‘헌법적 가치’의 위기
최근 국회에서 논의 중인 ‘회계기본법안’은 그 명칭부터가 거창하다. 영리법인, 공공기관, 사립학교, 심지어 공동주택에 이르기까지 산재한 회계 규율을 하나로 통합하여 국가 표준 체계를 세우겠다는 것이다. 회계 투명성이 현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근간이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 법안은 ‘투명성’이라는 미명 하에 우리 헌법의 근간을 뒤흔드는 내용들을 내포하고 있다.
2. 법률유보 및 포괄위임금지 원칙의 정면 위배
우리 헌법 제75조는 위임입법의 목적과 범위, 내용을 법률에 구체적으로 확정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행정권의 자의적 행사를 방지하고 국민의 예견 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본 법안은 회계처리기준, 감사기준, 감리 절차 등 국민의 재산권과 직업 수행의 자유에 직접적으로 결부된 핵심 사항을 대거 ‘대통령령’이나 ‘위원회의 승인’이라는 행정부의 영역으로 백지 위임하고 있다.
특히 회계기준은 단순한 기술적 규칙이 아니라 기업의 손익을 결정하고 이해관계자의 재산권을 규율하는 실질적 ‘법규’다. 이를 민간단체가 정하고 국무총리 산하 위원회가 승인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은, 입법부가 스스로의 권한을 행정부에 상납하는 법치주의의 포기 선언과 다름없다. 이러한 구조는 헌법재판소가 일관되게 유지해 온 ‘의회유보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3. 과잉금지원칙과 사적 자치의 훼손
법안은 성격과 규모, 설립 목적이 판이한 주체들을 단일한 규제 틀 안에 가두려 한다. 대기업과 소규모 비영리법인, 그리고 주민들의 자율적 공동체인 공동주택 관리주체까지 동일한 잣대로 규제하는 것은 헌법상 ‘최소침해성 원칙’을 망각한 처사다. 특히 생활 자치 영역에 국가의 감리권과 시정 명령권이 직접 개입하는 것은 사적 자치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다.
회계는 본래 수단적 제도다. 주체의 자율적 의사결정을 돕기 위한 도구가 국가의 포괄적 통제 수단으로 변질될 때, 시장경제의 활력은 사장될 수밖에 없다. 기존 개별법을 정비하거나 특정 영역을 중심으로 단계적 확대를 꾀하는 덜 침해적인 대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률적 규제를 강행하는 것은 법익의 균형성을 상실한 입법권의 남용이다.
4. 권력분립 원칙의 붕괴: ‘초행정기구’의 탄생
국무총리 직속 ‘국가회계위원회’의 신설은 이 법안의 가장 위험한 발상 중 하나다. 이 위원회는 정책 수립(행정), 기준 승인(준입법), 시정 권고 및 감리(준사법) 권한을 한 몸에 지니게 된다. 헌법상 권력분립 원칙은 형식적 분립을 넘어 실질적 권한 집중 방지를 요구한다. 그러나 이 위원회는 민주적 통제 장치가 미흡한 상태에서 사실상 대한민국 회계 전반을 지배하는 ‘초법적 기구’로 기능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무자본 특수법인’ 형태의 회계감독원을 설립하고 그 운영 전반을 대통령령에 포괄 위임하겠다는 것은 책임 행정의 원칙에 어긋난다. 공적인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민간 법인의 형태를 띠는 기구는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들고, 결국 관료적 비대화와 행정 편의주의만을 낳을 뿐이다.
5. 전문성 결여와 행정 비대화의 우려
회계는 고도의 전문성과 기술성이 요구되는 분야다. 현재 금융위원회와 민간 전문가들이 축적해 온 지식 체계를 무시하고, 총리실 산하의 신설 기구가 이를 단기간에 통합하겠다는 것은 오만이다. 정치적 기조에 따라 회계 원칙이 흔들릴 경우, 국제회계기준과의 정합성이 깨지고 대외 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지는 국가적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이는 ‘원칙이 바로 선 나라’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6. 결론: 헌법적 정당성 없는 투명성은 독재다
우리는 역사를 돌이켜볼 때 ‘공익’이라는 이름 아래 개인의 기본권이 얼마나 쉽게 소외되는지를 목도한 바 있다. 회계 투명성 제고라는 명분은 달콤하지만, 그 수단이 위헌적이라면 그 입법은 정당화될 수 없다. 회계기본법안은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 기본법은 선언적이고 방향 제시적인 규범에 머물러야 하며, 실질적인 규제는 개별 산업과 주체의 특성을 반영한 특별법의 영역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국회는 지금이라도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에서 벗어나 헌법적 가치를 되새겨야 한다. 전문가의 식견을 배제한 채 권력 집중만을 꾀하는 입법은 결국 국민의 재산권 침해와 사적 자치의 붕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헌법의 울타리를 벗어난 투명성은 그 자체로 또 다른 불투명한 독재의 시작일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최창호 변호사
서울대 사법학과 학·석사 출신으로 1989년 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군법무관을 거쳐 1995년에 검사로 임용되어, 공안, 기획, 특수, 강력, 의료, 식품, 환경, 외국인범죄, 산업안전, 명예훼손, 지적재산, 감찰, 송무, 공판 등의 업무를 담당한 바 있고,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헌법재판을 경험한 후 법무부 국가송무과장으로 대한민국 정부 관련 국가 송무를 총괄하면서 주요 헌법재판, 행정재판 및 국가소송 사건을 통할하고, 정부법무공단의 발족에 기여했다. 미국과의 SOFA 협상에 참여한 바 있으며, 항고, 재기수사명령 등 고검 사건과 중요경제범죄 등 다수의 사건을 처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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