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호 변호사의 법조단상] 아동을 위한 나라는 없다: 한국 입양사의 그늘과 '뿌리를 찾을 권리'
피앤피뉴스
gosiweek@gmail.com | 2026-07-08 12:04:33
아동을 위한 나라는 없다
: 한국 입양사의 그늘과 '뿌리를 찾을 권리'
대한민국의 현대 입양사는 국가가 감당하지 못한 사회적 책임을 민간과 해외에 의탁해 온 기록이다. 1953년 한국전쟁 직후 발생한 수많은 전쟁고아와 혼혈 아동의 처리를 위해 시작된 해외입양은 초창기에는 인도주의적 구호의 성격이 짙었다. 그러나 전후 복구가 본격화된 1970~1980년대에 이르러 입양은 일종의 '아동 수출'이자 국가적인 인구 조절 및 사회복지 비용 절감의 수단으로 고착화되었다.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에도 해외입양 건수는 도리어 정점을 찍었다.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가부장적 혈통주의는 국내 입양의 활성화를 가로막았고, 정부는 이를 제도적으로 개선하기보다 해외 전출이라는 손쉬운 출구를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지난 70여 년간 약 17만 명에 달하는 아동이 해외로 보내졌으며, 한국은 오랜 기간 '주요 아동 송출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살아왔다. 2000년대 이후 국내 입양 활성화 정책과 아동 권리 중심의 법 개정이 이루어졌으나, 여전히 혈연 중심의 가족주의 장벽과 민간 입양기관 중심의 구조적 한계는 공고하게 남아 있다.
2. 민간 주도 입양 제도의 구조적 문제점과 부작용
한국 입양 제도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점은 아동의 보호 조치와 입양 알선이 국가가 아닌 '민간 입양기관' 주도로 이루어져 왔다는 사실이다. 아동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해야 할 입양 절차가 민간 기관의 운영비 확보 및 이윤 추구와 결부되면서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친생부모 권리 침해와 동의의 무력화: 미혼모 등 취약한 상황에 처한 친생부모에게 충분한 양육 지원책을 안내하기보다 입양을 종용하거나, 심지어 동의 절차를 허술하게 진행하여 친권을 사실상 포기하게 만드는 사례가 빈번했다.
아동 정보의 왜곡과 조작: 과거 해외입양 과정에서 수많은 아동이 '고아'로 서류가 조작되어 보내졌다. 찾을 수 있는 부모가 엄연히 존재함에도 고아로 등록하면 입양 절차가 한층 간소화된다는 행정적 편의성, 그리고 해외 입양기관으로부터 받는 수수료를 챙기기 위한 민간 기관의 묵인이 맞물린 결과였다.
사후 관리의 공백: 아동이 입양된 이후 현지 가정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학대나 파양의 위험에 노출되지는 않았는지 확인하는 사후 관리 시스템이 극히 부실했다. 이는 국적을 취득하지 못해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전락하거나,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에 이르는 비극적인 사건들을 야기했다.
3. 알 권리와 정체성: 입양인의 '뿌리를 찾을 권리'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자신의 생물학적 뿌리가 누구인지를 알 권리가 있다. 이는 단순한 호기심의 차원을 넘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인격권,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필수적인 기본권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해외 및 국내 입양인은 성인이 된 후에도 자신의 친생부모나 출생의 비밀에 접근하는 데 거대한 장벽에 부딪힌다. 현행 제도하에서 친생부모의 동의가 없으면 입양인은 자신의 출생 정보를 열람할 수 없다. 사생활 보호라는 가치와 입양인의 알 권리가 충돌할 때, 국가는 오랫동안 친생부모의 익명성 뒤로 숨어 입양인의 요구를 외면해 왔다. 자신의 유전적 내력, 출생의 일시와 장소, 친부모의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입양인들은 삶의 근원적 기반이 흔들리는 정체성 혼란과 심리적 박탈감을 겪게 된다. 뿌리를 찾을 권리는 사치스러운 요구가 아니라, 훼손된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 보장이다.
4. 과거사 정립과 실체 규명의 시급성
이제는 과거 입양 과정에서 발생한 불법과 편법, 인권 침해의 실체를 명백히 규명해야 할 때이다. 국가가 마땅히 보호해야 할 아동을 해외로 내몰고, 민간 기관의 서류 조작과 아동 매매에 준하는 행위를 방조한 것에 대한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최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등을 통해 과거 해외입양 과정의 인권 침해 조사가 시작된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실체 규명은 단순히 과거의 잘못을 처벌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국가가 자행한 조직적 방임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왜곡된 아동의 출생 기록을 바로잡아 이들이 친가족과 재회할 수 있는 행정적·제도적 기틀을 마련하는 실질적 구제 조치로 이어져야 한다. 과거의 어둠을 투명하게 드러내지 않고서는 건강한 아동 복지 정책의 미래를 논할 수 없다.
5. 제도의 공공성 강화와 아동 중심 체제로의 전환
한국의 입양 패러다임은 '성인의 필요에 따른 아동의 선택'이 아닌, '가정이 필요한 아동을 위한 가정 제공'이라는 아동 최우선의 원칙으로 완전히 재정립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2023년 국제입양계약(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의 비준과 함께 입양특례법이 개정되어 국가 책임을 강화하는 '입양 체계 개편'이 추진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핵심은 입양의 모든 과정을 민간 기관의 손에서 회수하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관할하는 '입양의 공공성 보장'이다. 아동의 발생부터 보호, 입양 심사, 사후 관리에 이르기까지 공적 주체가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민간 주도 체제에서 발생했던 서류 조작이나 이윤 중심의 알선 행위를 근절할 수 있다. 더불어 입양 정보 통합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입양인이 원할 때 언제든 안전하고 정확하게 자신의 출생 기록에 접근할 수 있도록 법적 장치를 보완해야 한다. 아동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시혜가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책무이며, 그 책무의 완성은 입양인들이 자신의 온전한 정체성을 찾고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때 비로소 이루어질 것이다.
최창호 변호사
서울대 사법학과 학·석사 출신으로 1989년 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군법무관을 거쳐 1995년에 검사로 임용되어 공안, 기획, 특수, 강력, 의료, 식품, 환경, 외국인범죄, 산업안전, 명예훼손, 지적재산, 감찰, 송무, 공판 등의 업무를 담당한 바 있고,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헌법재판을 경험한 후 법무부 국가송무과장으로 대한민국 정부 관련 국가 송무를 총괄하면서 주요 헌법재판, 행정재판 및 국가소송 사건을 통할하고, 정부법무공단의 발족에 기여했다. 미국과의 SOFA 협상에 참여한 바 있으며, 항고, 재기수사명령 등 고검 사건과 중요경제범죄 등 다수의 사건을 처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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