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호 변호사의 법조단상] 민주주의의 방패인가, 재판청구권의 침해인가: 전략적 봉쇄소송 방지법안의 법리적 쟁점과 과제
피앤피뉴스
gosiweek@gmail.com | 2026-07-10 11:44:43
민주주의의 방패인가, 재판청구권의 침해인가
: 전략적 봉쇄소송 방지법안의 법리적 쟁점과 과제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와 언론·출판, 집회·결사의 자유는 민주사회를 지탱하는 핵심적 기본권이다. 그러나 최근 일부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권력자가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언론 보도나 시민운동, 노동조합 활동, 공익 제보에 대해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와 형사고소를 남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른바 ‘전략적 봉쇄소송(SLAPP: Strategic Lawsuit Against Participation)’이다.
이러한 소송의 본질은 승소 그 자체가 아니다. 권력과 자본을 가진 원고는 패소할 것을 예견하면서도 소송을 제기한다.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 자체에서 피고에게 극심한 정신적 고통과 시간적 낭비, 그리고 막대한 변호사 비용을 지출하게 만들어 경제적 파산을 유도하는 것이 목적이다. "감히 우리를 비판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겠다"는 강력한 위축 효과(Chilling Effect)를 노리는 것이다. 과거 정부가 제주 강정마을 주민과 시민단체를 상대로 해군기지 건설 반대 활동을 이유로 34억여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사법제도의 남용을 막기 위해 최근 국회에서는 '공익 참여 보장을 위한 봉쇄소송 방지법안(최혁진 의원 등 발의)'이 제출되었다. 과거 제20대 국회에서도 민사소송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가 임기만료로 폐기된 바 있으나, 최근 공론장 위축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입법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올랐다. 이 법안은 미국, 캐나다 등 해외의 'Anti-SLAPP' 법제를 참고하여 특별각하신청 제도, 입증책임 전환, 소송비용 전액 부과 등을 골자로 한다. 발의 취지에는 공감할 바 있으나, 법조계의 시각에서 바라본 법안의 조문들은 우리 민사소송법의 근간과 헌법적 가치를 흔들 수 있는 치명적인 법리적 결함을 내포하고 있다.
2. 헌법상 재판청구권 및 과잉금지원칙과의 충돌
가장 먼저 부딪히는 벽은 헌법 제27조 제1항이 보장하는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이다. 재판청구권은 단지 소장을 제출할 형식적 기회만을 뜻하지 않는다. 법원에 의해 실체적인 심리와 판단을 받을 기회를 본질적으로 보장받는 것을 의미한다.
법안이 도입하려는 '특별각하제도(안 제3조)'는 피고의 신청이 있으면 소송 초기 단계에서 사실상 본안 심리를 중단시키고 소를 종결시키는 강력한 효과를 갖는다. 하지만 어떤 표현의 공익성 여부와 명예훼손(위법성) 여부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이는 고도의 증거조사와 실체적 변론을 거쳐야만 판가름 날 수 있는 실체 판단의 영역이다. 법관이 충분한 증거조사를 하기도 전에 소송을 각하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원고의 실질적 본안심리 기회를 현저히 제한한다. 이는 기본권 제한의 한계를 정한 헌법 제37조 제2항의 과잉금지원칙 중 '침해의 최소성'을 위배하여 위헌 시비를 낳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3. 민사소송법상 입증책임 원칙 및 무기평등의 원칙 전도
우리 민사법 학계와 판례가 확립한 입증책임의 대원칙은 요건사실설(권리분배설)에 기초한다. 즉, 각 당사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법률효과를 발생시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발의된 법안의 구조를 보면, 피고가 해당 소송이 자신의 '공익참여'와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일응 소명하기만 하면, 입증책임이 원고에게 전면적으로 전환된다. 원고는 '나의 소송이 상대방을 위축시키거나 보복할 목적이 없는 정당한 소송이다'라는 주관적이고 소극적인 사실을 적극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인간 내심의 의사나 목적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이러한 입증책임의 전환은 원고에게 일방적인 패소를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으며, 민사소송의 대원칙인 '당사자 대등의 원칙(무기평등의 원칙)'을 심각하게 저해할 우려가 크다.
4. 기존 법체계의 실효성과 입법의 보충성 위배
법안의 조문들은 마치 현재 우리 법제에 소송남용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설계된 듯하다. 하지만 이는 사법 운영의 실태와 명백히 다르다.
우리 대법원은 별도의 특별법이 없더라도 민법 제2조의 신의성실 및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을 구체화하여 '소권남용 법리'를 확고히 확립하고 있다. 소송의 제기가 상대방에게 고통을 가하고 권리행사라는 명목하에 부당한 이익을 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된 경우, 판례는 그 소송제기 행위 자체를 불법행위로 보아 기각함은 물론 역으로 손해배상책임까지 인정한다. 나아가 악의적인 형사고소에 대해서는 형법상 무고죄라는 강력한 형벌 규정도 존재한다. 현행법 체계의 운용과 요건을 보완하는 단계적 접근을 생략한 채, 곧바로 민사절차의 대원칙을 파괴하는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은 입법의 보충성 측면에서 신중해야 한다.
5. 개별 조항의 명확성 결여와 과도한 제재
개별 조항으로 들어가면 불비(不備)는 더욱 도드라진다. 안 제2조는 전략적 봉쇄소송을 "공익참여행위의 전부 또는 일부를 청구원인으로 삼은 민사상 소송"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전략적 봉쇄소송의 본질은 소송의 외관이 되는 청구원인이 아니라 '상대방을 위축시키려는 주관적 목적과 권리의 남용'에 있다.
현재 안과 같이 객관적 청구원인만을 기준으로 삼으면, 대기업을 상대로 악의적인 허위사실을 유포해 막대한 피해를 준 행위에 대해 기업이 제기하는 정당한 권리구제 목적의 소송까지도 봉쇄될 위험이 있다. 이는 규율 대상이 명확해야 한다는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
반대로, 청구원인의 사실관계가 설령 부합하더라도(예를 들어 실제 발생한 소란 행위 등), 청구액을 지나치게 비대하게 청구해 상대방을 위축시키는 '사실 기반의 폭탄 소송' 역시 전략적 봉쇄소송에 포함되어야 마땅하다. 따라서 문언을 "청구의 기초가 된 사실이 명백히 허위이거나 그 소송의 제기가 정당한 권리구제의 범위를 벗어나 사법절차를 명백히 남용한 민사상 소송"으로 대폭 수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보호 대상을 개인, 노동조합, 특정 비영리단체로만 한정하여 정당한 공익 표현을 하는 언론사나 학회 등을 배제한 점은 평등원칙 위배 소지가 있으며, 단체의 범위를 대통령령에 위임한 것은 포괄위임금지 원칙과 상충된다.
금전적 제재 조항 역시 과도하다. 안 제7조는 실제 지출한 변호사비용 '전액'을 원고에게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현행 민사소송법이 법정 한도 내의 변호사비용만 소송비용에 산입하도록 제한하는 이유는 패소자의 과도한 경제적 파산을 막기 위함이다. 변호사비 전액 부담 조항은 정당한 권리를 가진 일반 국민조차 '패소 시 수억 원을 물어내야 한다'는 공포심을 갖게 하여 사법 접근성을 과잉 억제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대안으로 실제 지출 범위 내에서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금액을 당해 규칙이 정한 금액의 3배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가중 산입하도록 명하는 방식이 타당하다. 여기에 더해 안 제8조처럼 동일한 절차 내에서 정신적·물질적 손해배상명령까지 병과하는 것은 하나의 행위에 복합적 불이익을 가하는 것으로 비례의 원칙에 반한다. 추가 손해는 현행 민법 제750조 일반 불법행위 책임에 의한 별소나 반소로 구제하는 것이 사법 체계의 균형에 맞다.
6. 결론 및 정무적 보완 방향
해외 주요국의 입법례를 보면 사법 환경에 따라 다른 형태를 취한다. 미국은 천문학적인 소송 비용이 드는 디스커버리(증거개시) 제도가 있어 초기 차단인 '특별조기각하'가 발달했으나,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무조건적 각하보다는 표현의 자유가 얻는 공익과 원고가 입은 명예훼손 등의 사익을 법관이 개별 사건에서 엄격히 비교 형량하는 방식을 취한다. 대륙법계인 독일과 일본은 별도의 단일 방지법 없이 권리남용 금지의 원칙이나 소권남용 법리로 해결하고 있다. 우리 역시 사법 환경이 미국보다는 대륙법계에 가깝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재의 정무적 상황을 짚어볼 필요도 있다. 현 정부는 언론의 역할과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며 공론장 위축 우려에 공감대를 표명해 왔다. 그러나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허위조작정보 규제나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경우, 적용 범위를 명백한 허위 사실로 한정하더라도 권력층이나 대기업이 비판을 가로막는 법적 수단(실질적 의미의 전략적 봉쇄소송)으로 오남용될 여지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지적이 시민사회에서 제기된다. 제도적 장치가 권력 감시를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할 위험성은 언제나 상존하는 셈이다.
정부가 선제적·조직적으로 비판 언론이나 공익활동가를 압박하기 위해 소송을 남발할 가능성은 정책적 지향점에 비추어 볼 때 낮을 것으로 예측되지만, 법조 전문가의 시각에서는 실질적 봉쇄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사법 절차의 오남용 위험을 정밀하게 모니터링해야 할 의무가 있다.
결론적으로 '공익참여 보장'이라는 가치와 '국민의 정당한 재판청구권 및 명예권 보호'라는 두 가지 헌법적 가치는 팽팽하게 충돌한다. 해외 제도를 무분별하게 직수입하여 우리 민사소송법의 근간을 허물기보다는, 보호 대상을 명확히 하고 명백한 소권 남용이 객관적으로 증명된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소송비용을 가중 부담시키는 방식 등 단계적이고 조화로운 입법적 접근이 진정으로 민주주의의 공론장을 지키는 길이다.
최창호 변호사
서울대 사법학과 학·석사 출신으로 1989년 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군법무관을 거쳐 1995년에 검사로 임용되어 공안, 기획, 특수, 강력, 의료, 식품, 환경, 외국인범죄, 산업안전, 명예훼손, 지적재산, 감찰, 송무, 공판 등의 업무를 담당한 바 있고,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헌법재판을 경험한 후 법무부 국가송무과장으로 대한민국 정부 관련 국가 송무를 총괄하면서 주요 헌법재판, 행정재판 및 국가소송 사건을 통할하고, 정부법무공단의 발족에 기여했다. 미국과의 SOFA 협상에 참여한 바 있으며, 항고, 재기수사명령 등 고검 사건과 중요경제범죄 등 다수의 사건을 처리한 바 있다.
[ⓒ 피앤피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