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호 변호사의 법조단상] 정의는 강자의 이익인가

피앤피뉴스 / 2026-10-19 11:37:00
“정의는 강자의 이익인가”

“정의는 강자의 이익인가”

 

 






 

▲최창호 변호사
1. 정의에 대한 근본적 질문

서양 철학사에서 정의의 본질을 둘러싼 가장 도발적인 논쟁은 플라톤의 《국가》 제1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소피스트 트라시마코스는 소크라테스에게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라고 주장한다. 권력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법과 제도를 만들고, 국민에게 이를 준수하도록 강제하면서 그 결과를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오늘날에도 설득력이 있는 내용이다. 권력자가 법을 이용해 지배를 정당화하고, 다수가 자신의 이해관계를 공익으로 포장하며, 경제적·사회적 강자가 제도를 통해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법에 따라 이루어진 결정은 언제나 정의롭다고 할 수 있는지, 다수가 선택한 결과라면 무엇이든 정당하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생겨난다.


2. 트라시마코스와 소크라테스의 대립

트라시마코스의 주장은 권력의 속성을 냉정하게 바라본 현실주의적 통찰을 담고 있다. 역사적으로 지배집단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반영하여 법을 만들고, 그 법에 대한 복종을 정의로운 행위로 규정하기도 했다. 법이 형식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더라도 그 내용과 집행 방식에 따라 특정 집단을 억압하거나 기득권을 보호할 수 있다.

그러나 법이 강자의 이익을 위해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과 정의 자체가 강자의 이익이라는 주장은 구별해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의술이 의사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환자의 건강을 지향하듯, 통치술도 통치자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통치받는 사람들의 이익을 지향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통치자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거나 권력을 남용할 수 있다는 현실이 통치의 정당한 목적까지 사익의 추구로 바꾸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권력자의 명령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명령이 정의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권력이 정의를 왜곡할 수 있다는 사실을 비판하려면 권력자의 의사와 구별되는 정의의 기준이 필요하다.


3. 법치주의와 헌법적 통제

이러한 구별은 법치주의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법치주의는 단순히 국가가 법률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법의 내용과 집행이 자의적이지 않아야 하며, 국가권력이 기본권을 침해할 때 이를 다툴 수 있는 절차와 제도가 보장되어야 한다. 헌법은 권력의 행사를 통제하는 핵심적인 규범이다. 입법부가 법률을 제정하더라도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행정부는 권한을 정당한 목적과 절차에 따라 행사해야 하며, 사법부 역시 독립성과 공정성을 바탕으로 헌법과 법률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정의로운 사회란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가 아니라 권력이 정당한 한계를 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사회다. 법은 권력자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지만, 권력자의 자의적 행사를 제한하고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4. 다수결은 정의의 충분조건인가

민주주의에서 다수결은 공동체의 의사를 형성하는 핵심적인 원리다. 자유로운 토론과 공정한 선거를 통해 형성된 다수의 의사는 정책과 제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정당성의 근거가 된다. 만장일치를 기대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다수결은 정치적 평등과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확보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수가 결정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결정이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다수가 소수자의 종교·사상·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특정 집단을 차별하는 법률을 제정한다면, 다수의 지지만으로 이를 정당화할 수 없다. 소수의 강자가 자신의 힘으로 이익을 관철하는 것이 정의가 아니라면, 다수 역시 수적 우위를 이용해 소수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정의라고 주장할 수 없다.

따라서 다수결은 민주적 의사를 형성하는 원리이지 정의의 모든 내용을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사를 존중하면서도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헌법과 기본권, 권력분립 및 사법적 통제는 다수의 결정이 정당한 한계를 넘지 않도록 하는 장치다.

물론 헌법적 통제를 이유로 다수결 자체를 경시해서도 안 된다. 정책과 제도의 구체적인 내용은 원칙적으로 민주적 절차를 통해 결정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다수결과 헌법적 통제를 대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의사가 헌법적 한계 안에서 실현되도록 조화시키는 일이다.


5. 정의의 실현과 실질적 법치주의

현실에서 강자는 자신의 이익을 정의의 이름으로 관철할 수 있다. 다수 역시 수적 우위를 이용해 소수자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법과 민주적 절차는 강자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

이 때문에 형식적 법치주의를 넘어 실질적 법치주의를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형식적 법치주의가 국가권력의 법률에 따른 행사를 강조한다면, 실질적 법치주의는 법의 내용과 권력 행사가 헌법의 기본원리와 기본권에 부합해야 한다는 점을 중시한다. 법률에 근거했다는 사실만으로 국가권력의 행사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 법률이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존중하는지, 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방지하는지, 국민의 기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실질적 법치주의는 법률의 형식을 갖추었다는 이유로 부당한 권력 행사를 용인하지 않는다. 입법부의 다수 의사도 헌법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으며, 행정부의 권한 행사는 법적 근거뿐 아니라 정당한 목적과 적법한 절차를 갖추어야 한다. 사법부는 독립적이고 공정한 심판을 통해 국민의 권리를 구제해야 한다. 나아가 국민은 법과 제도의 불공정성을 비판하고 개선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정의로운 사회란 권력과 다수의 의사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가 아니라, 그 권력과 의사가 헌법과 법률의 정당한 한계 안에서 행사되고 모든 국민의 권리를 존중하는 사회다. 법의 형식을 갖추는 데 만족하지 않고 법의 내용과 집행까지 정의의 기준에 부합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실질적 법치주의의 핵심이며 민주주의가 강자의 지배로 전락하지 않게 하는 조건이라 할 것이다.

최창호 변호사
서울대 사법학과 학·석사 출신으로 1989년 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군법무관을 거쳐 1995년에 검사로 임용되어 공안, 기획, 특수, 강력, 의료, 식품, 환경, 외국인범죄, 산업안전, 명예훼손, 지적재산, 감찰, 송무, 공판 등의 업무를 담당한 바 있고,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헌법재판을 경험한 후 법무부 국가송무과장으로 대한민국 정부 관련 국가 송무를 총괄하면서 주요 헌법재판, 행정재판 및 국가소송 사건을 통할하고, 정부법무공단의 발족에 기여했다. 미국과의 SOFA 협상에 참여한 바 있으며, 항고, 재기수사명령 등 고검 사건과 중요경제범죄 등 다수의 사건을 처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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