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지도 않은 국정(國定) 역사교과서 논란(論難) - 김윤조 교수
| 2015-11-03 14:50:00
- 움켜쥔 손바닥엔 호박씨를 만지작거리며, 수박꽃이 핀다니?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10월 27일 국회 시정(施政)연설에서 정부에서 주도하는 국정(國定) 역사 교과서가 친일행위에 대한 왜곡이나 5.16쿠데타, 10월유신 등에 대한 미화(美化)의 우려에 대해 “그런 교과서가 나오는 것은 저부터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을 뿐만 아니라 "아직 집필되지도 않은 교과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두고 더 이상 왜곡과 혼란은 없어야 한다"고 했다.
한겨레 신문(인터넷)은 ‘우익단체 불러놓고 “국론 통합” 외친 박 대통령’이라는 제하에서 청와대가 보수단체 회원 80여명을 “청와대 초청 행사” 명목으로 국회 본회의장에 초청해 특별방청을 하도록 하여 박수를 유도하였다고 비판하면서 이러한 태도가 ‘외눈박이’ 정치 행태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있다고 했다.
경향신문(인터넷)은 사설에서 “궤변과 비논리로 일관한 대통령 국회 연설”이라는 제하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박 대통령은 2008년 5월 뉴라이트 계열 교과서포럼이 제작한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출판기념회에서 축사를 했다. “우리 청소년들이 왜곡된 역사 평가를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면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출판은 중요한 의미가 있고, 그 자체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이 대안교과서는 식민지근대화론을 토대로 일제강점기를 기술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쿠데타를 “근대화 혁명의 출발점”으로 미화했다. 당시 축사가 진심이라면, 어제 약속은 거짓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대해 여야의 대립은 물론 국민의 분열도 확연하여 좌와 우로 나뉘어 싸우는 형태가 심히 걱정스러운 형국이다. 지금의 문제가 어떻게 발생하였는가에 대해 내용적 논의는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이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 하려는 의도(意圖)는 분명하다. 대통령과 정부의 입장에서는 현재의 검인정교과서의 대부분이 좌편향되었다는 것이며, 올바르게 기술된 특정교과서(개인적으로는 우편향된 교과서)의 채택이 좌편향된 교사 등의 방해로 어렵다는 것이 골자(骨子)다. 따라서 이 문제의 해결은 국가가 직접 역사교과서를 제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선, 논의해야 할 것이 좌편향 여부에 대한 검정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이의 검정을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많은 전문가들이 모여 스스로의 견해를 제기하여 국민의 판단을 받아야 함이다. 이런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좌편향여부를 마치 선전하듯이 하니 정상적인 의사를 가진 국민이라면 수긍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현재의 검인정제도로서 이의 수정이 불가한 것인가?
현재의 검인정제도는 개별 출판사에서 교과서를 출판하려면 교육부의 검정을 받아야 한다. 검정과정을 통과하지 못하면 출판이 불가능하다. 종전에 역사 교과서가 검정으로 출판될 당시에 검정에서 문제가 된 것을 모두 국가의 요구대로 수정한 후에 출판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수정요구가 법위반이라는 이유로 출판사의 수정요구취소소송이 대법원에 계류 중에 있다.
위의 내용과 같이 공개적이고 객관적 타당성을 지닌(그렇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국가의 의도대로 발행되는) 역사 교과서를 발행하여 교육하면 될 것인데 대통령까지 시정연설에서 나서 마치 나무라듯이 질책하며 국회를 압박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가 안 된다.
대통령이 말하는 “올바른” 역사 교과서가 무엇인가?
대통령은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발행하여 학생들에게 긍정적 역사관을 심어 국가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 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민주주의의 기본질서에 위반되는 아주 위험한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김상천 문예비평가는 “올바른”이라는 명명법(命名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올바른’이라는 명명법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다. 여기에는 교과명 이상의 무서운 권력의 코드가 숨어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가치의 제도화’이다. 물적 자산과 권력을 획득한 그들이 영원히 지배적으로 그들의 자산과 권력을 안정적으로 유지, 보수, 재생산, 확산시키고자 하는 저의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바른 한국사 교과서’는 노골적인 폭력이 아니라 제도적인 폭력이자 비가시적인 ‘상징폭력’의 한 형태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경향신문 10.26 인터넷).
“올바른” 역사 교과서로 명명하는 것은 국정 교과서가 아닌 지금까지 검정제하에서 발행된 교과서 모두 “올바르지 않은”으로 낙인찍어 “배제(排除)”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민주주의 근본인 다원성과 자율성 그리고 창의성을 침해하며, 제도에 의한 하나를 강요하는 폭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집필되지도 않은 교과서가 문제가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가장 강조한 것이 이 부분이다. 자신은 왜곡이나 미화가 절대로 행해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으나, 이를 믿는 역사학자나 일반인은 많지 않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교학사 역사 교과서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으나, 그 내용이야말로 객관성이 없는 것으로 인식됨이 일반적이다.
대통령은 이미 역사 교과서의 내용과 방향이 정해져 있다. 그러면서도 마치 논의해서 결정할 것과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행위이다. “올바른”이라는 의미에서 볼 수 있듯이 무엇이 올바른가의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정하겠다는 것이 전제군주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닌가 한다.
오늘 교육부장관이 국정교과서의 집필진의 공개여부도 명확하지 않고, 업무를 행하는 곳도 출장형식으로 30명 정도를 모아 미리 대책을 마련하고 청와대에 보고까지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무장관은 물론 비서실장까지도 그런 일이 없다고 하니, 국가에서 나중에 “짠”하고 배포하겠다는 것이다.
호박씨를 심으면 호박꽃이, 수박씨를 심으면 수박꽃이 피게 마련이다. 대통령이 호박꽃을 피우고 싶다면, 호주머니 속 손바닥에는 당연히 호박씨만 가득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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