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호 변호사의 법조단상] 경영판단의 원칙과 이사의 법적 책임

피앤피뉴스

gosiweek@gmail.com | 2026-07-01 12:40:37

“경영판단의 원칙과 이사의 법적 책임”

 

 

 

 

 

▲최창호 변호사1. 서

현대 기업 경영에서 경영자의 의사결정은 본질적으로 불확실성과 위험을 수반한다. 급변하는 시장 환경 속에서 모든 투자가 성공할 수는 없으며, 때로는 기업의 미래를 위한 과감한 결단이 예상치 못한 손실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단지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이사에게 민사상 또는 형사상의 책임을 부과한다면 경영진은 책임을 우려하여 새로운 사업 진출이나 혁신적 투자를 회피하게 될 것이다. 이는 기업 경쟁력의 약화는 물론 국가경제 전체의 활력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반면 경영자의 판단이라는 이유만으로 방만한 경영이나 사익 추구행위까지 무제한적으로 용인할 수는 없다. 이사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회사의 이익을 침해하거나 법령을 위반한 경우까지 면책된다면 주주와 투자자의 신뢰는 무너지고 자본시장의 건전성 역시 심각한 훼손을 겪게 된다.

결국 법은 경영자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과 회사 및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균형을 구현하는 대표적인 법리가 바로 ‘경영판단의 원칙(Business Judgment Rule)’이다. 이는 상법상 이사의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와 충실의무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법리로서, 기업 경영의 자유와 법적 책임의 한계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기능하고 있다.


2. 경영판단의 원칙

경영판단의 원칙은 이사가 회사의 이익을 위하여 충분한 정보를 토대로 성실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였다면, 비록 그 결과가 실패로 귀결되어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원칙적으로 이사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법리이다.

이 원칙은 미국 회사법상 판례를 통하여 발전한 후 전 세계 기업법 체계에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 상법에는 경영판단의 원칙이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대법원은 이사의 선관주의의무 및 충실의무 위반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경영자의 합리적인 재량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이를 수용하여 발전시켜 왔다.

이러한 법리가 인정되는 이유는 경영과 재판의 본질적 차이에 있다. 경영은 미래에 대한 예측과 위험 부담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동적인 활동인 반면, 법원의 판단은 이미 발생한 결과를 사후적으로 평가하는 정적인 과정이다. 따라서 법원이 단지 결과론적 관점에서 경영행위를 평가한다면 기업의 정상적인 위험 부담 기능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대법원 역시 이사의 경영판단에 다소의 잘못이 있었다 하더라도 의사결정 과정에 현저한 불합리성이 없는 한 그 책임을 쉽게 인정하여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결국 경영판단의 원칙의 핵심은 결과가 아니라 의사결정 과정의 적정성에 대한 존중에 있다.


3. 경영판단의 재량범위

경영판단의 원칙은 모든 경영상 결정을 무조건 보호하는 면책특권이 아니다. 법원이 인정하는 경영재량의 범위에는 일정한 한계가 존재한다.

첫째, 정보 수집의 충분성이 요구된다. 이사는 의사결정 당시 이용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수집하고 검토하여야 한다. 시장조사, 재무자료, 사업성 분석자료 등 객관적인 근거 없이 단순한 직관이나 개인적 확신만으로 이루어진 결정은 보호받기 어렵다.

둘째, 판단 과정의 합리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예상되는 이익과 위험을 객관적으로 비교·검토하는 절차가 존재하여야 한다. 이사회 논의, 외부 전문가 자문, 위험성 평가 등이 이루어진 경우에는 경영판단의 합리성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다.

셋째, 회사의 이익을 위한 성실한 판단이어야 한다. 이사는 오로지 회사의 이익을 위하여 판단하여야 하며 개인적 이해관계가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충실의무의 핵심 역시 회사 이익에 대한 충성에 있다.

넷째,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상법, 정관 및 내부 규정이 정한 의사결정 절차를 준수하였는지 역시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된다. 특히 대규모 투자나 자산 처분과 같이 회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에 대하여 적법한 이사회 결의가 이루어졌는지는 법원이 중요하게 검토하는 부분이다.

결국 경영판단의 재량범위는 결과의 성공 여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의사결정 과정이 충분한 정보와 합리적 절차에 기초하여 이루어졌는지에 의해 획정된다고 볼 수 있다.


4. 이익충돌의 법리

가. 이익충돌과 경영판단의 한계
경영판단의 원칙이 가장 강력하게 제한되는 영역은 이익충돌(Conflict of Interest)이다. 이사는 회사의 기관이자 수임인으로서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를 부담한다. 따라서 자신의 개인적 이익 또는 자신과 특수관계에 있는 제3자의 이익과 회사의 이익이 충돌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회사의 이익을 우선하여야 한다. 이익충돌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일반적인 경영판단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거나 적용 범위가 현저히 축소된다. 따라서 해당 거래가 공정하였음을 이사가 적극적으로 입증하여야 하는 경우가 많다.

나. 상법상 통제장치
상법은 이익충돌을 방지하기 위하여 다양한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첫째, 자기거래 제한(상법 제398조)이다. 이사가 회사와 직접 거래하거나 자신의 이해관계가 있는 거래를 수행하려면 이사회에서 거래의 중요한 사실을 공개하고 이사 3분의 2 이상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둘째, 회사기회 유용 금지(상법 제397조의2)이다. 이사는 직무 수행 과정에서 알게 된 사업기회를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이용할 수 없으며, 이를 이용하려면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다. 이익충돌의 효과
예컨대 이사가 자신이 지배하는 부실기업에 회사 자금을 대여하거나 회사 자산을 현저히 저가로 처분하는 경우에는 경영판단의 원칙이 적용될 수 없다. 이러한 경우 법원은 선관주의의무 및 충실의무 위반 여부를 엄격하게 심사하게 된다.


5. 법령위반과 경영판단의 한계

경영판단의 원칙이 적용될 수 없는 또 하나의 영역은 법령위반이다. 대법원은 이사의 경영판단에 대해서는 재량을 존중하여야 하지만, 법령을 위반한 행위는 원칙적으로 경영판단의 원칙에 의한 보호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법치주의의 관점에서 당연한 귀결이다. 아무리 회사의 이익을 증대시키려는 목적이었다 하더라도 그 수단이 위법하다면 정당화될 수 없다.

예컨대 경쟁사업자와의 담합, 분식회계, 횡령, 자본시장법 위반, 환경규제 위반 등의 행위는 모두 경영판단의 재량범위를 벗어난다. 이 경우 법원은 단순히 경영상 판단의 문제로 보지 않고 법령위반에 따른 책임을 독자적으로 심사하게 된다. 따라서 경영판단의 원칙은 적법한 경영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일 뿐, 위법행위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6. 민사상 책임

이사가 경영판단의 재량범위를 벗어나거나 충실의무 및 선관주의의무를 위반한 경우에는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한다.

상법 제399조에 따르면 이사가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이나 정관을 위반하거나 임무를 게을리하여 회사에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 회사에 대하여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한다. 특히 이사회 결의에 찬성한 이사들은 원칙적으로 연대책임을 부담한다. 또한 이사회에 출석하여 반대의사를 명시적으로 표시하지 않은 경우에는 찬성한 것으로 추정되므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회사가 이사에 대한 책임추궁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주주대표소송이 제기될 수 있다. 주주대표소송은 소수 주주가 회사를 대신하여 이사의 책임을 묻는 제도로서 회사 경영진에 대한 중요한 감시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7. 형사책임과 업무상 배임

이사의 부당한 경영행위가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면 형사책임의 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이사의 형사책임은 업무상배임죄를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다. 형법 제356조, 제355조 제2항에 의하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업무상배임죄가 성립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 경영은 본질적으로 위험을 수반하므로 단순한 투자 실패만으로 곧바로 배임죄를 인정할 수는 없다. 대법원 역시 형사재판에서 경영판단의 원칙을 고려하여 배임죄의 성립 범위를 신중하게 해석하고 있다. 즉, 경영자가 충분한 정보를 토대로 회사의 이익을 위하여 합리적인 판단을 하였고 사익 추구 목적이 없었다면 결과적으로 손해가 발생하였더라도 임무위배 행위나 배임의 고의를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 회사 자산을 사적으로 유용하거나 특정인을 부당하게 지원하기 위하여 거래를 진행하는 등 사익 추구 목적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배임죄가 성립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편 최근에는 기업 경영에 대한 과도한 형사처벌을 완화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와 함께 배임죄 제도의 개편 필요성에 관한 논의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다만 현행법상으로는 여전히 업무상배임죄가 기업 경영진의 형사책임을 판단하는 핵심 기준으로 기능하고 있다.


8. 결

경영판단의 원칙은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법리이지, 경영자의 모든 실패를 면책하는 특권이 아니다. 법은 결과의 성공 여부보다 의사결정 과정의 충실성과 합리성을 중시한다. 따라서 충분한 정보 수집, 객관적 검토, 절차 준수 및 회사의 이익을 위한 성실한 판단이 존재하였다면 결과적 손실만으로 이사의 책임을 쉽게 인정하여서는 안 된다. 이는 기업가정신과 혁신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장치이다.

그러나 이익충돌, 사익 추구, 법령위반이 개입된 경우에는 경영판단의 원칙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이 경우 이사는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은 물론 형사상 책임까지 부담할 수 있다.

결국 건전한 기업지배구조의 핵심은 경영자의 과감한 도전을 보장하면서도 충실의무 위반에 대해서는 엄정한 책임을 부과하는 균형에 있다. 경영판단의 원칙은 바로 이러한 균형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적인 법적 장치이며, 기업의 성장과 주주 보호를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현대 회사법의 중요한 원리라 할 것이다.

최창호 변호사
서울대 사법학과 학·석사 출신으로 1989년 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군법무관을 거쳐 1995년에 검사로 임용되어, 공안, 기획, 특수, 강력, 의료, 식품, 환경, 외국인범죄, 산업안전, 명예훼손, 지적재산, 감찰, 송무, 공판 등의 업무를 담당한 바 있고,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헌법재판을 경험한 후 법무부 국가송무과장으로 대한민국 정부 관련 국가 송무를 총괄하면서 주요 헌법재판, 행정재판 및 국가소송 사건을 통할하고, 정부법무공단의 발족에 기여했다. 미국과의 SOFA 협상에 참여한 바 있으며, 항고, 재기수사명령 등 고검 사건과 중요경제범죄 등 다수의 사건을 처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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