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호 변호사의 법조단상]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 무렵에야 날개를 편다

피앤피뉴스

gosiweek@gmail.com | 2026-10-26 11:00:42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 무렵에야 날개를 편다”

 

 

 

 

 

 


 

▲최창호 변호사
1. 지나간 시대를 성찰하는 지혜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법철학』 서문에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 무렵에야 날개를 편다”고 언급한 바 있다. 미네르바는 로마 신화에서 지혜를 상징하는 여신이며, 부엉이는 그 여신의 새다. 이 말은 철학적 지혜가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선구자라기보다, 하나의 시대가 성숙하고 저물 무렵에야 그 시대의 본질과 의미를 이해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역사는 언제나 당대의 사람들에게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는다. 시대를 움직이는 정치적 열정과 사회적 갈등 속에서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떤 선택이 정의를 실현하고 어떤 선택이 권력의 남용으로 이어지는지 분명하게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시간이 흐르고 사건의 결과가 드러난 뒤에야 우리는 당대의 판단을 되돌아보고 그 의미를 깨닫는다.

그러나 법조인의 역할을 단순히 지나간 사건의 잘잘못을 뒤늦게 판정하는 데 한정해서는 안 된다. 법조인은 역사의 지혜가 늦게 도래한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도, 그 지혜가 너무 늦게 도착하여 정의의 회복이 불가능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법조인은 시대를 앞서 모든 답을 알고 있는 예언자는 아니지만, 적어도 권력과 여론이 진실을 가리고 법의 원칙을 흔들 때 그 위험을 경고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2. 권력과 여론으로부터의 독립

법은 권력의 의지를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다수의 열망을 무조건 관철하는 수단도 아니다. 법의 본질은 권력의 행사를 일정한 원칙과 절차에 구속하고, 다수의 의사에 의해서도 침해될 수 없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데 있다. 정치적 대립이 격화되면 법조인에게도 편을 선택하라는 압력이 가해진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세력의 위법에는 관대하면서 반대편의 위법에는 엄격해지는 이중잣대가 나타날 수 있다. 대중의 분노가 커지면 충분한 증거와 적법한 절차를 기다리기보다 신속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반대로 권력의 이해관계가 걸린 사건에서는 법의 엄격한 적용보다 정치적 타협과 침묵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한다. 바로 이때 법조인의 독립성과 직업윤리가 시험대에 오른다. 법조인은 자신이 속한 진영의 승리를 위해 법을 해석하는 사람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정치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지, 사회적으로 얼마나 비난받는지에 따라 법적 판단을 달리해서도 안 된다. 동일한 법적 원칙은 지지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3. 사후적 판단을 넘어 사전적 경고로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황혼에 날아오른다는 비유에는 법조인에게 중요한 경계도 담겨 있다. 법과 제도의 문제점을 뒤늦게 발견하고 과거의 잘못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법조인은 사건이 종결된 뒤 판결의 의미를 해설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법률과 제도의 변화가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 위험을 미리 검토해야 한다. 진정한 법조인의 선견지명은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다. 권력이 스스로 정한 한계를 넘어서려 할 때 그 위험을 인식하고, 사회가 아직 충분히 깨닫지 못한 법적 문제를 합리적인 근거로 제기하며, 그 경고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는 데 있다.


4. 실질적 법치주의

법치주의는 모든 국가작용이 법률이라는 형식적 외관을 갖추었다는 이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법률 자체가 헌법의 기본원칙에 부합해야 하며, 법의 집행은 공정하고 예측 가능해야 한다. 권력자가 법을 이용하여 반대자를 억압하거나 특정 집단의 권리를 부당하게 제한한다면, 법률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그러한 통치를 정당화할 수 없다. 이것이 형식적 법치주의와 실질적 법치주의를 구별해야 하는 이유다. 실질적 법치주의는 법률의 형식뿐 아니라 그 내용과 집행이 인간의 존엄, 자유와 평등, 적법절차, 권력분립이라는 헌법적 가치에 부합할 것을 요구한다.


5. 황혼이 오기 전에 날아오르는 부엉이

헤겔이 말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시대가 지나간 뒤에야 그 본질을 이해하는 지혜의 한계를 상징한다. 권력이 강할 때 그 권력의 한계를 말하고, 여론이 한쪽으로 쏠릴 때에도 증거와 절차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다수의 이익에 가려진 소수자의 권리를 살피는 일이 법조인의 책무다. 그 과정에서 오해와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법조인이 그러한 부담을 피하기 위해 침묵한다면, 법은 권력을 통제하는 규범이 아니라 권력이 필요할 때 호출하는 명분으로 전락할 수 있다. 법조인은 시대의 권력이 아니라 역사의 이성에 봉사해야 한다.

최창호 변호사
서울대 사법학과 학·석사 출신으로 1989년 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군법무관을 거쳐 1995년에 검사로 임용되어 공안, 기획, 특수, 강력, 의료, 식품, 환경, 외국인범죄, 산업안전, 명예훼손, 지적재산, 감찰, 송무, 공판 등의 업무를 담당한 바 있고,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헌법재판을 경험한 후 법무부 국가송무과장으로 대한민국 정부 관련 국가 송무를 총괄하면서 주요 헌법재판, 행정재판 및 국가소송 사건을 통할하고, 정부법무공단의 발족에 기여했다. 미국과의 SOFA 협상에 참여한 바 있으며, 항고, 재기수사명령 등 고검 사건과 중요경제범죄 등 다수의 사건을 처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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